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사귄 전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제 헤어진 지 2년이 넘었습니다. 두 달 전에 다시 연락이 닿아서 서로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아직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 다시 만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사람과 관계를 잘 만들어 가려면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은 여러분 친구들과 상담하면 조금 더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을까 싶어요. 스님은 나이가 들어서 저보다 여러분의 친구들이 따끈따끈한 심정을 더 잘 알 거예요. (웃음)
여러분들은 봄을 떠올리면 ‘연애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저는 ‘농사 짓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답을 할 정도로 생각이 많이 다르잖아요. 그러나 굳이 스님한테 질문을 했으니까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우선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날 때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장점은 잘 살리고, 단점을 개선해야겠죠.
헤어졌던 사람과 다시 만날 때의 장점은 상대방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니까 서로 덤벙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상대방의 성격도 어느 정도 알고,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도 알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고민도 알고 있을 테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 비해 유리합니다. 그만큼 서로를 알아가는 데 필요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 지난번에 무슨 이유로 헤어졌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상대방을 좋아했고, 또 무엇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는지를 분석해봐야 해요, 예전에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좋았던 점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하고, 또 그렇게 좋아해서 5년이나 만났으면서도 무슨 이유로 결국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도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은 2년 동안 헤어져 있었으니까 헤어지게 된 이유는 거의 다 잊고 예전의 좋았던 감정만 떠오르기 때문에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인데, 막상 다시 만나면 예전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다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헤어지게 되면 상처가 더 깊어집니다. 그러니 예전에 무엇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부분에 대해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예전에는 내가 그것을 수용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수용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펴봐야 합니다. 상대방이 변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결정적으로 헤어지게 된 원인을 내가 수용하고 받아낼 정도가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담배를 많이 피워서 싫어했는데 이제는 담배를 피워도 수용할 수 있겠는지, 예전에는 술을 많이 먹어서 싫어했는데 이제는 술을 먹어도 수용할 수 있겠는지, 예전에는 나를 만나면서 동시에 다른 여자를 만나서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도 수용할 수 있겠는지, 예전에는 화를 많이 내서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 정도의 화는 수용할 수 있겠는지를 살펴봐야 해요.
스님은 모르지만 질문자는 예전에 질문자가 상대방과 헤어졌던 이유를 잘 알잖아요. 그러니 그 원인을 잘 들여다보고 지금은 내가 그 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대여섯 개 적어서 ‘너 이제 이것은 수용할 수 있겠어?’ 하고 하나씩 점검해야 해요.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에도 그랬을 거예요. 처음에는 문제가 안 되었던 것이 어느 시점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언젠가는 개선되겠지’ 이렇게 기대하면서 기다리다가 5년이 지나서 결국 헤어지는 결정을 했었잖아요. 이번에도 내가 수용해내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그때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점검해보고 ‘도저히 수용해내지 못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굳이 남자친구로 만나지 말고, 1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서 차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관점을 이렇게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장점은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알고 있으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는 대응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문제가 됐던 부분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개선되었을지 여부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수용해낼 수 있는지를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에 비해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단점은 상대방에 대한 긴장도가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건 나의 상대방에 대한 긴장도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나에 대한 긴장도도 떨어집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게 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나의 그런 부분을 수용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수용하는 건 오로지 나의 문제지만, 상대방이 나를 수용해낼 거라고 전제하면서 만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에 대해 힘들어했던 부분을 내가 개선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니까 자칫 방심하고 내 습관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난 상대방과 같은 이유로 갈등이 생기면 예전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관계 정리가 오히려 빨리 이뤄질 수 있고, 그러면 예전의 상처가 더 깊어질 수 있어요. 새로 만난 사람과는 아직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서로 시간을 주게 되는데, 예전에 만난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과거의 상처가 떠오르면 ‘이 사람과는 안 되겠구나’ 하고 짧은 시간 내에 관계가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과거에 친했던 기억 때문에 방심을 하게 되고, 그래서 과거의 상처가 재발할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긴장도 하고, 조심하기도 하고, 유의하기도 하는데, 과거에 만났던 사람과는 편안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서로가 변화를 도모하는 동력이 적다는 단점이 있는 거예요.
이런 장단점을 고려해서 다시 만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다시 만나기로 결정한다면, 상대방에 대해 내가 수용할 수 있겠는가를 점검하고, 또 상대방이 나로 인해 어려워했던 점을 내가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논하지 말고, 내 입장에서 상대방의 문제를 수용해낼 수 있는지, 나의 문제는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내가 상대방을 조금 더 수용해내고, 내가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조금 개선한다면, 관계가 좋아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관계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더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또 질문하세요.”
“제가 예전에는 그 친구에게 바라는 게 많았었는데, 지금은 바라는 게 없기 때문에 그 점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질문자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게 많았던 것이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어요?”
“사귈 때 제가 더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자존심이 상했었어요. ‘쟤는 날 좋아하나?’ 이런 생각을 했었고, 그만큼 상대방에게 바라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상대방을 이해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졌어요. 그 후로 스님의 법문을 많이 듣고 나니 제가 욕심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랑에 있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만큼 너도 나를 좋아해라’ 하는 게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
“질문자의 얘기는 결국 상대방이 질문자를 좋아하는 것보다 질문자가 상대방을 더 좋아했다는 거네요. 그리고 질문자가 계산해보니까 상대방은 나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래서 괜히 내가 위축되는 것 같았고, 결국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원래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매달리게 되어있어요.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내가 돈을 좋아하면 돈에 매달리고, 지위를 좋아하면 지위에 매달리고, 권력을 좋아하면 권력에 매달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게 매달리고, 그 사람 앞에 서면 작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무언가에 매달리지 말라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면 그만큼 내가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 걸로 만족하면 돼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한테 자꾸 나를 좋아하라고 하면, 그 사람이 볼 때는 자꾸 자기한테 ‘이래라저래라’ 하고 간섭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과 다시 만남을 이어간다면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로 끝내고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는 그 사람의 몫으로 남기는 게 좋습니다.
이 세상에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놔두고, 우선 여러분이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 참 괜찮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영화배우들 빼고는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 누군가를 보고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워요. 거기다가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는 경우까지 찾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지내게 되는 거예요. (웃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좋다며 따라다닌다면 그 역시도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나를 좋아한다며 따라다닐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이렇게 마음을 가지면 사람을 만나는 게 쉽고, 양쪽이 서로를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질문자가 법문을 들으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대가 컸다는 점을 자각했다면, 이번에는 상대방을 수용해낼 수 있는지, 또 나는 개선할 수 있는지, 이렇게 자기 공부를 점검해보면 좋겠어요.
스님은 솔직히 여러분의 연애가 이루어지는지 여부보다는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여러분의 마음공부가 되는지 여부에 더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 연애를 통해서 질문자가 마음공부가 좀 더 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겁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예전에는 욕심이 많았다는 걸 자각했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마음공부가 좀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여요.”
“제가 정토회를 만나고 나서 생각하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주위 상황이나 사람이 바뀐 건 아닌데도 예전보다 갈등이 많이 줄었고, 삶의 만족도가 많이 올라갔어요. 늘 감사드립니다.”
출퍼 스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