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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날개
이 홍사
상오가 다녀갔다.
아무런 조건이나 수식 없이 그저 단순하게 다녀갔다는 말이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한동안 머물다 갔다고 정정하자. 보름에서 하루가 빠지는 기간을 비엔티안에서 머물다가 갔는데, 상오는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외국에 머물기는 처음이라 했다. 두 주 동안 대체 이 더운 나라에서 뭘 기웃거리며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잠시 다녀갔다는 기분이 들며 친구의 빈자리를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이 나라에서 내 자리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힌 게 아닌 줄 알면서, 호텔이 아닌 단칸방 숙소에서 곁들이처럼 지내다 갔으니 어지간히 불편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사람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인가?
그가 다녀가고 나서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고 틈만 생기면 인간과 사람의 차이를 자문하며 더듬는 게 요 며칠 사이의 버릇이 되었다.
대체, 사람과 인간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뭔가 다른 듯하긴 한데 그걸 명징하게 꼭 집어낼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고.
섣불리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사람의 유형을 따지기 전에, 일단 여행이라는 게 얼마나 피곤한 것인가부터 거론하는 게 순서겠다.
상오가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다녀갔으니, 새삼스레 하는 말인데 여행은 참 피곤하다. 언제나 긴장 끝에 마음까지도 노곤하게 만드는 게 바로 여행인데 혼자 싸돌아다녀도 피곤하고, 동반자나 가이드와 함께 다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이렇게 확고한 자리를 굳히지 못한 데서는 힘들게 마련인데, 곁가지로 친구까지 붙었으니 약간 지친 기분도 든다.
이 라오스가 나에겐 여행지도 아니고 사업처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시 피신을 온 나라에 불과하다. 바로 옆에 붙은 미얀마에서 벌여놓은 일이 쿠데타 이후에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접은 것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려 견디기 힘들면 가끔 건너오는 곳인데, 이곳에 일찌감치 터를 잡은 최 선생의 덕으로 이젠 다닐 적마다 세면도구나 옷가지를 챙기지 않고 들락거릴 공간, 사무실 반지하에 붙은 빈방을 혼자 쓸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으나, 곁가지로 붙은 친구와 같이 보름간 생활하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컸다. 그러나 그런 심리적 부담을 상오는 헤아릴 줄 몰랐다.
여행에 관해서라면 내 생각은 상오와 조금 다르다.
상오는 다니다가 조금만 불편하면 바로 지적한다. 그게 말이든, 표정이든 바로 나타나는데, 이 나라에서 만나자고 할 적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상오는 한국에서 비엔티안으로 날아오고, 나는 미얀마 양곤에서 하루 먼저 날아와 짐을 풀고 공항에 마중을 나가는 걸로 달포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유희가 아니라 견문을 넓힌다는 마음. 즉 배우며 다니니 당연히 고행의 일로라는 각오로 다녔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상오는 이런 여행마저도 관광이라고 생각했는지 어딘가 모르게 차이가 있는 듯했다.
낙동강의 탕자!
상오가 가고 빈자리를 보며 불쑥 떠올라 입에 맴도는 말이다.
탕자의 비유!
구약이나 신약을 들먹여야 할 그런 걸쭉한 이야기가 아니고 여행이란 항상 그렇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지만 며칠간 해외여행을 같이 가서 한 방에서 생활을 해보면 전혀 보지 못한 단점이 발견되기도 하고, 또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에 상대만 지독하게 챙겼지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어떤 사람들은 같이 해외여행을 며칠 다녀와서 서로 간의 채무와 관계를 정리하고 인연을 끊고 사람들도 있다고 했고 심지어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혼인신고보다 먼저 헤어지자고 하는 신혼부부도 있다니, 여행이란 동행하는 상대에게 나의 단점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고 또 상대의 속을 얼마나 편하지 않은 눈으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부작용을 익히 알고 있기에 젊은 시절부터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
국내 여행도 그렇고 지금 여유를 가지고 다니는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남모르게 배낭을 꾸려서 주로 혼자 나선다. 어디를 가든지 혼자 나서는 게 발걸음이 가벼운데, 혼자 다녀서 나쁜 건 끼니를 자주 거르고 다닌다는 아주 고약한 점이 있다.
