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책이 있나요
‘뉴욕도서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이란 책이 있다.
1895년 첫 뉴욕공공도서관이 문을 연 후 지금은 뉴욕에 90여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걷다 보면 20분마다 도서관 하나씩을 발견할 수 있다는데,
1940∼1950년대 도서관으로 보낸 이용자들의 질문을 모은 책이다.
온라인 질문이 불가능했던 때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들 도서관으로 갔던 걸까.
그중 가장 대답하기 어려워 보였던 질문 하나가 생각난다.
“도서관에 ‘인간’에 관한 책이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사서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1871년 발표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란 글에서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며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와 '자연선택'의 개념을 설파한 다윈에게
'자연선택'은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기는 일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 요건은 '자상함'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윈의 이 발언을 소개하며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타인에 대한 다정함과 협력'을 꼽았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인류상으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하는 인간'을 천명한다.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서로에 대한 자상함과 다정함 등
긍정적 가치를 되찾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경쟁에 매몰되기보다는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며
아이의 성장을 다 함께 돕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인간은 타인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필요한 건 존중과 인정, 공감과 공명이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프리카 반투(Bantu)족이 쓰는 말,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우분투'(Ubuntu)이다.
'다정함'과'우분투’
‘덕분입니더’
다정한 것이 살아남고, 우분투가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함이란 거래가 아닌 삶의 태도
다정함으로 타인에 대한 기대 가져
돌려받으려고 하면 거래를 한 것이다
자신에게 중심 둬야 내 삶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그런 다정함이 모여 세상 변화시킨다
‘다정함에 대하여’라는 아야기를 종종 나눈다
만남에는 다정함, 그리움, 떠뜻한 추억이 숨을 쉰다
얼마 전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라는 책을 읽고 더 그렇다.
동창의 만남에는 더욱 다정함이 넘친다
다정함이 무엇일까
우리가 왜 다정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손해 보게 된다,
오해를 사게 된다 등의 말도 함께다. 사실 그게 맞다.
다정하게 사는 건 끊임없이 소진되는 일이기도 하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좀 다정하게 살아볼까 다짐하지만
곧 포기하고 자신을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다정은 쉽게 소진되고 상처받는다.
요즘의 다정함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언제부터인가 하면, 기대하지 않고부터다.
우리는 다정함을 행하며 타인에 대한 기대부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해주었으니까 이만큼은 돌려주겠지,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따라와 주겠지.
안타깝게도 타인이 나의 기대만큼 다가오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실망하고 멀어지고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다정한 선택을 하는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 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야.
이것이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니까 나의 평안함을 위해 하는 일이야.
네가 아니라 다른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나는 똑같이 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작년에 나의 여덟 살 아이(손녀)가 우울해한 일이 있다.
친구에게 5000원짜리 선물을 주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누구냐, 그런 아이와 놀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해주고도 싶었다.
몇년 전의 나였다면 아마 그런 말을 했을 듯하다.
아이에게 물었다. 선물했을 때 너의 마음이 어떠했느냐고.
그는 친구가 좋아해서 자신도 좋았다고 답했다. 사실 내가 원한 답이었다.
그래서 아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린아, 선물을 한 이유가 그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어,
아니면 돌려받고 싶어서였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럼 그건 린이가 착한 일을 한 거야.
그런데 돌려받고 싶어서 선물한 거면 그건 착한 일이 아니라 거래를 하려 한 거고.
린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뭐야?”
“착한 일이었어.”
“그럼 그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린이도 보상을 다 받은 거지?”
아이는 그렇다고 말하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선물은 받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래서 함께 웃었다.
다정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더욱 어렵다.
휴게소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밥을 좀 사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자신이 갖고 다니는 홍삼을 사 달라고 했다.
그래서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사드렸는데 그게 영업 방식인 걸 나중에 알았다.
더 이상 다정하게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증오하려고 살아남지 않았다
증오를 느끼고 불태우는 일은 본래 증오를 자극했던 사건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증오는 점차 몸집을 키우며,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잠복한다.
말하자면 증오는 당사자의 속을 꾸준히 갉아먹는다. (···)
분노와는 다르게 증오의 분출은 자신의 감정을 푸는 것보다
증오 대상을 단호하게 파괴하려는 데 치중한다. 증오는 거듭 타오를 뿐,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 중에서.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인 라인하르트 할러가
“인간의 감정 중 가장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감정”(아리스토텔레스)
‘증오’를 다각도에서 고찰한 책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증오 전파자들의 세뇌 방식’.
주로 종교 지도자와 세속의 정치가인 이들은 선동적인 말과 글로 증오에 불을 지르고
거리낌 없이 폭력을 조장한다.
“끊임없는 구호로 부정적 생각 심어주기.
개인이 자신의 위상을 의심하고 상대화하는 것을 차단하기.
증오 대상과 그룹에 잘못 전가하기. 모든 공감의 거부. 증오의 합리화와 찬미.”
이 대목에서 거리에 증오가 넘쳐나는 오늘 우리 현실이 겹쳐진다.
로맹 롤랑은 “증오가 내 심장을 채운다면,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진다”고 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로 인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라! 그러면 심연도 너를 응시할 것이다”
니체의 말은 증오에 증오로 답하는 증오의 연쇄 고리를 깨라는 유명한 잠언이다.
“증오를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고결한 방법은 용서”라고 결론 내린다.
나치 정권의 폭압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책으로 쓰고 강연한
유대인 여성 잉게 아우어바허의 말도 소개한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모든 사람의 화해”라고 외쳤던 그는
독일 전역 학교에서 강연할 때마다 똑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나는 증오하려고 살아남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왜 사느냐”
“왜 사느냐면, 그냥 웃지요!”
푸르른 젊은 날엔 ‘왜 나는 살아야 하나?’
내 존재의 이유를 거듭해서 묻고 또 물었다. 어디 나뿐일까.
사람들은 자기 생에 밀어닥치는 일들에 대해 그 까닭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더 많으니까.
그렇다면 삶의 이유를 알려고 애태우기보다 그냥 자기 앞의 주어진
생을 살아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숱한 삶의 고비를 지혜롭게 넘어온 한 영성가는 해독할 수 없는
존재의 물음 앞에 빙그레 웃고 마네.
다정함이 무엇인가?
나는 그에게 앞으로도 다정하게 사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건 당신이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온 삶의 가치이자 태도일 텐데,
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 때문에 저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세상은 홍삼을 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으로 인해 변화해 나간다.
당신의 회사도 당신과 같은 다정함을 가진 사람들이 잘 성장시켜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홍삼이라는 물건을 그런 방식으로는 사지 않으셔야 하겠다.
다정함도 정확하고 성실해야 한다.
친구에게 선물을 하는 여덟 살 아이의 마음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처음 본 할아버지에게 홍삼을 사는 신입사원의 마음도,
결국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행한 다정함으로 인해 타인도 나도 행복해지는 일.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해도 타인에게 마음의 중심을 두면
그의 반응에 따라 나의 삶이 망가진다.
왜 내가 준 금액만큼 선물을 돌려주지 않지,
왜 나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고 하지.
그러나 자신에게 마음의 중심을 두면 타인의 반응과 관계없이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돌아와, 우리는 왜 다정하게 살아야 하는가.
다정함이란 돌려받기 위한 거래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상의 태도다.
나도 늘 작게 행하고 크게 기대하게 되니 부끄럽지만,
그래도 새해에는 조금 더 다정하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겠다.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