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9편. 나만 알고 싶은 여름 명당
뙤약볕 앞세워 온 여름. 너도 나도 몰려가는 유명 피서지 대신 달궈진 맘 식혀줄 나만의 쉼터가 간절해진다. 자연의 숨결에 삶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일상의 스트레스와 묵직한 근심까지 날려줄 그곳. ‘나만 알고 싶은 명당’으로 가본다. 1부. 가야산 사나이들의 더위 사냥 –
수려한 산세에 물 맑은 심산유곡, 가야산을 병풍처럼 두른 경상북도 성주의 법림마을.
산 좋고 물 맑은 이 마을에는 20여 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이영현 씨 모자가 산다. 매주 가파른 산비탈의 약물 바위에서 약수를 길어다 어머니를 챙기는 효자 아들이다.
산골 마을 여름에는 말벌처럼 영현 씨를 긴장시키는 불청객도 있지만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무더위 피해 고향 산을 찾은 죽마고우들이다.
모처럼 뭉친 가야산 사나이들, 동네 사람들만 아는 ‘물 명당’으로 피서를 떠나는데. 아홉 개의 계곡이 이어진 ‘포천구곡’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손꼽히는 제9곡이다.
차디찬 계곡물에 뛰어드는 순간, 철부지 소년 시절로 돌아가는 세 친구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 후에는 자연이 내어준 귀한 선물로 허기를 채운다.
손맛 좋은 아내 옥자 씨가 끓여낸 민물고기 매운탕. 도시 사는 친구가 그토록 그리워했다는 가야산 표 보양식이다. 고향의 산바람과 함께 맛보면 이보다 더 시원할 수 없단다.
“그 자리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으면 그게 명당이죠”
함께라서 즐거운 여름날, 가야산 사나이들과 더위 사냥 떠나본다.
2부. 딸 부잣집의 꽃 피는 날 – 경상남도 고성에 자리한 한적한 마을이 웬일로 시끌벅적하다. 흥 많고 정 많기로 동네 소문난 ‘딸 부잣집 오공주’가 나타난 것. 반찬들 바리바리 싸 들고 고향 집을 찾은 건 홀로 계신 아버지를 챙기기 위해서다.
누구보다 가족을 위하는 아버지, 아내를 위해 손수 우물을 파고 몸이 불편한 지금도 딸들 오면 먹이려고 매일 텃밭을 가꾸신단다.
입도 많고 손도 많아 각자 맡은 요리를 척척 해내는 자매들. 아버지의 땀방울이 키워낸 여름 맛으로 풍성한 밥상을 맛본다.
입 호강한 후에는 눈 호강할 차례다. 고향에 올 때마다 숨은 명당 찾아다닌다는 오공주의 올여름 선택은 수국이 만발한 정원이다.
15년간 손수 가꿨다는 16만 평의 푸른 숲. 푸른 하늘빛부터 형형색색 피어난 수국만 해도 십여 가지 품종, 30만 주가 피어있단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펼쳐진 숲에서 번잡한 일상은 접어두고 소녀의 마음이 되어 ‘힐링의 시간’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가족들과 여름 나들이 가던 당항포 바닷가.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또 하나의 여름 추억을 얻어간다.
“아버지 건강하고 자매들 마음만은 이대로 늙지 않기를”
함께 할 때 더욱 빛나는 딸 부잣집 식구들. 그들의 웃음꽃 피는 여름을 함께 한다.
3부. 신선을 기다리네 –
청정하고 아름답기로 이름난 천년고찰, 전라남도 순천의 선암사. 산사의 어귀에서 아침 포행 길에 나선 청각 스님을 만났다.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다리라는 승선교를 지나 그의 뒤를 따라간 곳은 선암사에서도 500m를 더 올라가야 나오는 신비로운 암자 ‘대각암’이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깨달았다’ 하여 이름 붙은 곳. 무수한 선승들이 거쳐 간 수행터를 청각 스님이 1년째 홀로 가꾸고 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2층 누각, 대선루. 시원하게 열어젖힌 나무 창문 너머 조계산의 신록과 사각 연못의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신선을 기다린다’는 그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풍광 잊지 못해 15년 만에 고향 같은 대각암으로 돌아온 스님.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적막강산’ 하지만 스님은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소방관처럼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정원사가 되어 코스모스를 가꾼다. 오가다 들르는 이들, 눈도 즐겁고 마음 편하게 쉬어갔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땀 흠뻑 흘린 뒤에는 언제나 스님만의 여름 명당으로 선녀를 만나러 간다는데.