혼자 다니다가 출출하면 길거리 음식 서너 조각 먹고, 점심 거르고 또 서너 시 되어서 먹을만한 게 보이면 그걸로 군것질하면 당연히 저녁 생각이 없고, 자기 전에 그 나라 상표의 캔맥주라도 하나 들고 호텔로 들어가면 끝인 날이 대부분이다. 같이 다니는 동반자가 있으면 상대를 생각해서 끼니와 때를 챙기는데 혼자 다니면 그 점은 분명히 등한시하게 된다.
탕자의 비유!
구태여 성경을 들먹일 것도 없이, 샤르트르의 말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바로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인데, 가끔 누구랑 같이 다니면 그 말이 입안에 머뭇거리기도 하고, 또 누구를 만나면, 과연 이 자가 지옥인가? 잔뜩 세운 촉으로 더듬을 때가 있다.
동남아의 물가가 싸서 만만한 나라를 기웃거리며 되지도 않은 사업이라고 하다 보니 가끔은 격의 없이 지내는 지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외국물을 못 먹은 친구의 간청으로 더러는 나올 적에 같이 나와서 한 바퀴 바람을 쐬고 돌려보낼 적에는, 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태워주는 걸로 끝내기도 하는데, 상오는 내가 끊어서 보낸 저가 항공으로 혼자 나와서 호텔로 가지 않고 내 숙소에 같이 머물며, 같이 기웃거리고, 같이 둘러보고 혼자 돌아갔다.
어지간히 친한 친구라면 숙소로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 점을 먼저 밝히는데, 야! 참 맛있다. 자네 덕에 내가 이런 호강을 다 하는구만! 뭘 먹다가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하는 친구도 있고, 또 다른 유형은 맛있는 걸 먹을 적에는 묵묵히 먹고, 조금이라도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지적하는 친구도 있다.
뭐야? 맛이라는 게 뭐 이따위야?
말이 그렇게 나오면 단박에 받아치는데.
이 친구야! 입맛에 맞는 건 집에서 먹어! 뭐 하러 집 나와서 입을 고생시켜?
그렇게 받아치면 꼬리를 내리는데, 상오로 따지면 후자에 해당한다.
해마다 닥치는 물난리로 가난을 피할 수 없었던 강마을, 고향의 불알친구로 태어나서 중학까지 같이 다녔고, 군에 다녀오고 결혼하고 나서 불알친구라는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만든 계모임을 거의 삼십 년이 넘도록 같이한 사이인데 상오에겐 평소에 보지 못했던 점이 이번 여행을 통해 드러났다.
맛있는 음식이란, 폭을 축약해서 비유한 대상이고 확대해서 말하자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맞이하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보는 인간의 차이라고 말하겠다.
그렇게 따지더라도 상오는 분명 후자에 해당한다.
탕자라고 하니, 술과 노름, 혹은 성적 쾌락으로 패가망신한 작자를 떠올리는 이도 있겠지만, 상오는 이렇게 천박하고 후진 범주에서 탕자가 아니다.
낙동강 중간 토막에 붙은 강마을, 지금은 제방을 쌓았고 집중호우로 들판에 물이 차면 제방 저쪽 끝에 있는 펌프장에서 대형 펌프 네 대를 가동해 바로 들판의 물을 강으로 퍼내지만, 당시에는 해마다 수해를 피하지 못했던 가난한 강마을이었다.
아무튼, 그 낙동강 중간 토막에 붙은 강마을에서 태어난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까지 거침없이, 가뿐하게 마친 상오는 종손이며 장남이라는 특혜를 톡톡히 받은 친구다.
옛말에 학자 하나를 만들려면 가족 중에서 세 명이 남의집살이로 등짐을 져야 한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그의 누나와 동생, 중오가 장남의 학업에 희생되었다. 두 살 터울인 누나는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남동생은 중학을 졸업하고 직물공장으로 가서 생돈, 살아서 펄쩍펄쩍 뛰는 현금! 언제든지 꺼내서 흔들 수 있는 현찰을 만들어야 했다.
