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라 중기인 3,300년 전에 확립된 성과 씨의 제도는 주나라 800년 역사를 거치면서 동아세아에 굳건하게 자리잡은 신분질서의 근간이 되었던 제도입니다.
동아세아는 성과 씨의 제도와 조적(祖籍)의 중원대륙 기원을 사회관계망 형성의 공통분모로 합니다.
중국은 상고팔대성(上古八大姓)의 후손이 아니면 사회진출에 제약이 있으며, 동아시아의 상류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객가족은 조상의 중원대륙 기원을 거래와 소통을 여는 첫번째 조건으로 삼습니다.
일본 귀족만 해도 중원대륙 기원을 핵심가치로 여깁니다. 일본 귀족을 " 화족(華族) "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디 일본 귀족은 중국 섬서성의 화산(華山) 일대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을 명확히 한 명칭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보수성이 약하여 성과 씨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은 씨족별로 씨(氏) 종친회가 조직되어 있고 또한 그 상위 클래스로 성(姓) 종친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송나라 때 편찬된 백가성(百家姓)에 나와 있는 200여 성씨 중에 희성(姬姓)의 씨족이 90% 정도였으며 나머지 대부분이 강성(姜姓)이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현재 중국 성씨는 희성(姬姓) 씨족이 45%를 찾이한다고 합니다. 즉 15억 중국인구 중에서 약 7억명 정도가 희성(姬姓) 씨족인 것입니다. 주나라 황실의 성(姓)인 희성 (姬姓)이 주류인 중국은 예나 지금에나 희성 (姬姓)의 나라입니다.
은나라 중기에 성(姓)은 공식적으로 마감되었고, 성(姓)은 고귀하게 여겨서 창성(創姓)을 하는 자는 제왕이라도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이 시기 이후에는 더 이상 성(姓)이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신에 씨(氏)는 만들 수 있도록 허락되었는데 특히 실력주의를 표방했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전통적 귀족이 아닌 평민계층에서도 소위 포의장상(布衣將相) 등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런 사람들에 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씨족의 역사가 최소한 3,3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씨족이 아니면 씨(氏)는 있으나 성(姓)은 없습니다.
이런 역사적 내력이 있어서인지 현대 중국사회에서는 " 씨(氏) " 를 " 성(姓) " 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 족성(族姓) "과 " 국성(國姓) " 의 구별이 있는데, '족성(族姓)'은 해당 씨족이 선대에 나라가 있어서 임금의 혈통을 이어받은 씨족을 말하며, '국성(國姓)'은 해당 씨족의 선대에 백성이었던 나라가 멸국이 되었을 때 그 나라의 이름으로 '씨(氏)'를 한 씨족을 말합니다. - 족성과 국성의 구별은 있으나 씨족간에 차별은 없습니다. -
성과 씨의 제도가 왕후장상 씨족과 평민을 규정하는 중국판 카스트제도였으므로 이를 폐단시 하여 진시황이 등장하여 성과 씨를 하나로 합하여 " 성씨(姓氏) "라고 부르게 하고 종전에 성과 씨를 써온 귀족가문에 대해서 성(姓)과 씨(氏)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하도록 하였으나 육국 통합 후 겨우 15년 만에 진나라가 멸국이 된지라 성과 씨에 대한 종래의 사회적 관습은 여전하게 전해 내려와 현재도 중국사회에 견고하게 작동하는 일종의 관습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이 있는 씨족의 성과 씨와 이름의 표기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령 우리 위씨가 이름이 '전국(戰國)'이라고 하면,
" 姬姓 魏氏, 名 戰國 "
이라고 표기합니다.
여기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성(姓)은 고귀하다고 하여 성(姓) 옆에는 이름(名)을 표기하지 않고 씨(氏) 다음에 표기합니다.
우리나라는 " 성명(姓名) "이라는 말을 쓰고 일본은 " 씨명(氏名) " 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처럼 " 씨명(氏名) " 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성과 씨에 대한 좋은 영상물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참고 - 상고팔대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세계인의 성씨 스페셜 1회 수많은 성씨를 가진 나라, 중국
세계인의 성씨 스페셜 2회 인류 최초의 성씨 풍風,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씨 강姜
세계인의 성씨 스페셜 3회 상나라 국성 자성子姓 백익伯益의 성 영성嬴姓
세계인의 성씨 스페셜 4회 황제헌원의 성 희성姬姓 순임금의 성 요성姚姓과 규성嬀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