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일단 잡설 한가지.
요즘들어 이상한 댓글들이 눈에 띄던데 최선의 대응책은 아예 반응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년전인가 댓글 알바에 대한 글 올라온 거 기억나시죠? 대댓글이나 댓글수에 따라 수당이 결정되는 거.
그리고 제가 예전에도 썼지만 애초에 뚜렷한 목적을 갖고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무리 논리정연한 반박 논리에도 절대 설득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알아듣게 설명해줘봐야, 혹 비아냥대어봐야 소용이 없죠. 댓글이 달릴수록 낄낄댈 뿐.
아마 제 글에도 그 한심한 댓글들이 달리겠죠. 부디 그 댓글에는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 하물며 악플을 바라고 꼬인 날파리에게 무플보다 심한 벌은 없겠죠.
아, 물론 목적어는 없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 경험담을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언젠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작년에 당시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주고 6호선을 탔는데 월곡인가, 안암인가 즈음에 옆에 한 남자가 앉더군요. 처음엔 신경을 안 썼는데, 가만히 보니 제가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더군요. 헤드폰을 빼고 들어보니 제가 제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놨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얘기하면 당시 매우 늦은 시간이라 지하철이 거의 비어있고 제가 앉아있던 쪽에는 저 한명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자리가 없을때는 물론이고, 자리가 몇개만 비어있을때도 웬만하면 가방을 절대 자리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그때는 늦었고, 거의 혼자 가는 수준이라 올려놨죠.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쳐다봤더니 뭐라고 한참 씨부렁대더군요. 그래서 대꾸 안하고 그냥 가방을 내려놨죠. 근데도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었습니다. 피곤해서 그냥 헤드폰을 꼈습니다. 대응하는게 손해란 걸 알았으니까요. 감정을 가라앉히다 보니 헤드폰 줄이 폰에서 빠져있었지만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있어서 어차피 들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방에서 뭘 꺼내려고 잠깐 가방을 옆자리에 올렸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광분하더니 "내가 경고했지?"하면서 일어나서 제 가방을 차더군요. 열받았지만 참았습니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녹음하기 시작했죠. 나중에 싸움이 일어나면 경찰서에 증거로 제출하려고요. 솔직히 그 사람이 먼저 한대 쳐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제가 체구가 작은 편이라 시비가 많이 걸리는데, 당시 벤치프레스를 110kg까지 들고 복싱을 좀 해서 찌질이 하나 정도는 눈물 쏙 나게 패버릴 자신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상한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처럼 발악하면서 결코 먼저 주먹을 날리진 않더군요. 그리고 자꾸 내리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감이 잡히더군요. "아, 시비를 건 다음에 먼저 주먹을 날리게 해서 CCTV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맞으려는 자해공갈단이구나."
물론 이건 제 억측일 뿐입니다. 그냥 진짜 시비를 걸려는 것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면서 주먹 한방 못 뻗는 걸 보면 견적이 나오죠.
저한테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죠. 내려서 CCTV나 경찰이 없는 곳까지 끌고 가서 죽도록 패버리느냐, 아니면 그냥 몇분 더 참고 잊어버리느냐.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불과 몇분전에 여자친구랑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누굴 잘못 패서 손 다치면 한동안 운동에 지장이 갈테니까요. 제 예상대로 얼마 후 그 사람은 내렸고, 저는 집에 가서 노트북 액정이 반 나간 것을 보고 새삼 빡쳤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팰걸." 심지어 제 편 안들어주고 제가 뭐 잘못한게 아니냐고 묻는 여자친구랑 싸움까지 했죠. 더러운 날이었습니다.
저는 어께가 좁고 체형이 작아서 아무리 근육이 붙어도 옷 입으면 말라보입니다. 덕분에 살쪄도 티가 나지 않지만, 운동을 아무리 해도 별 티가 안 난다는 단점이 있죠. 그 때문에 34년 살아오면서 참 다양하게 시비가 걸렸습니다. 지하도에서 갑자기 아버지 욕하며;;; 덤비는 노숙자, 술 취한 아저씨 (X다수), 술 취한 대학생, 술 취한 직장인, 출장지에서 관계자 등 별의 별 인간들이 시비를 걸어오더군요. 처음엔 일일히 다 대응하고 싸우고 했습니다만, 요즘에는 그냥 피하려고 합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이 도움이 많이 돼요. 솔직히 길거리 싸움만큼 피곤한게 없습니다. 뒷처리가 참 더럽죠. 재작년에 제가 철없이 행동하다가 오른손 뼈가 아작났는데 제대로 치료를 안해 이상하게 붙어 약간 튀어나와있습니다. 이걸 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싸우면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아는 것과, 실제로 화를 억눌러 참는데는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본능, "적에게 기가 꺾이면 안된다"고 명령하는 쓸데없는 목소리가 우리에게 바보짓을 하게 만듭니다. 다행히 저는 2년 가까이 그런 바보짓은 안 했고, 앞으로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또 모르죠.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내가 만만해보이냐"고요.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렇긴 합니다. 제가 강호동처럼 생겼으면 제게 시비거는 사람들이 10분의 1로 줄었겠죠.
그렇지만 저는 결국 강호동이 아닌 저처럼 생겼고, 이 역시 제가 감수해야 할 일입니다. 평생 천방지축처럼 싸움이나 하고 다니면서 합의금 물어보고 경찰서 다니는 것보단, 조금 참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솔직히 참는 건 힘듭니다. 자존심이 상하죠. 특히 내가 주먹을 쓸 수 있다면, 그리고 힘이 센 편이라면 말이죠. "한방만 먹여도 뭐라고 못할텐데"란 유혹은 굉장히 크죠.