쇠락한 종갓집의 강변 농사만으로는 현금을 만지기가 어려웠던 시절, 당시에 대구의 시내버스 차장이 받은 월급과 직물공장 시다가 받아오는 현찰을 받아 쌈지에 넣던 상오의 아버지 입에 붙은 말씀은, 종손이자 장손이 잘되면 형제들과 집안을 두루두루 보듬느니라!
집안을 보듬고 형제를 거둔다는 말씀! 그걸 지엄한 장손의 책무로 여기시며 자신의 날개를 쓰다듬으셨다.
정말 진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이 대충 짐작되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상오의 어머니는 종손이자 장손의 동생인 중오가 직물공장의 기름 강아지가 되어 굴렀으니 쓰리고 안타까움으로 늘 눈가가 짓물렀지만, 참말로 하늘 같은 종갓집 종손의 뜻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오가 정말 잘되어 집안을 보듬고 형제를 거두기를 믿어서 역시 의심치 못했다.
보통 이야기라면 여기쯤에서 그러나, 라는 연결고리를 설정해 이야기가 반대편으로 넘어가겠지만 조금 뒤로 미루고 며칠을 같이 지내다 보니 상오 앞에서는 절대로 거론하면 안 되는 몇 가지가 발견되었다.
불알친구로 태어나 같이 자랐고 군 생활을 제외하고는 여태 연락을 끊지 않고 살았지만, 상오에게 그런 구석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으니 발견이라 해야 마땅하겠다.
발견? 친구에게서?
발견이라는 다소 거리감을 지닌 말로 수식할 수밖에 없는 상오와 거리감 없이 공유하는 옛 기억은 어쩌면 강이 전부였는지 모르겠다.
강을 얘기하니 생각난 건데 여기에 와서도 여행하는 동안 강마을 출신 촌놈답게 둘은 또 강을 공유하며 탐했다. 예전에 함께 뛰어다닌 낙동강 백사장이 아니라 메콩강을 어지간히 훑고 다녔다는 얘기인데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여정이라 다니다가 생각나면 자유롭게 방향을 틀곤 했는데 그렇게 찾아간 길 끝에 매달린 건 전부가 강이었다.
티베트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중국 위난 성을 거쳐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거쳐 비엔티안을 휘감아 나가는 강이라, 이 도시의 삼면을 강이 둘러싸고 흐르며 태국과의 국경을 형성한다.
메콩강은 여기서 더 흘러가면 태국 국경을 넘어서 미얀마 국경과 닿아 있고 더 내려가면 캄보디아의 국경을 만들며 베트남으로 흘러들어 옛 지명 사이공, 바로 호찌민에서 바다로 흘러드는데 그 아래쪽은 강폭이 끝을 짐작할 수 없도록 양양하지만, 이 도시는 메콩강 상류라 강 건너 태국의 작은 마을까지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강변도로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서 흘러가는 강 건너 태국의 작은 마을을 구경하는 걸 상오는 어지간히 즐기곤 했다.
상오는 오토바이를 배우지 못했기에 늘 내 뒤에 실려 다녔는데.
수틀리면 돌려 버린다?
여행하는 동안, 핸들은 내가 쥐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최대의 협박이었다.
다니면서 그 말을 열 번도 넘게 했을 것이다. 과속이라고 타박할 때마다 그 말을 했으니. 그가 오토바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건, 중학을 졸업하고 강마을에서 유일하게 도회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참 오토바이에 미칠 나이에 오로지 만화방이나 기웃거렸던 친구는 오토바이를 배우지 못한 설욕을 톡톡히 당하고 떠난 셈인데 그는 굽이굽이 돌다가 강이 나타나면 버릇처럼 오토바이 뒤에서 양팔을 쳐들며, 아버지라고 외치곤 했다.
아버지? 여긴 낙동강이 아니라 메콩강이라구!
