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죽었어 / 조미숙
넥플릭스에서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봤다. 나른한 오후 혼자서 영화에 빠져들었다. 주름이 가득한 주인공의 얼굴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마지막 장면에서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나로선 절대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수영 선수이기에 가능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가 어때서’는 그냥 하는 말로 여겼다. 자꾸만 나이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많아진다. 이 나이에 뭘 어쩌겠다고, 꿈이 사라진 지 오래다.
새롭게 등록한 헬스장에는 죄다 젊은이뿐이다. 낯선 운동 기구만큼이나 어색한 색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간혹 나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몇몇은 보이나 주눅 들기에는 충분했다. 쭈뼛거리며 찾는 곳이 자전거와 런닝머신이 있는 데다. 2~30분에 전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를 한다. 요가를 하는 날은 그 뒤를 이어 줌바까지 한다. 딱딱하게 굳은 몸에서 삐거덕 소리가 요란하다. 삐뚤어진 몸이 거울에 비치면 그 꼴이 참으로 우습다. 나보다 더 고전하고 있는 옆에 앉은 딸과 눈이 마주치면 쿡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몇 개월 먼저 등록했고 아직 새파랗게 젊은 몸뚱이가 저래서야 쓰겠는가 싶어 한탄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딸은 나보다 이른 시간에 와서 운동하니 일곱 시에 하는 수업만 들으면 집으로 돌아간다. 첫날은 나를 위해 여덟 시에 하는 줌바까지 같이 참여했다.
딸이 줌바 시간에는 내가 설 곳을 미리 찜해야 한다고 했다. 교실 앞에 세워둔 입간판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자주 싸움이 일었단다. 예전에 수영 다닐 때에도 남자 강사가 있는 반에는 보이지 않은 감정싸움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흔하게 일어난다. 왜 아줌마들이 모이는 곳에는 그런 일이 잦은지 모르겠다. 단지 그 강사가 멋져서만이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가슴 떨린 첫수업을 했다. 날씬한 몸매에 화장까지 예쁘게 한 젊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 나이대는 보이지 않는다. 몸에 딱 붙는 운동복까지 갖춰 입어 헐렁한 옷을 걸친 나와는 대조적이다. 탄탄한 몸매를 보니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인 채로 내 배에 시선이 간다. 동작은 어렵지 않은데 음악도 낯설고 해서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몰라 따라가기에 벅찼다. 공원에서 하는 운동은 대부분 트로트여서 가사에 맞춰 동작을 이어 가면 기억하기 쉬웠다. 물론 서당 개 삼 년이라는 세월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서 아주 엉터리는 아니었다. 간간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웨이브는 아직 그림의 떡이었지만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ㄴ의 소개로 왔다고 강사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그다음 날 딸이 엄마가 진짜 잘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칭찬했다고 한다. 딸의 전 직장 동료가 두 명 있었다.
화려한 춤과 동작이 어우러진다. 강사는 자꾸 웃으면서 요염하게 하라고 손짓과 행동으로 말한다. 음악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신나는 춤판으로 바뀐다. 서로 비비적거리고 무대를 휘젓고 다니기도 한다. 강사는 가끔 회원에게 바짝 붙어 동작에 힘을 싣는다. 그러면 그 회원은 함박웃음을 짓고 그 순간만큼은 최고의 댄서가 된다. 춤에 취해 황홀하게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부럽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박수하고 뛰어다닌다. 아직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은 사이인데 마주 보며 활짝 웃고 춤추라니 죽을 맛이다.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곳인 것 같아 그 무대에서 한 발짝 물러선 기분이다.
벌써 3주의 시간이 지났다. 워낙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라서 항상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먼저 손 내밀어 주면 좋겠는데 다들 자기들끼리만 숙덕거린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 젊은것들이 먼저 인사하면 좋으련만 영 그러네. 아마도 내가 생각보다 너무 잘하니까 거리감을 느끼나 보다. 이건 분명 위기의식의 발로야.’ 아직 허우적거리느라 정신없을 시긴데 능숙하게 따라 하니 기분이 나빠서 그럴 것이라 위로해 본다. 미운 마음이 드는 대가로 김칫국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켰다.
시간이 흐르면 불룩하게 튀어나온 뱃살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되리라 믿는다. 그러면 딱 붙는 예쁜 운동복 입고서 다른 사람보다 멋지고 요염하게 출 것이다. 그땐 너희들 다 죽었어!
첫댓글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글도 재밌고요. 응원합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하하하. 겁나게 멋져요!!!
멋지게 봐 주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나 글쓰는 여자야' 글을 읽는 느낌입니다. '그 땐 너희들 다 죽었어.' 하하하.
너무 나갔나요?
@조미숙 재미있어요. 당당하구요.
저랑 비슷하네요. 저는 맨날 큰소리만 치고, 발걸음을 안 떼서, 이제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공연 준비 해야겠네요. 하하!
와우~~
정말 멋져요.
언제쯤. '다 죽었어'
책이 나올 것 같아요.하하
다음책 제목 후보가 너무 많네요. 하하!
하하, 누굴 죽이고 싶은 건지 마지막에 알았네요. 저도 그런 눈치 보는 게 싫어서 잘 못가겠더라구요. 응원합니다.
원래 겁 많은 사람이 큰소리부터 친답니다.
하하.
몸치인 저는 선생님이 부럽군요.
그 유연한 몸놀림을 보고파요.
음치인데 몸치라도 벗어나야죠.
와! 책 2탄은 <나 춤추는 여자야>로 하면 되겠네요. 제목도 멋집니다.
춤바람 난 줄 알면 어떡하죠?
제목도 내용도 톡톡 튀네요. 조 선생님, 그 나이를 자꾸 의식하게 되지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이 강의실(글쓰기)에서도 내가 그런 의식을 자꾸 한다니까요.
아이고, 어쩌다 이 나이가 되었나 하고요.
그러니까요.
하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도전 정신이 부럽습니다.
재밌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나중에 '나 악 쓰는 여자야'로 글 한 번 써야겠다고 맘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