오프라인에서도 그렇지만 온라인에서도 그렇습니다. NBA처럼 취미의 영역이나, 혹은 정답이 없는 것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의도가 너무나 보이는 뻔한 것들, 한대 맞고 깽값 챙기려는 쓰레기, 예를 들어 "문빠"니 뭐니하는 자극적인 단어를 늘어놓으며 초등학생도 비웃을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아, 물론 대상자를 특정짓는 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더욱 유혹이 큰 것은 "언제든 내가 박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심리 때문이죠. "내 힘 정도면," 혹은 "내 논리 정도면" 저 녀석을 박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참기 힘들죠.
문제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리는 것, 혹은 수많은 분노에 찬 댓글을 다는 건 이런 찌질이들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 놈들은 맞으러 온 자들이거든요. 마치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과 마동석이 "명분"을 위해 일부러 맞고 온 것처럼 말이죠. 제가 그 지하철 찌질이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대응하지 않는 것이 그 녀석에겐 가장 안 좋은 결과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영어에서 이런 말이 있죠. "Teach someone a lesson" 누군가가 다시는 헛짓거리를 할 수 없게 혼을 내서 교훈을 준다는 것입니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종자들이면 어떻게 할까요?
제 경험상 저런 종자들은 몇대 맞았다고 "아 내가 잘못 살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진 못하더군요. 애초에 그런 깨달음을 얻을 사람들이면 저런 저능한 짓을 안하겠죠.
인터넷의 찌질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댓글을 보고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깨닫거나 분노에 찬 댓글을 보고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분노하는 걸 보면 내가 잘못 생각한거 아냐?"라고 반성과 자기성찰을 할 정도로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저런 바보같은 댓글을 달지 않죠. 아니, 스스로 부끄러워서 달 수가 없어요.
반성과 자기성찰은 커녕 "만선이구나~ 데헷♥"하거나 댓글 수를 세면서 수당을 계산하고 있겠죠.
제가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저 역시 바보같은 면이 많았고, 사실 아직도 바보같은 면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누가 고쳐준 것은 성인이 된 이후에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거의 전부가 제가 실수를 통해, 혹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고친 것들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뭔가를 고치기 위해서는 그걸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그럴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겐 백날 얘기해봤자 소 귀에 경 읽기라는 거죠.
하물며 시비를 거는게 목적인 사람에게 겸허한 자세와 오픈 마인드가 있을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저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저도 과거에 온라인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릴없이 노력해왔고, 제 토론태도 자체도 가끔 공격적으로 보일 때가 있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포인트는 이겁니다. 어차피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지가 무리수를 던진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머지는 자기 자신의 논리에 너무나 함몰되어 있어 그것이 신념의 영역까지 발전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알바들이고요.
세 가지 경우 모두 온라인에서 댓글 몇개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노력을 들여서 이들을 상대해줄 필요가 없죠.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그리고 저딴 것들을 상대하긴 인생이 아깝지 않습니까?
남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힘듭니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상대방의 태도와 노력도 중요하고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은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 자신의 행동과 생각하는 걸 바꾸는 건 스스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고요.
온라인 상의 헛소리를 박멸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헛소리를 보고 뒤로가기를 누를 순 있습니다. 그리고 통렬한 비판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한다면, 그냥 무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만만해 보이면 어때요. 찌질이가 하는 저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첫댓글 잘하셨어요 노트북이 멘중이긴하지만 괜히 시간 낭비하는것보단 백번 잘한일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하는데로 미래가 펼쳐집니다. 잘되실거에요
정말 공감합니다. 불스 아이 그 사람한테도 다들 무플로 대응했으면 합니다. (저는 목적어가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냥 무대응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다른이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도 대화할 생각도 없이 본인 생각만 말하려는 사람들과는 소통을 안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대댓글 수 등으로 수당붙는다면 고생하시는데, 주말,야근수당 받으시게 전 댓글 조금씩 남기려구요. 혹 저때문에 물이 흐려질것같으면 그때쯤 그만두겠습니다.
불쌍한 인생들 참 많아요.
다행히 지금까지 큰 시비없이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매버릭스님 말대로 살아보려고요.
사실 자기 자신한테 자신감이 넘치면 남이 만만하게 보든 말든 상관없죠. 근데 저 분은 만만해보이고 이런 걸 떠나서 그냥 기분이 나쁩니다. 인간이 바퀴벌레를 보고 드는 감정이 논리적으로 나오는 게 아닌 것 처럼요.
허... 그런일 당하게 되면 완전 멘붕오겠는데요... 많이 속상하셨겠네요
정말 좋은 말씀이십니다. 저도 그냥 냅두는게 좋은거 같아요. 대꾸를 해주니 더 즐거워 보이더군요.
적에게 기가 꺾이면 안된다 이 부분 정말공감가네요
그리고 강호동 부분은 저도 사회생활하면서 똑같이 생각한겁니다 저도 느바나 므르브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기꺾이기전에 제압하자는 생각들다가도 맘이 여려서 실제론 안되더군요
오프라인에선 당장 나도 바쁘고 엮이기 싫으니 참을수 있는데 온라인에선 한마디 하는거 참기가 힘들죠 ㅎㅎㅎ
커뮤니티가 더 냉정해져서 무플로 대응하는거 보면 재밌을것같네요
진짜 그냥 무플해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처음 댓글보고는 무플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수의 공간에서 말씀하신 통합적 무대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아.. 물론 아시겠지만.. ㅎㅎㅎ
맞습니다. 댓글 한 두개라도 더 줄여야죠. 그리고 그게 내가 덜 피곤합니다. 그냥 그 공간에서 스윽 빠져나와서 행복한 공간으로 가면 그만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