그의 환호나 외침이 귀에 거슬려 나는 그렇게 반박하며 문득문득 중오를 떠올리곤 했다. 형의 친구라서 그런지 나를 만나면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서먹해하는 중오는 성격이 우유부단하지 않다. 딱 부러지고 끝을 맺은 강단을 지녔다.
고향의 두 살 터울이라, 만약 친구인 상오가 없었다면, 이 나이쯤 되어 상오가 고향의 친구라고 하며 돈독하게 지내도 무방하겠지만, 상오가 있어 어디서 만나더라도 약간의 격차를 두고 나와는 거리감을 유지한다.
어린 나이에 직물공장 기름 강아지로 굴렀던 중오는 약간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고등학교와 검정고시를 거쳐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의 야간반에 입학하는 걸로 중졸의 꼬리표를 떼고 지금은 고향 언저리 강마을 들판에 대단지 축사를 짓고 한우를 사육하는, 상당한 부농으로 자리매김했다. 중오를 떠올리니 얼른 고집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그도 나이가 드니 뒤통수에 슬쩍슬쩍 드러나는 옹고집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덜미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옹고집? 최소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분명 선친이 지녔던 아집. 남의 이야기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던 그 옛날 옹고집을 목덜미에 그대로 물려받았다.
중오는 상당한 거구인데 뒤에서 보면 뚜렷하게 목덜미에 나타나는 옹고집!
씨도둑질은 못 한다?
거구의 목덜미를 뒤에서 보며 헛웃음으로 혀를 내두르며 흘리는 말인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강단을 지닌, 자기주장이라 해도 좋을 중오의 옹고집으로 인하여 강을 보면 뒷생각 없이 대뜸 아버지라고 외치는 상오는 정작 제 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지조차 못하는 위인이 되어버렸다. 정말 상오의 아버지는 강이 되어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날개가 부러진 강!
제 아버지가 그렇게 믿었던 종손이고 장손인, 상오가 제 아버지의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한다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게 냉엄했다.
당사자가 아닌 남들에게 그래서 세상은 재미있는 거고. 그 얘기는 먼저 하면 또 내 정서가 펄럭일 터이니 잠시 접어 두고 메콩강의 강변도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거부터 짚고 가자.
송오가 떠나기 며칠 전에도 점심을 먹고 나자 송오가 강을 얘기했다.
아마도 오후의 짜임새 없는 시간이 무료해진다는 걸 눈치챘던 모양이지 강을 들먹였다.
비엔티안 강변도로를 달려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우정의 다리를 지나서 메콩강이 비엔티안을 휘감아 빠지는 지점, 그곳이 변두리 농촌 마을 쪽으로 한번 내려가 보자고 제안했다. 그때까지 우리가 자주 간 곳은, 우정의 다리가 있는 곳. 바로 강 건너 태국의 농카이가 빤히 보이는 곳까지 가서 강변의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부근의 전원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유시간을 즐기다 돌아오곤 했는데, 상오에게 참 나쁜 버릇은 Beerlao (비어라오) 라는 라오스의 대표적인 맥주를 마시면 꼭 가격을 한화로 셈하는 버릇이 있어 마주 앉은 상대방의 입맛을 잃게 만드는 건 참 고약한 버릇이다.
야! 이 맥주, 우리 돈으로 천 원도 안 되네!
그런 소리를 하면 나는 바로 받아쳤다.
이 친구야, 너 한국에서 돈 안 가져오고 여기서 벌어서 이 맥주 한 병 사 먹으려면 참말로 뒤지여! 네가 여기서 뭘 해서 이 맥주 한 병값을 벌 거야?
그런 견해 차이란, 상오는 유희를 겸해서 놀러 온 것이고 나는 라오스는 아니지만 외국에 벌러 나온 사람이라 입장이나 가치관의 격차가 아닐는지.
