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시절에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뛰는 책이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코 밑에 있던 '쿠바'는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지지했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때마침 쿠바 '아바나 항구'에 정박해 있던 미 군함, '메인호'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스페인'의 공격이라고 판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명분이 생긴 것이었다.
당시 세상을 호령하며 할거했던 열강들은 서로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자국의 이익 앞에선 적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그랬던 까닭에 미국과 스페인은 서로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었으니까.
수천 년 간 인류의 전쟁사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을 수도 없이 증명했다.
이십 세기가 열리기 직전 '쿠바'를 사이에 둔 '미국'과 '스페인'의 패권경쟁도 이 '투키디데스 트랩'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양국은 되돌아올 수 없는 외나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한 쪽은 투항의 백기를, 한 쪽은 환희의 승전고를 울릴 수밖에 없는 백척간두의 운명이었다.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의 전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가 1898년이었다.
'스페인'에 저항했던 건 '미국'만이 아니었다.
'쿠바 반군'도 있었다.
스페인군에 맞서며 치열하게 싸웠던 쿠바 반군의 지도자는 '가르시아'였다.
그런 다급한 전쟁 상황 속에서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가르시아 장군'과의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에게 백악관의 비밀 메시지를 꼭 전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그 당시 세상은 정보통신이나 과학기술이 형편 없던 시절이었다.
미국은, 쿠바 독립전쟁의 지도자 '가르시아'가 어느 산, 어느 밀림 속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아니 심지어는 그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 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매킨리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그때 참모 중 한 사람이 확신에 찬 어조로 대통령께 고했다.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요. 우리에겐 '로완 중위'가 있습니다"
"로완 중위?"
"옙. '로완'이라면 반드시 '가르시아 장군'을 찾아낼 것이고, 각하의 탑 시크릿 메시지를 꼭 전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래요? 그런 자가 있단 말이요? 어서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 들이시오"
'로완 중위'가 '매킨리 대통령' 앞에 섰다.
그는 겸손했다.
그러나 내공과 충성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당당했고 눈빛은 살아 있었다.
대통령은 그에게 딱 한 마디를 건넸다.
"루테넌트 로완. 이 편지를 쿠바의 밀림 속에 있는 '가르시아 장군'에게 전하게. 국운이 걸린 문젤세. 건투를 비네 "
'로완'은 대통령께 힘찬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쿠바를 향해 떠났다.
'가르시아'가 누구인지,
그가 쿠바의 어느 밀림 속에 있는지,
왜 꼭 자신이 가야만 하는지,
그곳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비밀 메시지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띄고 있는지,
그는 대통령이나 자신의 상관에게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바로 출발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앤드류 서머즈 로완' 중위, 그는 진정으로 충직하고 용감한 군인이었다.
대통령께 힘찬 거수경례를 하고 '오벌 오피스'를 나오자마자 방수봉투 안에 대통령의 '친서'를 넣고 단단하게 봉인했다.
그런 다음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목걸이 줄을 걸어 견고하게 소지했다.
자신의 죽음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빠트리거나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국운이 달린 밀서였다.
며칠 후, 한밤중에 그는 아무도 모르게 쿠바 해안에 도착했다.
모진 어려움과 고초를 다 겪어가면서 밀림 속을 헤쳤고 뚫었다.
스페인군의 진지를 피해가면서 은밀하게 도보로 횡단했다.
그에게 부여된 엄청난 미션, 그 미션의 수행을 위해 그는 죽음을 불사했다.
숱한 난관을 뚫고 전진했다.
끝내 그는 '가르시아 장군'을 찾아냈다.
눈물겨운 고군분투였고 거룩한 충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목숨처럼 가슴에 품고 있었던 '매킨리 대통령'의 친서를 장군에게 전달했다.
진정으로 가슴 떨리는 감동을 경험했던 책이었다.
이십대 초반, 내 골수를 흔들었던 '가르시아의 밀서'.
이 얇은 책은 1899년 인쇄출판 사업을 하고 있던 '앨버트 허버트'가 단숨에 썼던 글이다.
원제는 'A massage to Garcia'였다.
훗날,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기업체에 입사했는데 마침 그 회사의 필독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실화에 근거해서 썼던 간결하고 임팩트가 강한 책이었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말이있다.
인류가 문자와 언어를 갖고 지구라는 별에서 계속 존재하는 한, 이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한다.
'스페인'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다.
