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 김석수
지난주에 친구들과 함께 무등산에 갔다. 버스를 타고 증심사 정류장에 도착하니 세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그들은 나보다 일찍 퇴직해서 재작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산행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공공기관에 근무했던 친구가 <은어잡이 추억>을 읽고 만나고 싶다며 초대했다. 그는 내가 배가 나오지 않았다며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특별한 것은 없고 아침마다 수영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단식이 화제가 됐다. 우리는 뱃살 빼는 경험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새인봉으로 올라갔다.
3년 전에 ‘깊은 산속 옹달샘’ 생활 단식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광주에서 버스로 충주까지 갔다. 점심 무렵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물만 마셔 배가 무척 고팠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터미널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었으나 참았다. 오후에 옹달샘에 도착해서 등록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예전에 왔던 곳이라 낯설지는 않다. 명상 시간에 함께 단식하기로 한 사람을 모두 만났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저녁 무렵 산책하면서 하품이 자주 나왔다. 목욕탕에 가서 샤워하려고 하니 힘이 없다. 저녁에 머리가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두통은 머리의 염증을 제거하는 신호라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자리서 일어났다. 힘이 빠지고 구역질이 가끔 올라왔다. 목욕탕에 갔더니 어제 만났던 젊은이가 샤워하고 있다. 그는 경기도 안양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저녁마다 늦게 야식을 먹는다. 지친 몸을 돌보려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침실로 올라와 어제 나누어 준 약을 물과 섞어서 마셨더니 구역질이 더 많이 나왔다. 아마 장에서 해독이 진행되면서 속이 메슥거린 것 같다. 대장 내시경 검사하려고 마셨던 약 냄새와 비슷했다. 그 약을 먹고 한 시간 뒤 화장실에 갔더니 장에 쌓였던 찌꺼기가 몽땅 나왔다. 나중에 말갛고 노란 물이 변기를 가득 채웠다.
오전 요가 시간에 땀이 많이 났다. 오후에 옹달샘 뒷산에 갔다. 한여름이라 천천히 걸어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상하게 어제보다 힘이 난다.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면서 몸을 담갔더니 머리가 개운했다. 밥 대신 물을 마시고 저녁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강사는 3주 동안 지리산에서 포도 단식을 한 경험이 있다면서 단식보다 보식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기간은 단식의 세 배 이상 필요하다. 단식을 잘해도 보식을 잘못하면 몸을 망친다고 주장했다.
셋째 날 아침 식사로 효소액 반 컵을 주었다. 조별로 나누어 마시도록 했다. 머리가 맑고 힘이 생겼다. 우리는 산책하면서 단식 경험을 이야기했다. 대구에서 온 중년 여자는 이 프로그램에 두 번째 참가한다면서 지난번에 보식을 잘못해서 다시 왔다. 서울에서 온 50대 남자는 매년 한 번씩 이곳에 온다고 했다.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이 왔다. 내가 나이가 가장 많다. 대부분 단식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단식과 보식을 잘해서 성공하자고 서로 격려했다.
넷째 날도 아침에 효소액 한 컵을 주었다. 몸이 가뿐해서 몸무게를 재 보니 3킬로가 줄었다. 온몸이 가뜬하고 유쾌하다. 몸에 열이 약간 났으나 견딜 만하다. 오전에 명상, 오후에 요가와 웰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웰빙 시간에 보식 관련 발효 식품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단식이 끝나자마자 도넛츠 한 개를 먹고 다음 날 응급실에 실려 갔던 일이 있다며 보식 절차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날 아침 효소액을 마시고 보식 꾸러미를 가방에 넣고 집으로 출발했다.
아내가 핼쑥해진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볼과 배가 쑥 들어갔다. 어깨와 종아리 근육이 물렁하다. 몸이 가벼워 걷기가 편하다. 사람들이 내 얼굴이 해맑다고 한다. 보식을 잘하려고 밥 대신 미음부터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식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먹고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 보식이 끝나더라도 이전보다 적게 먹겠다고 다짐했다. 며칠은 잘했다. 출장 가서 문제가 생겼다. 뷔페에서 설탕이 들어간 샐러드를 먹었기 때문이다. 강사는 보식 기간에 설탕이나 소금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말라고 강조했다. 전화해서 알아봤더니 양이 적으면 괜찮다고 한다. 지금까지 단식 전보다 몸무게는 3킬로가 빠진 채로 계속 유지하고 있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단식도 그중에 하나다. 장을 비우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진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지 자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년 퇴직하면 더하기보다 빼기 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된다. 이것저것 벌여 놓은 일이 나를 붙잡는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나무는 잎이 떨어져 앙상하다. 금년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단식이 건강에 좋다면서도 우리는 증심사 아래 식당에서 보리밥을 한 그릇씩 양껏 먹었다. 내년에 단식을 한 번 더 해야할지 모르겠다.
첫댓글 그 힘든 단식을 하다니 대단하십니다. 선생님처럼 가끔은 내 몸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네, 고맙습니다.
단식과 살 빼는 이야기 했다면서 보리밥을 양껏 먹었다니 참, 음식 유혹을 이기기는 힘든가 봅니다..
네, 그래요. 고맙습니다.
한 끼만 굶어도 현기증이 나던데, 대단하십니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데는 다 비결이 있네요.
몸매는 날씬하지 않지만 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해보고 싶은데 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인가 봅니다. 단식!
고맙습니다.
대단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군요.
저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