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기운이 대지에 스며드는 춘삼월이 성큼 다가왔다. 아직 봄바람에는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지만, 한결 부드로워진 햇살을 받으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이번 라이딩은 용인과 경기 광주 일대를 무대로 역사와 추억, 그리고 봄의 정취를 함께 만끽하는 여정이다. 여정의 출발점은 기흥역이다. 바이콜 전사 5명이 뜻을 같이 했다. 신갈천으로 진입하고 용인동백호수공원으로 향한다. 오가는 바이커들이 드물어 마치 자전거도로를 통째로 전세 낸 듯한 기분이다. 15분쯤 달리니 용인동백호수공원이 나타났다.
용인동백호수공원을 일주한 뒤 동백죽전대로를 타고 금학천으로 들어섰다. 용인시청을 지나 성산로로 들어서자 선봉대 체력단련장 입구가 나온다. 이곳은 우리에게 남다른 추억이 깃든 장소다. 람보림과 아스트라전, 그리고 스머프차는 동기생들과 수없이 골프채 휘두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스머프차는 골프를 손놓은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람보림과 아스트라전은 아직도 굴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스머프차는 25년 동안 골프에 미치디시피 골프광이었지만, 자전거를 만난 이후부터는 골프로부터 멀어졌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에버랜드 방향으로 페달을 밟는다.
가는 길에 송영근의 고향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성산로 341번길로 들어서서 길 끝자락에 다다르자 집과 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 뒤편으로는 해발 471.3m의 석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정면에는 영문천의 물주머니라 할 수 있는 마상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지형이다. 풍수에서 배산임수 지형은 명당이라 여긴다는데 송영근이 장군으로 진급하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것도 혹시 이 좋은 터의 기운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영근 동기는 스머프차가 1977년 10월 30일 결혼 당시 함재비 노릇했다.
전통혼례 절차 가운데 식을 올리기 전에 신랑의 사주(四柱)와 청혼서, 분홍 저고리감과 가락지 1쌍을 예단으로 마련하여 사주함에 넣어 신부집에 보낸다. 신랑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함을 진 친구들로 구성된 <함재비>는 함을 그냥 신부집에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신부집 앞에서 대문에 들어서기까지 길에다 돈을 깔게한다. 이처럼 함값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관습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왔다. 요즘 혼례식을 간소화 하다보니 초저녁 골목길에 마주치던 혼전 절차인 <함>을 보내고 맞아들이는 함재비 행렬은 이젠 좀처럼 마주치기 힘들다.
이곳은 쉐도우수를 포함하여 육사 27기 8중대 동기생 5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10년 동안 밭을 일구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가 들어 손을 놓은지 오래되었지만 그 시절의 땀과 우정은 밭고랑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듯하다. 송영근이 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영근이가 직접 오겠다고 하여 일행은 오지말라고 극구 말렸다.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정겹게 통화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영근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약 30분간 시간을 보낸 뒤 에버랜드 동문을 향해 출발했다. 성산로를 따라 잠실고개를 넘어 전대교차로를 지나자 에버랜드 동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와 쭈꾸미&보쌈 식당에 들려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맛있는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본격적인 역사 탐방에 나섰다. 경안천과 신원천을 따라 달리다 곡현로 315번 길로 들어서서 상촌마을회관과 매산4리마을회관을 차례로 지나자 첫 번째 역사 탐방지인 이일 장군 묘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도순변사 무용대장을 지낸 이일 장군은 1538년 용인 포곡읍 신원리에서 태어났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한 뒤 북병사로 임명되어 두만강 일대에서 여진족을 토벌하며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유령전투에서 왜군을 기습하여 전과를 올렸고 그 공으로 선조로부터 어마( 御馬)를 하사받으며 다시 순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명나라 원군과 함께 임진강과 평양 일대에서 북상하는 왜군을 막아내고 평양 수복에도 힘을 보탰다. 서울이 수복된 뒤에는 훈련도감의 좌지사로 임명되어 군사훈련에 힘썼으며, 한성부판윤을 거쳐 함경북도와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순변사를 역임하는 등 조선의 대표적인 무장으로 활약했다. 사후에는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이일 장군의 북방 여진족 토벌 전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화가 바로<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다.
