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발레리
너무 많은 알맹이에 버티다 못하여
반쯤 방실 벌려진 단단한 석류여
스스로의 발전에 번쩍거리는
고귀한 이마를 나는 보는 듯하다!
오오 방실 입 벌린 석류여
너희들이 겪어온 세월이
오만하게도 너희들로 하여금
애써 이룩한 홍옥(紅玉)의 칸막이를 삐걱거리게 하여도
또한 껍질과 메마른 황금이
어느 힘의 요구에 따라
찢어져 빨간 보석과 과즙이 되어도
그래도, 그 빛나는 균열은
비밀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내가 지닌 영혼을 생각하게 한다.
[해설]
발레리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출전했다가 제대한 후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나르시스는 말한다' 등 나중에 <구시첩(舊詩帖)>에 수록되는 다수의 작품을 썼다. 1892년까지 창작을 하던 발레리는, "모든 것은 허무하다" 하는 지적(知的) 위기에 휩싸여, 그 때까지 거주하던 몽페리에를 떠나 파리의 하숙에 들어박혔다. 그 무렵의 사정은 난해한 소설 <테스트 씨와의 저녁 시가>에 묘사되어 있다. 그는 시와 결별할 작정을 하고 옛 시들을 수정하는 동안에 불현듯 시에 관한 흥미가 다시 생겨, 4년 동안에 걸쳐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후 시집 <젊은 파르크>를 출판하였다. (김희보)
[출처] 발레리 시 15수|작성자 옥토끼
[작가소개]
폴 발레리 (Paul Valery | 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ery) : 시인
국적 : 프랑스
출생-사망 : 1871년 10월 30일 - 1945년 7월 20일
경력 : 1931 칸 국제학교 설립
<요약>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말라르메의 전통을 확립하고
재건, 상징시의 정점을 이뤘다. 20세기 최대 산문가의 하나로 꼽힌다.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프랑스 세트
주요저서 : 《영혼과 무용》(1921), 《나무에 관한 대화》(1943)
남프랑스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출생하였다. 세관 검사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코르시카 출신이고 어머니는 제노바 출신이었다.
그 때문에 지중해는 그의 전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3세경부터 시를 짓고, 문학서적을 탐독하였다.
18세부터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는데, 이듬해에 우연히 파리 사람 피에르 루이스를
알게 되어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가졌으며, 또 필생의 친구 앙드레 지드와
스승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소개되어, 유망한 시인으로서의
기대 속에 순탄한 문학생활이 시작되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20세에 지적(知的) 혁명을 경험하여 지성(知性)의 우상을
숭배하기로 결심하였으며, 시작(詩作)의 포기와 함께 추상적 탐구에 몰두하여,
20년 동안의 침묵시기를 가졌다.
죽을 때까지 새벽에 일어나, 자신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쓴 전서(全書)
《잡기장(雜記帳)》 270책은 1894년부터 시작되는데, 그가 죽은 후 29권의
사진판으로 간행되었다. 3만 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지목되어 지금 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파리에서 일정한 직업 없이 지내면서,
논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법에 관한 서설》(1895)
《테스트씨와의 하룻밤 La Soirée avec Monsieur Teste》
(1896, 30년 후에 다른 산문작품을 덧붙여 《테스트氏》로 간행)
독일의 제패(制覇)》 등을 발표하였다.
발레리의 후일의 모든 작품은 이들 논문의 충실화와 발전이며,
그 초석 위에 이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육군부의 관리가 되었으며,
1900년에 결혼한 후로는 한가롭게 개인비서로 일하면서, 주로 사색과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시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4년간의 퇴고(推敲) 끝에 장시(長詩) 《젊은 파르크 La Jeune parque》(1917)를
발표하였다. 이어 전통적 작시법(作詩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작품들이
만들어졌으며, 《해변의 묘지》 《나르시스 단장(斷章)》 등을 비롯한
20여 편의 작품은 《매혹 Charmes》(1922)에 수록되고, 청년시대의
시들은 《구시장(舊詩帳)》(1920)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이들 작품은 말라르메의 전통을 확립하고 재건한 상징시(象徵詩)의
한 정점(頂點)이요, 프랑스 시(詩)의 한 궁극이라고 인정되어, 일약 대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그 후로 문필생활에 전념하여 거의 산문작품으로 활동을 계속해 나갔으며,
20세기 최대의 산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산문작품은 다방면에 걸치며
평론이 가장 많다. 논제(論題)는 지적 사상(知的事象) 전반에 이르며,
문학 ·예술 ·철학 ·과학 등에 관한 논고(論考)와 현대문명에 관한 고찰이
주요부분을 이루는데, 《바리에테 Variété》(5권, 1924∼1944)를 대표작으로 하여,
《예술론집》 《현대세계의 고찰》 등이 있다. 《영혼과 무용》(1921)
《외팔리노스 Eupalinos》(1923) 《나무에 관한 대화》(1943)의 3부작은
19세기에 두절된 대화형식을 부활 ·완성시킨, 사상과 언어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이 높다.
유일한 극작인 《나의 파우스트 Mon Faust》는 1940년에 자발적으로 시작한
미완성 작품이며, 만년의 사상을 전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 밖에 악극 ·산문시 ·소편(小編) 이야기가 있으며, 경묘하고 예리한
서간문도 주목된다. 1925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그 후로 프랑스의
공식적인 지적(知的) 대표로 추앙되었다. 유럽 각지에서 강연하고, 각종 단체와
학회 ·회의 등의 회장 ·의장을 맡아보았다. 또한 국제연맹에도 관계하여,
지적 협력의 중심인물로 활약하였다. 1937년 니스에 지중해 중앙연구소가
창설되자 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37년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시학(詩學) 강좌를 하였다. 그가 죽자 드골 정부는
국장(國葬)으로 그를 예우하였으며, 고향의 ‘해변의 묘지’에 안장하였다.
[출처] 폴 발레리의 시 4편과 작가 연구|작성자 옥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