어느 나라를 가든지 기름 일 리터에 일 달러라고 생각하면 된다. 산유국이 아닌 이상 거의 비슷하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서 공무원 한 달 월급을 받아서 기름을 몇 드럼이나 살 수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생활 수준을 파악하면 가장 쉬운데, 그 나라 물가를 생각해서 현지 공무원의 두세 달 월급 정도의 금액을 쓰면 적당하다고 판단하고 그 금액을 맞추려고 나는 애쓰는 편이다. 그렇다고 고린내가 날 정도로 자린고비 행세는 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그렇게 자린고비가 되면 상당히 눈총을 받는데, 가끔 한국에서 온 사람 중에는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의 일인데, 비엔티안 시내에 캠콩이라는 야시장이 있다. 도심 중심부에서 메콩강 제방 안쪽에 있는 야시장인데 늘 외국인 여행객들로 북적댄다. 보통 오후 5시에 시작해서 밤 11시쯤이면 파장인데 이 나라를 다녀간 여행객이라면 대부분 들르는 야시장이다. 물건도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또 인근 음식 야시장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어 그곳에 여행자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여행자들에게 각종 편의 시설, 여행사나 교통 예약, 그리고 호텔과 마사지 가게가 밀집해 있다.
꼭 사야 할 물건이 없더라도 야시장 들르면 뭔가 한두 가지 들고나오게 마련이다. 다른 데서는 구할 수도 없고 저렴하기에 빈손으로 나오는 여행객을 드문데 그날은 메콩강 하류를 한 바퀴 돌고 들어오면서 음식 야시장에서 간단하게 먹고 상오와 그곳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눈살을 찌푸리게 한 건 상오가 신을 슬리퍼를 사려고 신발을 파는 데를 들렀는데 한 분의 한국 아주머니와 그 장사치와 실랑이하고 있었다.
요지야 보나 마나 깎자는 거.
장사는 남아야 파는 거지! 이 단순한 논리이거나, 원리를 뒤집으면 깎자고 해선 안 되는데 이 한국 아주머니는 참 알뜰하시기도 하지. 끝까지 장사치를 물고 늘어졌다. 옆에서 보기가 민망해서 우리는 외면하고 야시장을 한 바퀴 돌았지만, 슬리퍼가 마땅한 게 눈에 띄지 않아 다시 그 가게에 갔는데 그 아주머니는 그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깎자는 물건은 흰색 샌들이었는데 그게 거의 한 시간 남짓. 결국 현지의 돈으로 일만 낍을 깎자는데 장사치가 손을 들었고 물건을 사기는 했는데, 만 낍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육백 원 남짓!
상오가 그 상황을 눈치챘는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야! 저게 육백 원을 번 거야, 손해가 난 거야? 한 시간이 넘는데?
상오의 말을 들은 샌들을 팔았던 아저씨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그러게요. 라는 말로 고개를 저었다. 그 장사치는 한국어를 알고 있는 듯했는데 끝까지 그 아줌마에게 단 한마디도 한국어를 하지 않았다.
한국어를 알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장사치의 속내는 무엇일까?
아무튼, 상오에게 다니면서 한국의 수입이나 물가를 기준으로 하지 말라는 소리를 수없이 했는데 주책없이 한화를 기준으로 들먹이는 바람에 내가 늦게는 발끈했다.
너? 한국에 가서 다른 놈들에게 오라고 해서 갔더니, 천 원도 안 하는 싸구려 맥주만 사주더라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마라!
발끈하며 주의를 주곤 했는데, 사람을 보면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일단 경제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면. A이라는 사람! 주머니에는 제 돈이든 남의 돈이든, 항상 주머니에 돈을 가득 넣고 흥청망청 쓰며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뒤를 보면 제 재산은 전혀 없는 사람이 있고, 또 B라는 사람은, 언제나 빈 주머니로 다니며 자린고비처럼 쓰는데 뒤를 보니 재산을 어마어마하게 지니고 있더라.
어느 사람이 행복할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C라는 사람은 주머니에 돈도 가득하고, 따져보니 재산도 어마어마하더라, 죽을 때까지 다 못 쓰고 죽는다? 반면 D라는 사람은 늘 빈손으로 다니며 술자리에선 친구들에게 빈대가 되는데 재산도 없고, 있는 건 빚뿐이며 자랑할 거라고는 네 돈이든 내 돈이든, 풍덩풍덩 써대는 씀씀이뿐이다.
간단하게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을 짚어보았는데 어느 사람이 가장 행복할까?