그림에는 당시 조선 기병들이 착용했던 갑옷과 투구, 칼과 창은 물론이고 양익포위전법을 펼치는 전투 장면까지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전투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군사와 무기, 전술을 기록한 귀중한 역사자료인 셈이다. 다음 목적지는 한국등잔박물관이다. 건너고개와 참바대교를 지나 오산천과 동행하다가 문형동림로로 들어서서 능곡로를 갈아타자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2016년 5월 29일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며 어머니 젓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었던 바로 안골고개다.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고개를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고개를 힘겹게 넘어서자 한국등잔박물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등잔박물관은 김동휘 관장이 오랜 세월 수집한 등잔을 중심으로 선조들의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 조상들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등잔을 통해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향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의 모습도 제법 운치가 있다. 등잔박물관 맞은편에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다. 묘역 입구에 들어서자 풍채가 넉넉한 정몽주 선생의 동상이 먼저 일행을 맞이한다.
정몽주 선생은 1337년에 태어나 1392년 생을 마감한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다. 학문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외교와 행정, 정치적 역량을 두루 갖춘 명재상이었다. 무엇보다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킨 인물로 우리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조선 건국을 앞두고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역성혁명을 추진할 때에도 정몽주는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조영규 등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되면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다.. 정몽주의 죽ㅇ므은 한 왕조의 몰락과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으로써 오히려 더욱 큰 이름을 남겼다. 조선에서는 그이 충절과 학문을 높이 평가하여 훗날 영의정에 추증했으며, 성리학적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하였다. 선생이 피살된 뒤 개성 인근에 묘가 조성되었다가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하려 했는데 이장 행렬이 용인 죽재에 이르렀을 때 영정이 바람에 날아가 현재의 묘소 자리에 떨어졌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일을 계기로 이곳에 묘소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시대의 끝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정몽주 선생의 충절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며 묵념한다.
역사 탐방을 마치고 능곡로를 따라 다시 오산천으로 내려선다 포은교를 지나 포은대로로 들어선 뒤 대지로로 갈아타자 또 하나의 만만치 않은 고갯길이 기다린다.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와 요인시 수지구 죽전동 경계에 자리한 고개다. 이곳 역시 나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2016년 5월29일 죽전역에서 이 고개를 오를 당시 앞서가던 스머프차를 본 바이크 손대장이 따끔한 충고를 건넸다. "힘을 너무 많이 쓰지 말고 적당히 배분해야 한다". 바이콜에 입문한 지 불과 두 달밖에 되지 않았던 당시의 스머프차는 겁도 없고 혈기도 왕성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페달을 밟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러 난다. 그때의 젊은 패기와 오늘의 노련함 사이에는 꽤 긴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함께 달리던 친구들과의 우정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대지고개를 넘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주전1동성당과 죽전도서관을 지나 탄천 죽전교를 건너니 어느새 죽전역이다. 16시 32분 오늘의 라이딩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오늘은 햇살이 찬란하게 내리쬐었지만 봄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아직은 양기보다 음기가 강한 초봄의 날씨다. 그러나 추위따위는 아랑곳 하지않고 일찍 피어난 봄꽃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피어난 봄꽃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오늘 코스 안내를 맡은 쉐도우수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하게 길을 찾아내고 궂은 일이 생기면 맥가이버처럼 해결한다. 잠이 부족한 생활 속에서도 머리는 명석하게 돌아가고 글솜씨 또한 명필이다. 여러 방면에서 탁월한 재주를 지닌 만능 일꾼이니 바이콜로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길을 달리고, 봄꽃이 피어나는 계절의 아름다움까지 가슴에 담았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하루가 있을까. 우정은 깊어지고 추억은 쌓이고 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