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귀 / 조미숙
평소 즐겨보던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에서 기안84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을 방영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구 가슴이 꿈틀거리는데 그 방송은 진한 감동을 안겼다. 죽을 것 같은 임계점에 다다라 주고 앉고 싶어도 나보다 힘든 처지에서 불굴의 의지로 뛰는 사람들을 보면서 끝까지 완주했다. 기안도, 불편한 몸으로 뛰었던 그 사람도 모두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만 젊었으면, 무릎만 아프지 않다면’ 하는 아쉬움이 일던 차였다. 나이 먹었고,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로 핑계 삼아 모든 걸 회피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글렀으니 다음 생에나 그리 해 볼까?
골골 팔십이라고 맨날 안 아픈 날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 나이 먹도록 크게 병원 신세는 지지 않고 살고 있다. 아이들 낳을 때 빼고는 입원해도 길어야 2, 3일쯤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성인병 관련 약도 먹지 않는다. 어찌 보면 건강한 편이다.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받았나 보다. 물론 노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다 돌아가셨지만 두 분은 아흔넷으로 장수했다. 노년 막바지를 물 맑고 공기 좋은 고향에서 지냈다면 더 오래 살았겠다는 아쉬움이 안 남는 건 아니었지만 그만하면 건강하게 잘 살다 가셨다.
보약 한번 해 드린 적이 없었다. 당신들이 산과 들에서 몸에 좋다는 약초들을 캐다가 달여 먹고 자식들에게도 보냈다. 해 뜨면 일어나서 나가고 어두워지면 들어와 자리에 누웠던 일생이 어쩌면 보약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밥상을 채워 고기반찬 없어도 한 그릇 뚝딱이었다. 행여 동네에서 일을 치르느라 돼지라도 잡으면 그때서야 고기 구경을 했다. 명절에도 흔치 않았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예전에는 많이 먹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달라졌다. 어느 날부턴가 토요일은 외식하는 날이 되었다. 물론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식구들 모두 좋아하기도 했지만 늦게 퇴근하는 남편이랑 갈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늘 의식하지 못하고 먹을 때는 좋았지만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거창하게 동물권을 생각해서라기보다 우선 내 몸에 너무 미안했다. 입에 맞는 음식만 찾다 보니 각종 염증에 시달리고 배 둘레만 두꺼워졌다. 건강을 생각하게 되면서 점차 육식을 줄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의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먹는 걸 조절 못 하면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 될 것 같아 걷기, 등산, 에어로빅, 라인댄스 등을 가리지 않고 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과식하거나 몸에 나쁜 음식을 먹었다는 죄책감도 사라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물론 그만큼 몸도 건강해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공원에서 하는 ‘생활체육교실’이 쉬는 겨울에는 다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올해는 보건소에서 하는 ‘모바일 헬스’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식단과 운동 관리를 받으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그러다가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다시 쪘다. 운동하는데도 이상하게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평소 싫어하던 과자에도 손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다 최근에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슬로우 조깅(느리게 달리기)’ 편을 보게 됐다.
제작진은 한국스포츠과학원 전문가팀과 함께 진행한 운동 역학분석으로 ‘슬로우조깅’의 운동 효과를 알아봤다. 참가자 3인이 3주간의 진행으로 체중 및 체지방 감소, 심혈관 건강 증진, 지구력 향상, 정신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 혈당 조절, 면역력 증진 등의 효과를 봤다. 외모와 수치가 달라진 것이 보이니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솔깃했다.
달리기에 한참 구미가 당겼을 때라 주저 없이 시도 했다. 당장 10분 정도 뛰어 봤다. 상체를 바르게 세우고 전방을 보며 작은 보폭으로 앞꿈치에 힘을 가하면서 가볍게 뛴다. 처음에는 까치발로 뛰었더니 힘들었다. 잘못 뛴 것이다. 하지만 다리는 뻣뻣해지는데 차가운 손은 금세 따뜻해졌다. ‘우와! 이렇게나!’라는 생각에 마음은 벌써 근육맨이 된 것 같았다. 몸도 날아갈 듯 가벼웠다. 점점 심해지던 만성 두통도 줄은 것 같다. 인바디 검사로 증거자료를 준비하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누가 들으면 콧방귀도 안 뀔 일이지만 난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날을 그리며 며칠 뛰었다. 공원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 좀 멋쩍었다. 나이는 들어 보이는데 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느리게 뛰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 부끄러워 잠깐 멈추고 싶지만 꾹 참는다. 누가 신경도 안 쓸 텐데, 아무튼 난 남의 눈에 띄는 게 싫다. 일본에서는 열풍이라는데 내 주변에선 아직 없는 것 같다.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자니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 목표를 세웠던 매일 한 시간 뛰기는 실천 못 하고 있기는 하지만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면서 제일 무서운 게 치매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치매를 지켜봤던 터라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뇌 관련 책이나 영상에서 보았던 방법들은 가능하면 실천하려고 한다. 내가 평소 팔랑귀라 그런 말들을 잘 믿는다. 그래도 건강보조식품은 먹지 않는다. 가끔 혹해서 사기는 하지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
어제도 약 없이 건강하게 살려고 한 시간이나 느리게 뛰었다. 오늘은 내 유용한 팔랑귀로 옷 장수를 기쁘게 했다. 경제도 건강하게 잘 돌아야 하기에.
첫댓글 건강을 위한 팔랑귀는 아주 유용한 것 같은데요? 한 시간씩이나 '느리게 뛰기'를 실천하신다니 대단하세요. 저도 따라서 해 보고 싶습니다만...
하하하
도전해 보세요.
귀여우세요.하하하
하하!
한 시간을 뛰다니! 대단합니다. 느리게든 빠르게든 달리기에 도전하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어쩌다요. 하하!
내 집 바로 옆에 광주천변 길이 있는데 느리게 뛰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시작하셨으니 계속이어지길 바랍니다.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운동은 중독성이 생깁니다. 특히 마라톤 달리기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죠.
느리게 달리기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남 눈 의식하지 않고 느리게 뛰기를 계속 실천한다니 대단합니다. 그래도 조 작가님 같은 팔랑귀는 바람직하네요.
고맙습니다
남 눈 의식하지 않고 느리게 뛰기를 계속 실천한다니 부러워요. 그래도 조 작가님 같은 팔랑귀는 바람직하네요.
저도 팔랑귀가 되었습니다. '느리게 뛰기' 솔깃합니다.
저도 요즘 슬로우 조깅에 관심 많아요. 게으른 운동법인 거 같아서...하하.
효과가 있다니 선생님 믿고 한번 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