단지 경제적인 면만 놓고 볼 때?
답을 요구하기 전에 난데없이 왜 이런 분류 방법을 동원할까? 상오를 적나라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잠깐 빌려온 예시인데 상오는 D라는 유형에 해당한다. 주머니에 돈도 없고 뒤를 돌아보아도 가진 재산이 없으니.
아들딸 출가시키고 나서 무슨 사연인지 아내와 뒤늦게 이혼하면서 나오는 연금은 아내 앞으로 싹 넘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연금은 분명히 나오는데 상오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은 없다.
상오는 D의 유형에 해당하면서도, 속되게 표현하면 남에게 빈대 붙으면서도 싸구려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냉소를 띄운다.
뭐 이딴 걸 먹겠어?
이거 몇 푼이나 한다고?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툭 튀어나오는 말이 대충 이런 식이다.
원래 학교 선생님으로 정년까지 채우면 세상 물정을 모르기에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거나 장사에는 절대 손대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눈치가 없다는 말인데, 상오에게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소리다.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눈치라는 수단인데 그는 그것마저도 무딘 듯했다.
뭐든지 아끼는 게 없어 눈총을 따갑게 받기도 하는데, 가령 같이 밥을 먹다가 식탁에 물이 조금 떨어졌다고 하면 탁자에 있는 휴지 한두 장을 뽑아서 닦으면 좋으련만 상는 퍽퍽퍽 일고여덟 장이 넘게 한 줌 가득 뽑아서 대충 닦고 버린다.
그걸 지적하면 휘둥그레진 눈으로, 네 거냐? 하는 식의 눈초리.
말을 말자.
일전에 태국으로 넘어가는 우정의 다리가 있는 곳으로 강을 따라 내려갔다.
그곳에서 버드나무 식당에서 차를 마시다가 의기투합해서 한나절 동안 국경을 넘어가사 농카이, 그 작은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토바이는 국경을 넘는데 절차가 복잡했으므로 인근 커피집 마당에 세워놓고, 다리를 넘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상오는 태국이라는 나라를 그날 처음 밟았다고 했는데, 한나절에 다른 나라를 갔다가 오니 그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날 어두컴컴해서 국경을 다시 넘어왔는데 오토바이로 돌아오다가 들른 맥줏집에서 탁자에 술 몇 방울이 떨어졌는데 또 그렇게 휴지를 마구 뽑다가 옆에 앉은 아가씨한테 손목이 잡혔다. 휴지를 퍽퍽퍽 뽑으니, 옆에 앉은 아가씨가 송오의 손목을 잡고 휴지를 빼앗아 두 장으로 탁자를 닦고 나머지는 휴지의 곽에 다시 넣는 걸 보더니 송오는 비로소 제가 뭘 잘못했는지 눈치를 채고 머쓱해하는 눈치였다.
순간적으로 아까웠는지 송오의 손목을 잡고 휴지를 빼앗은 아가씨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하고 가자.
그날 농카이에 갔다가 친구를 오토바이 뒤에 싣고 돌아오는 길에 송오가 어깨를 두드리면서 저기 가서 목을 좀 축이고 가자고 해서 들른 곳이 허허벌판에 네온이 번쩍이는 맥줏집이었다. 그 들판에 맥줏집이 있을 곳이 아닌데 눈치로 보아 태국의 젊은이들이 비교적 물가가 싼 라오스로 다리를 건너와서 물이 좋은 라오스 맥주를 마시며 밤새 흥청거리다가 아침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젊은이들을 노리고 들어선 맥줏집인 듯했다.
농카이에서 건너와 바로 들렀으니 초저녁이라 다른 손님은 없고 둘이 맥주를 마시니 어린 아가씨들이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하고는 마땅히 앉아야 하는 자리인 양 맞은편에 앉았는데, 그게 무려 네 명이었다. 그런 가게의 영업 방법을 모르니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애초에 맥주 두 병을 시키니 잔을 대여섯 개 가져올 적에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우리는 눈치가 무디었다. 둘이 아가씨를 무려 네 명이나 앉혀놓고 맥주를 마시며 물었더니 놀랍게도 전부가 미성년자!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가씨 네 명의 나이를 합치니 내 나이와 얼추 딱 맞아떨어졌다. 열다섯 살이거나 열여섯이라는 얘기!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키나 한지?