“인연이 닿고 기운이 맞는 곳.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가 바로 명당이지”
혼자 살아도 누군가 지켜보듯 쉼 없이 마음 밭 갈며 살아가는 스님. 이 좋은 여름, 함께 누리고 싶다는 마음 너른 스님을 만나본다.
4부. 땅끝의 무릉도원 – 전라남도 해남 달마고도를 병풍처럼 품에 안은 너른 정원. 이곳에 ‘달마산 산지기’라는 남상호 씨와 그의 아내 이은혜 씨가 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정원은 상호 씨의 무릉도원이자 최고의 놀이터. 1만 2천 평을 아름답게 수놓은 꽃 하나, 나무 하나 상호 씨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평생 자연인을 꿈꿔왔던 남편 상호 씨는 6년 전, 귀촌 선언하고 이곳을 몰래 구입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사고 쳤다’ 생각했다는 아내 은혜 씨. 하지만 1년 전, 이곳에 뿌리내린 뒤로 남편 못지않은 땅끝 전도사가 됐단다.
탐스럽게 피어난 수국도 좋고 보라색 꽃이 고운 코끼리 마늘 농사도 재미있다지만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건 정원에서 달마산으로 이어지는 편백 숲길.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비밀의 숲 길을 오르다 보면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끝자락에 다도해가 펼쳐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어떤 남편이 달마산 덩어리를 아내에게 선물로 주겠어요. 여기서 함께 잘살아 봐야죠.”
여름을 맞이해 땅끝 정원을 찾은 도시 친구들. 해남의 각종 약초들과 반건조한 민어와 장어, 전복까지, 귀한 식재료들을 듬뿍 더해 끓여낸 보양식으로 풍성한 여름 만찬까지 즐겨보는데. 땅끝이 내어주는 선물 같은 여름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5부. 향기 속을 달리다 –
전라남도 고흥의 천등산. 아침마다 자전거로 산자락을 누빈다는 박종석 씨는 7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산 중턱에 농장을 꾸렸다. 20년 넘게 프로 경륜 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보디빌더, 철인3종경기 선수까지 하던 그야말로 ‘철인 농부’다.
우락부락한 몸과 달리 허브와 꽃을 사랑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 코알라 먹이로 유명한 유칼립투스를 만 그루가 넘게 키우고 있다는데. 선수 생활 당시, 비염으로 고생하던 그를 도와준 게 바로 유칼립투스였다.
그 후로 허브에 푹 빠진 종석 씨. 라벤더와 레몬그라스, 티트리까지 1.5km 계곡 따라 허브 숲을 늘려가고 있다.
여름이면 더 쑥쑥 자라나는 허브들. 그 싱그러운 향기에 이끌려 지인들이 찾아왔다. 나이는 더 많지만, 철인 농부 종석 씨에게 사이클을 배우고 있다는 귀농 동지들이다. 잠시 농사 접어두고 여름 풍경 만끽하러 ‘자전거 라이딩’을 나서는데.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30분을 달려가면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불리는 고흥 바다가 한눈에 쫙 내려다보인다. 쪽빛 바다에 보석처럼 박힌 섬들을 보며 달리면 엔돌핀이 확 솟구친단다.
“자전거 타면서 자연을 만끽하는 게 행복하죠”
한바탕 달린 후에는 레몬그라스의 향긋함을 더한 닭고기 요리로 기력 보충까지 해준다. 앞만 보며 달리는 무한 경쟁, 경륜 선수로 살다가 비로소 친구들과 삶의 풍경을 즐기며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종석 씨. 여름 향기 가득한 그의 일상을 만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