그 승전 덕분에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1902년의 일이었다.
이 한 번의 전쟁으로 '쿠바' 뿐만 아니라 '프에르토리코', '필리핀', '괌' 등이 미국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다시 한번 되짚어 봐도 이 책은 여전히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매킨리'가 '가르시아'에게 보낸 편지내용이나 전쟁에서의 승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 감동의 원천은 상관의 명령이나 미션이 하달되었을 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목숨을 걸고 바로 실천에 옮겼던
'로완 중위'의 '위대한 행동' 때문이었다.
내가 2015년 세모에 오래된 이 책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딸에게 전하고 픈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현 중위. 엄마와 아빠에겐 금년 11월이 매우 특별한 싯점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대한민국 국군에는 해마다 장교로 임관하는 청년들이 약 5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 중 중위 때 복무연장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한다.
금년 11월에 신청자들 중 최종적으로 250명이 선발되었는데 네가 이 명단에 포함되었으니 부모로서 참 기쁘고 행복했다.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네가 성신여대 학군단의 창단 멤버인 1기생이었고, 후보생들의 리더였던 '초대 대대장'으로서 열과 성을 다하며 모교 학군단의
초석을 튼튼하게 다졌던 것에 대해서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학군 동기생 수천 명이 내년 여름에 중위 계급으로 대부분 전역하고 복무연장에 선발된 정예 장교들만 남게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지휘관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된다고 본다.
소천하신 네 할아버지도 6.25 전쟁 직후에 군에 입대하여 많은 고생을 하셨다.
아빠도 80년대 중반에 해병대의 꽃, 특수 수색대에 자원입대하여 하늘, 땅, 바다를 거침없이 누비는 전천후 대원이 되기 위해 매순간 투혼을 불살랐었다.
해병대 1169기인 네 동생도, 절해고도인 백령도의 '기습 특공대'에서 만기전역할 때까지 숱한 훈련과 단금질로 청춘의 한 때를 뜨겁게 모자이크 했었지.
너는 머지 않아 '대위'가 되어 본격적인 지휘관으로서의 군대생활을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부모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한가지 당부를 전하고자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학입학도, 졸업 후 취업도 힘겨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급증했고, 부사관이나 장교로 임관된 후에는 좀처럼 군문을 떠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복무연장 선발이 점점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사는 데 제일 중요한 건 바로 먹고 사는 문제 아니겠니?
그래서 일차적으로 '호구지책'이 제일 절실하지.
적절한 봉급을 받고, 때가 되면 진급하며 희망하는 직무에 보임되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고 싶은 건 누구에게나 동일한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군인은 '호구지책'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월급을 받는 생활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너희들이기 때문이다.
군인은 그런 존재다.
때로는 조국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신분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매년 4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예산을 국방에 쏟아붓는 것이다.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눈치 보지 말고 담대하게 네가 먼저 나서거라.
위급한 비상시엔 네 자신의 안위보다는 동료나 부하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용감무쌍하게 헌신하는 리더가 되기 바란다.
네가 군에서 정년퇴직을 할지, 중간에 군복을 벗을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진급이나 편안한 보직을 위해 애쓰지 말기 바란다.
군인으로서 한 달을 살든, 일 년을 살든 원칙에 충실하고 조국에 충성하거라.
조국이 부여한 미션엔 끝까지 목숨을 건 채 완수해내고, 함께 생활하는 전우들에겐 언제나 사랑과 신뢰를 주는 그런 균형잡힌 장교가 되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현 중위.
항상 '가르시아 밀서'의 교훈을 네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살아라.
국가의 부름 앞에선 조금이라도 비겁한 이유를 들먹거리지 말고 '로완 중위'의 충직한 행동처럼 숭고한 미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장교가 되기를 기도한다.
군인에겐 '사즉생'의 정신 뿐이다.
매순간 열심히 노력하는, 당당하고 젊은 너의 앞길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겸손과 배려를 잊지 않는 멋진 지휘관이 되기 바란다.
나도 네 등 뒤에서 기도로써 뜨겁게 응원하마.
사랑한다.
GOD BLESS YOU !!!
2015년 12월 13일.
추운 겨울밤,
'로완 중위'의 위대한 행적을 생각하며 딸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다.
첫댓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
어찌 군인만의 존재 이유이겠습니까?
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 오늘날의 우리 모습뿐만 아니라
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나는 정말 내게 주어진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