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장서(巴里長書)
한국유림 독립운동파리장서비(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
서울 중구 장충동2가 산7-2
남산공원 산책길 입구에 한국유림 독립운동파리장서비(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가 세워져 있다.
일명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김창숙(金昌淑) 등이 주동이된 한국 유림(儒林)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던 파리 강화 회의에 조선의 독립탄원서(獨立歎願書)를 보냈다가 발각된 사건이다.
파리 강화 회의(Paris Peace Conference)는 1919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이 연합국과 동맹국 간의 평화 조약을 협의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회의이다.
이 회의는 1919년 1월 18일 개최되어 1920년 1월 21일까지 지속되었다.
파리장서(巴里長書)는 일제의 한국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이다.
파리장서 운동에는 광범한 유림층(儒林層)이 참여하였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유림대표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영남, 호서, 호남의 유림이 서명에 참가하였으며 서명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외에도 자금을 모집하고 연락을 담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파리장서를 휴대하고 해외로 파견되었던 사람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다.
그는 파리장서 운동의 발기자 가운데 한사람이며 서명자 규합과 파리장서 문안 작성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이장서는 상해임시정부 파견 대표자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되었고 또한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과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다.
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한 유림들을 체포 투옥 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이를 제1차 유림단 사건이라고 부르며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곽종석 이하 대부분의 유림대표가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국외로 망명하였다. 그 후 곽종석(郭鍾錫), 김복한(金福漢), 하용제(河龍濟) 등은 감옥에서 순사(殉死)하고 그 밖의 인사들도 일경의 고문에 못 이겨 죽거나 처형되었다.
충남 홍성읍 대교리에도 이고장 출신 김복한 선생의 파리장서(巴里長書) 기념비가 있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곽종석(1864∼1917)을 추모하는 고가(古家)와 면우곽종석유적 (免宇郭鍾錫遺蹟) 가 있다.
경남 진주에도 진주 출신 서명 유림인 하겸진(1870~1946), 하봉수(1867~1939), 이수안(1859~1929), 하재화(1860~1937) 선생의 파리장서에 담긴 숭고한 구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파리장서 기념비가 있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경상북도 성주(星州) 출생으로 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의 처형을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베이징에서 단재 신채호와 같이 독립운동지 천고(天鼓)를 발행하고, 박은식 등과 사민일보(四民日報)를 발간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192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에 당선되었으며 광복운동을 위하여 분투하다가 27년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원에게 체포되어 14년 형을 선고받고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8·15를 맞았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