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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여호와의 종
사49:1-7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 전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깨달을 때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끔 교인들로부터 대우를 잘 안 해 주고 자기를 몰라 줘서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재정을 자기 마음대로 쓰다가 물의를 일으키고 사임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사례비를 지나치게 많이 책정하려다가 교인들과 언성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자기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얼굴을 붉히고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기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자신의 종 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앙의 추세는 안타깝게도 인간위주의 모습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값비싼 기독교라는 책에서 오늘의 교회를 고객만족을 추구하는 마케팅 교회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기 존중이라는 잘못된 생각 앞에 교인들이 주인이 되고 교인들 위주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 일 뿐입니다.
종에게 무슨 자기주장이 있고 자기 뜻이 있고 마음대로 할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종에게 무슨 서운한 마음이 있을 수 있고 서운하다고 주인을 바꾸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에 대한 두 번째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종을 택하셔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만 여기에 나오는 종이 누구냐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종은 이 땅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고 하기도 하고, 당시 이사야 선지자나 아니면 유력한 어떤 개인을 가리킨다고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새롭게 포로에서 돌아올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 여호와의 종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너는 나의 종이요’라고 말씀하고 있고요,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너는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고, 종 된 이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사도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사도라는 말을 쓴 것은 자신도 다른 12제자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의미와 더불어 주님께로부터 귀한 사명을 맡았다는 아주 명예로운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복음을 맡았다는 의미에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을 믿게 되면 여러 가지 귀한 칭호를 얻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딸,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이제부터 너희는 나의 친구라는 말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께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모든 축복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의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고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과 사울 왕의 아들인 왕자 요나단이 아주 친한 친구사이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밀을 다 이야기하고 서로 아껴주고 도와주면서 ‘우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를 보여주듯이 아름다운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 시점에서 그들의 우정은 정말 압권입니다.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해야 하는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입을 맞추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정말 막역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다윗이 이러한 일을 하기에 앞서 요나단에게 최대의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 요나단에게 세 번 절을 합니다.
비록 친구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요나단은 한 나라의 왕자입니다.
다윗의 신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였습니다.
다윗은 그 요나단을 왕자로 인정하면서 그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그 후에 친구의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친구로 부르시고 동역자로 부르시고 자녀로 삼으신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에 앞서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왕이심을 인정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자세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건방진 자가 되고 교만한 자가 되고 내 위주의 삶을 살아가면서 불평하고 불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가 쉬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절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내 인생의 왕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왕이 되심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은 사명을 위해 일을 위해 선택된 사람입니다.
종은 이 일을 잘 감당해야 주인으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고 상급이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종은 필요가 없고 일을 하지 못하는 종은 절대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잘 했다 칭찬받는 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나를 불러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잘 알아야 합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태어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일찍부터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영광이요 특권이며 엄청난 축복입니다.
「오체 불만족」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國)는 태어날 때부터 양팔과 양다리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산모가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 한 달 동안 ‘황달이 심하다’고 둘러대며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 후, 더 이상 숨길 수만은 없게 되자, 아이에게 조금 이상이 있다는 말만 하고 일단 아이를 보여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모가 기절할 것을 대비해서 병실까지 따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양팔과 다리가 없는 오토다케를 본 어머니가 처음 한 말은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였습니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지만 10달간 배가 아파 낳은 사랑스러운 아들을 한 달 만에 처음 만난 어머니의 기쁨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팔과 다리가 없는 아이가 사랑스러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10달 동안 배속에서 온갖 어려움과 수고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아이를 출산하기 위하여 엄청난 고통을 치루기 때문에 내 자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고 관심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복중에서부터 기억하시고 태에서부터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사랑과 고통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의 종이 되지 않고 전능하신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요 어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특권인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불러주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3절에 보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여호와의 종의 사명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6장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 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종의 사명이며 자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종 된 우리는 엄격히 말하면 소유가 없는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소유에 집착하는 경향을 있습니다만 그것을 벗어나 모든 소유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이 나의 주인임을 나타낼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한 나귀새끼를 끌어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이 뭐라고 하면 “주가 쓰시겠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주인이 쓰겠다고 하는데 종 된 사람이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종은 주인이 쓰시겠다고 할 때 기꺼이 기쁨으로 내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자녀 배우자 자동차 가재도구 은행계좌 주식 부동산 이러한 것들을 내 중심적으로 관리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 중심의 관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로 관리를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도 주님께 의탁하지 못한 영역들이 있습니까?
그 부분까지도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부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아직 그에게 드려지지 못한 영역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더 풍성한 삶을 주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주님께 드리지 못한 영역이 있다면 돌이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완전한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아울러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인생 계획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너무도 자주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세운 계획에 대하여 무조건 결재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이러이러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발 이 계획들을 이루어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강요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종은 자신의 계획이 없고 주인을 위한 계획만이 있을 뿐입니다.
종은 미래의 모든 계획을 주님께 넘겨드리고 나의 모든 인생의 계획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내가 세우는 계획이 하나님께 합당한 것인지 늘 하나님과 상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종 된 자에게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킬 뿐 아니라 이방의 빛이 되어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베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종 된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베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미래 계획은 어떻습니까?
정말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계획들을 세우고 있습니까?
자신의 안일과 편함과 쉼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증거 하는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종 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2절 3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종 된 자의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셨고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이 그 기능을 잘하기 위해서는 날카롭게 갈아야 하고 화살이 그 기능을 잘하기 위해서는 갈고 닦아야 합니다.
무딘 칼이나 화살은 그 기능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도 영적인 훈련, 체력적인 훈련, 정신적인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네 번째로 사명을 잘 감당한 자에게는 놀라운 보상과 축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4절 말씀에 보면,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판단에 의하여 우리는 거기에 합당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이 판단은 정확한 판단이 될 것입니다.
밀림에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가 파인애플을 먹고 싶어 고국에서 파인애플 묘목을 가져다가 원주민을 고용하여 심게 했습니다.
3년이 지나 드디어 맛있는 파인애플을 먹을 수 있는 기대를 가졌는데 그런데 파인애플이 익기가 무섭게 없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원주민들이 따가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서 화를 내자 원주민들이 그 곳의 법칙을 설명했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이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따기지 말라고 설득을 하고, 큰 개를 풀어놓고 병원 문까지 닫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8년이나 실랑이를 벌이던 이 선교사가 드디어 이 파인애플 농장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것임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원주민들이 파인애플을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파인애플을 훔쳐 가면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이 되었기에 무서워서 가져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파인애플을 내 것이라고 주장할 때는 한 개도 먹지 못했는데 파인애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전부를 가져올 수 있었던 과정을 보면서 선교사는 큰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인애플을 원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선교사의 변화를 보면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면 이처럼 손해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차고 넘치도록 후히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파인애플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면서 앞으로 여러분의 삶을 종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모든 풍성한 은혜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의 특권과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