애초에 목이나 축이자고 들른 곳에서 어린 아가씨들이 자꾸 주저앉히는 바람에 맥주를 거의 한 상자를 마시고 자리를 틀고 나올 적에 어린 아가씨들이 15달러에 뜨거워진 밤을 책임지라며 서로 따라 나오겠다고 해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당황하며 놀랐다. 아가씨들은 떨쳐버리고 나오면서 생각하니 태국의 젊은이들이 단지 싼 맥주를 마시기 위해 국경을 넘어오는 게 아니라 싼값에 몸을 파는 그 아가씨들을 겨냥해 태국의 젊은이들이 넘어온다는 사실. 그건 모르고 있었다.
상오는 그날 아가씨들의 애절한 눈빛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걸 두고두고 얘기했다.
너? 정말 교육자, 선생님 출신이 맞나?
그렇게 애틋하면 나중에 네 돈 가지고 와서 혼자서 한 번 가든지!
면박을 줄 정도였는데. 그렇다.
상오는 선생님 출신이다.
공립고등학교 선생님! 그 가난한 강마을에서 사범대학에 진학해 바로 공립학교 발령을 받았으니 상오의 아버지는 날개를 달았다.
강의 날개!
아버지의 강은 그렇게 유장하게 흘렀는데. 정말 강은 날개를 달았는데.
거, 보란 듯이 목소리에 힘이 실린 송오 아버지는 들일을 하더라도 쟁기날에 힘이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쟁기날에 힘은 고사하고 강의 날개가 뭉텅, 부러졌다.
부러진 강의 날개는 바로 아들이 전교조 해직 교사 1순위.
상오는 가끔 전교조나 민주화를 얘기하는데 그때 보면 사람이 약간 달라진다. 우월감이라고 할까, 상대를 살짝 낮추어 보는 듯한 눈빛.
넌 이런 거 모르고 있었지?
살짝 우월감에 젖어 말을 이어가는데, 내가 알고 지내는 어느 여류 시인. 꼭 그 시인이 아니더라도 페미니스트를 얘기하고 페미니즘을 들먹일 때, 난 너희들과 달라! 그 눈빛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걸 얘기할 때 저도 모르게 살짝 지적 우월감이나 사상의 존엄에 젖기도 하는데 그런 이념이나 사상이 못마땅한 게 아니라 그런 태도나 눈빛을 보면 울컥, 욕지기가 나온다. 페미니즘이나 민주, 좌익이나 저항을 자신의 인품을 살짝 올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인데.
저속하고 천박한 저질의 우월주의자!
그래서 상오와 함께 지내는 동안 많은 충돌이 있었다. 상오에게 박정희란 인물을 천하의 역적이라는 자에 해당한다. 민주화를 역행한 독재자이며, 쿠데타를 일으킨 전범에 불과해서 내내 나와 의견이 토닥거렸다.
이런 정신이나 태도는 지적한다고 바로 고쳐지는 게 아니다. 이런 태도가 고착되면 고치려고 하지 말고 관계를 청산하고 버려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심지어 BUS44라는 중국의 실제를 재구성한 영화가 있다.
여성인 버스 기사가 승객 44명을 태우고 산길을 달리다가 승객 중에서 괴한으로 돌변한 자에게 끔찍하게 성폭행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단 한 남자만 모을 던져 만류하고 다른 승객들은 보고만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이 여성 버스 기사는 만류했던 그 남자만을 버스에서 내려놓고 출발해서 바로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버스를 추락시켜 몰살하는 이야기인데 이 영화를 찾다가 인터넷에 올라온 평을 보고 깜짝 놀랐다.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쳤다. 세상에!
별로 주제가 없는 이야기인데 페미니스트들은 이 영화를 보고 울며불며 격분하더라!
