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쏙, 빠지는 꿈
김도은
내 이름이 나의 행세를 하고 다녔다
이름이 아무도 모르는 내 몸의 흉터 하나를 불렀다
처음엔 부끄러워 대답 못 한 일들
이미 몇 사람의 비웃음을 거쳐 이름에 다가간 흉터들
흉터를 동원해 이름이 되는 일은
위험에 올라타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라 했다
힘껏 던진 것들은 멀면서도 가까운 곳이 된다고 해서
안심하거나 조바심이라 생각했다
흉터 하나가 다시 생겨나자
나는 성한 곳이 없었다
썩은 이빨 하나와 새 이빨 하나를 바꾸는 일은
앙다물어야 할 앞일을 어렴풋이 분간하는 일이었다
이름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일은
점 하나가 빠진 얼굴과는 다른 모습
아주 잘 아문 기억 하나가 쏙 빠져나갔고
괴어 놓은 돌이 어디론가
굴러간 일이라서
이름이 빠진 꿈을 꾼 아침엔
개명을 생각하거나
잘생긴 가명을 뒤적거렸다
너무 이름이 튀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얼굴과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이름만 모아 놓은 모임이 있다고 들었지만
운석이 떨어진 자리 같고
체인이 벗겨진 자전거 바퀴 같아서
이름의 무게를 찾아보면
재사용되는 이름들도 꽤 있는 이름의 방식
지구엔 이미 살다 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이름들이
산더미처럼, 아니 우주의 별들처럼 많다
심지어는 내 얼굴도
태어나고 나서야 만난 얼굴이라는 것
우리가 사라져도 이름의 자세는 남을 테니까
이름이 불리면서 이름을 알게 되는 거니까
한 번씩은 이름을 다시 보내주어야 했다
온 힘을 다해 누군가로 되돌아올 때까지
2025 월간 모던포엠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