오늘날 인삼이라고 하면 ‘사포닌’ 혹은 인삼 고유의 사포닌인 ‘진세노사이드’라는 대표적인 성분이 떠오르겠지만, 인삼의 유효성분은 20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제대로 규명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8세기 초부터 중국에 인삼을 수출해야 했던 서구의 입장에서는 인삼의 효능을 둘러싸고 중국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즉, 서구가 인삼의 약성을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에 오랜 세월 인삼에 열광했던 중국의 지식체계에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삼은 플랜테이션 재배가 불가능한 식물이었다. 식민지 플랜테이션은 주로 더운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 인삼을 재배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설사 서늘한 산기슭을 찾아 심는다고 해도 인삼은 대규모 노예제를 통해 재배하기 힘든 극도로 까다롭고 예민한 식물이었다. 이런 이유로 19세기 말이 될 때까지도 서양은 인삼의 인공재배에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인삼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알려졌던 사실도 인삼이 살아남는 데 한몫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알려진 특효약들은 특정한 질병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식물에서 화학적으로 유효성분을 추출한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키니네이다. 17세기 중반 페루에서 발견된 ‘바크 나무’가 현지에서 열병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세기 초반 이 나무에서 ‘키니네’라고 불리는 알칼로이드가 추출되면서 말라리아 치료제의 대명사가 된다. 키니네는 열대 지방으로 뻗어나간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필수적인 예방약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말라리아 치료약으로서 특화된 세계적인 상품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페루비안 바크’라는 식물의 이름은 사라지고 ‘키니네’라는 성분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되었다. 서구의 의약학이 추출한 ‘유효성분’과 그 성분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질병의 이름이 피식민지에서 산출되던 자연물의 이름을 대체한 것이다. 키니네의 사례와는 달리 인삼은 다양한 질병에 효과를 발휘하는 ‘만병통치약’의 후광이 강했다. 너무 많은 질병을 치료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