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머리 감으러 가는 백화점
낙후지역에 백화점 들어서자
화장실서 머리 감는 고객도
드라마 촬영하며 인지도 높여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구로본점)을 1993년 열었을 때는 생각지 못한 일이 많았다. 당시 구로는 공업 지대였다. 서울의 낙후 지역 가운데 하나였던 구로에 백화점이 처음 생기다 보니 에피소드가 많았다. 어떤 고객은 층마다 마련해 놓은 생수대에서 병에 물을 받아 집으로 가져갔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백화점 화장실에 와서 씻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를 감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배추를 씻어서 절여 가는 고객도 있었다. 지하 슈퍼마켓에서는 쇼핑카트가 없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구로 지역 집집마다 애경 쇼핑카트가 한 대씩은 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백화점 직원들은 이 때문에 전전긍긍했지만 나는 그냥 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생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쇼핑카트가 없어지는 일이 줄었다. 나중에 구로지역 국회의원이 됐을 때 지역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을 만나면서 “아, 그때 그럴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에 나섰던 2000년 당시도 낙후돼 있었는데 7년 전에는 오죽했겠는가.
애경백화점 구로본점은 개점 첫해인 1993년 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도 중요했지만 백화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고객을 백화점으로 오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에 구로라고 하면 공장이나 쪽방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구로에 백화점이 생겼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했다.그래서 다양한 논의 끝에 1994년 6월 6일부터 7월 26일까지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촬영을 애경백화점 구로본점에서 하도록 장소를 협찬했다. 잘 알려진 대로 백화점 사장의 아들인 차인표 씨와 매장 판매직원인 신애라 씨의 사랑을 다룬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 최초로 백화점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드라마는 시청률이 무척 높았고 많은 유행을 이끌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에서 만난 인연으로 차인표 씨와 신애라 씨는 결혼을 했고 그만큼 애경백화점의 인지도가 올랐다.
개점 후 자리가 잡히고 인지도가 오르면서 매출은 △1994년 1800억 원 △1995년 2100억 원 △1996년 23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으로 올랐다. 1989∼1995년 국내 유통산업의 평균 성장률이 6%였던 데 비해 애경백화점은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 갔다. 유통업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백화점 직원의 사기가 오르고 자신감도 붙었다.애경백화점 구로본점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판단하고 1995년부터는 점포 확대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백화점은 유통업이라 바잉 파워(BUYING POWER)가 중요하고 이를 확보하려면 여러 점포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철도청과 합작해 1995년 5월 수원민자역사, 1997년 10월 평택민자역사를 설립했다. 백화점은 ‘목’이 핵심인데 사람이 많이 오가는 철도역사는 이런 점에서 최적의 장소이다.앞으로는 쇼핑 휴식 놀이 교육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복합 쇼핑몰이 각광을 받으리라 예상하고 1999년 8월 수원민자역사 건설에 나섰다. 2003년 2월에 애경백화점 수원점(현 AK플라자 수원점)을 열었다. 수원점 앞은 인근 15개 대학을 오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이 있고 기차뿐 아니라 1호선 지하철역을 통해 수원역사를 이용하는 인구가 하루 6만 명 이상이다.구로본점을 지을 때 시도했던 복합쇼핑몰 개념을 수원점에 확대 적용했다. 영화관(CGV),대형 서점(북스리브로), 패밀리 레스토랑(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대형 슈퍼마켓 등 고객 편의시설이 역사 안에 들어섰다. 이런 장점 덕분에 수원점은 개점 이후 매년 20% 이상 고속 성장했다. 수원점에 입점한 브랜드 중에는 해당 브랜드의 전국 매출 실적 1위를 올리는 곳도 적지 않다. 올 4월에는 AK플라자 평택점을 열어 2010년대 수도권에서 3개의 백화점을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에 차근차근 다가서고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회고록 동아일보 200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