영화 BUS44를 찾다가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이 글을 봤는데, 순간 내 입에선, 어떤 개가 이따위 새끼를 내질렀어? 입에 담지 못할 말이 그렇게 튀어나왔다.
인간성을 뒤적이는 영화에 어떻게 남녀를 갈라놓는 페미니즘을 들먹여?
모든 걸 인간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나 민주화를 놓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단적인 얘기인데, 갈 데까지 가버린 시대! 참 고약한!
아무튼, 이야기를 돌려서 강의 날개는 꺾였다.
전교조 해직 교사 1순위로 상오의 이름이 올랐고, 그를 향해 교문도, 학생들의 마음도 열리지 않았다.
해직! 그 사실이 상오아버지 귀에 들어가자, 날개가 꺾인 강은 식음을 전폐했다. 오로지 술이었다. 농사도 뒷전이고 오로지 술을 찾았는데, 술에 취하면 집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두 팔을 번쩍 쳐들며 상오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그 과정을 보지 못했지만.
상오야! 이기 머고? 상오야 이기 머시고? 사앙오오야!
비탄에 젖어 그런 식으로 고함을 토하고 쓰러지곤 했다고 들었는데, 상오가 삼 년이 넘게 걸려 다시 복직하는 걸 강은 보시지 못하고 날개가 꺾인 채로 추락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술만으로 산 지, 고작 칠팔 개월! 간암으로 쓰러진 상오 아버지는 피를 토하고 다시 일어나 날개를 달고 흐르지 못했다. 강은 그렇게 흘러갔는데.
상오는 지금 제 아버지의 제사에 참석도 하지 못한다. 제사는 중오가 지내는데 근방에 얼씬거리지도 못한다.
상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오는 맏이로서 상주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건 우리가 조문했고 발인하는 날 산에까지 따라가 같이 운구했고 산소를 만드는 과정을 보아서 알고 있다. 장례는 순조롭게 치루었다. 그러나 삼우제를 지내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상오는 제 동생 중오에게, 뒤통수를 맞았고 언어의 폭력에 기습적으로 가격당했다.
아버지를 잡아먹은 새끼!
말이 동생에게 당하는 폭행이지, 그날 개죽음이 되도록 맞았다고 들었다. 온 집안 식구, 아내와 심지어 상오 자식,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 상복이 찢어지고 논두렁에서 밀려 논바닥에 뒤집어졌는데도 동생에게 마구 밟혔다는 것만 들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중오가 들먹인 건 바로 그거였다. 집안도 못 다스리는 놈이 참교육! 그게 무슨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데?
그 뒤에 따라오는 욕설은 차마 생략하자.
그때부터 중오에겐 제 형, 상오는 인간이 아니었다.
중오가 심성이 악한 아이가 아닌데 지금도 제 형만 보면 사람이 돌변한다.
중오가 인간이 아닌, 아버지를 잡아먹은 새끼에게 제사를 맡길 수는 없고, 제가 지낸다고 해서 들에 있던 약간의 전답은 모두 중오가 빼앗아 갔다. 그 과정에서도 중오의 폭력이 있었다고 했다. 중오는 백팔십이 넘는 거구에 노동으로 단련된 몸이다. 상오가 물리적으로 붙어서는 상대가 안 된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도 고약하지만.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은, 상속 포기 각서를 쓸 때 중오가 제 형 상오를 깔고 앉았다는 말도 있는데 그건 믿을 바 아니고 물리적으로 압력이 있었던 건 분명한 모양이다.
지금도 상오는 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위해 참석하지 못한다. 서너 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만약 가면 그날은 제사는 고사하고 집안싸움에서 분란 정도가 아니라, 칼이 날아다닐 정도로 험악하게 난리가 난다.
참 가슴 아픈 일이긴 한데, 상오가 다녀가고 나는 인간과 사람의 차이를 자꾸 의심하게 된다. 버릇처럼.
강의 날개.
그가 떠난 빈자리가 허허롭다. 어릴 적 친구라 완벽하게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부분에서 상당한 발견이 있었고 날개가 꺾인 강은 아직 내 가슴 언저리로 흐르고 있었다.
강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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