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PA 봉사단에서 소난지도로 바지락캐기 체험 및 역사탐방을 다녀왔어요. 소소한 매력이 가득한 난지도 여행의 출발점은 도비도항입니다. 도비도 선착장에서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하네요. 6월의 여름바다 앞에서 두팔을 활짝 펴고 크게 쉼호흡을 해 보았습니다. 시원한 바다내음이 묻어난 바람이 일상에 쌓인 피로를 시원하게 날려주네요.
소난지도행 배가 도착하고 일행들과 여행의 설레임이 가득한 발걸음으로 승선했습니다. 평화로운 뱃길에 갈매기들이 섬 여행의 풍경에 운치를 더해 주네요. 새우깡을 갈매기에게 주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행복이 묻어납니다.
소난지도항에 도착해 민박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갈매기들이 길잡이가 되어 주네요. 민박집에 짐을 풀고 갯벌로 향합니다.
삼삼오오 모여 바지락을 캐기 시작합니다. 호미질을 열심히 해 보는데 내눈에만 바지락이 안보이는건 왜일까요. ㅎ
소난지도 우무도 앞바다에서는 전복 양식과 굴양식을 하고 있는데요. 굴껍질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풍경도 운치가 있습니다.
돌틈에 숨어 있던 작은게가 인기척에 놀랐는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네요.
까시리도 많이 보이고, 어릴적 많이 먹던 대수룩도 많이 보입니다.
갯벌체험을 마치고 민박집 주인이 미리 해감한 바지락이랑 까시리를 듬뿍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요. 둘이 먹다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정도로 맛이 일품입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의병총으로 향했는데요. 1905년 소난지도에서 일어났던 일은 군인들 간의 전투가 아니었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보리쌀 한 톨의 녹봉도 받지 못했던 의병들이 왜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 바로 이곳인데요. 나라가 위급할때 군사 훈련도 받지 못했고,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의병들의 손엔 화승총과 창칼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오직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로움이 의병들이 가진 전부였는데요. 그렇게 이름 없이 죽어간 의로운 넋들은 소난지도 앞바다와 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이들을 기리기 위해 의병항쟁기념탑과 의병총이 조성되었다고 하네요.
소난지의병항쟁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침탈당하게 되자 홍원식을 중심으로 전국각지에서 거병했다고 합니다. 국권 회복을 위해 일어섰던 의병들은 경기도 수원지방에서 유격전술로 일본군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면서 일본군에 밀려 배를 타고 당진으로 쫓겨 왔다고 합니다. 이후 병오년 홍주전투에서 패한 의병일부와 합류하면서 석문면 난지도에 의병 본진을 두고 재기를 도모했다고 하네요. 당시 소난지도는 마포로 가는 3남지역의 조세선이 정박하는 중간 정박지 역할을 했기에 식량을 확보 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고 합니다.
난지도는 전쟁자금을 마련하고 해로를 이용해 일제의 주제소를 야간습격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는데요. 당진지역의 의병활동일지에서 찾을 수 있는 의병관련 활동만 50여건이라고 합니다. 화승총을 사용하는 의병들은 5연발 소총을 사용하는 일본군 15명의 급습으로 1908년 홍원식 의병 150여 명이 전멸하고 홍원식만 소나무 가지에 걸려 살아남았다고 하네요.
이후 1977년 석문중학교 신이균 이사장이 중심이 되어 소난지도에 흩어져 있던 의병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의병총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후 1980년 소난지도의병총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 기념비석을 세웠다고 하네요. 또한 2009년 이곳에 의병항쟁 추모탑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의병총은 2017년 등록문화재 제629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소난지도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궁금증과 기대감이 가득했던 첫 방문이었는데요. 갯벌체험과 의병총 참배에 이어 바닷가 산책까지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