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심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착잡한 심정이다. 지난해 아이들 무상급식으로부터 촉발된 서울시장 보궐 선거이후 순간의 이슈로 사라지지 않고 회자된 소위 ‘안철수 현상’을 복기해 보자. 철학자 헤겔은 프로이센을 침공한 나폴레옹과 감격적인 조우를 한 순간, "저기 마상(馬上)의 세계정신(Weltgeist)이 지나간다.“고 갈파했다. 나폴레옹은 대외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기본정신인 자유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하면서 구제도와 봉건질서를 무너뜨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물론 나폴레옹은 스스로 자유 이념의 확산과 구제도를 붕괴시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헤겔은 당대 자유 이념이 ‘시대정신’이라면 나폴레옹과 같은 탁월한 개인은 시대정신의 구현자이며 그들의 활동은 보다 높은 필연성의 산물이자 역사적 진보를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다. 안철수 현상은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의 분출이었다. “저(안철수)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했듯이, 변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단열망’이 안철수를 촉매로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안철수 현상은 그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우리 시대의 집단열망의 깊이와 방향을 말해주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헤겔 역사철학의 은유를 음미해봄직 하다.
안철수 현상이란 이 땅의 60여년을 넘게 유지되어온 대중의 구질서에 대한 피로감에서 출발했다. 그런 정치 전반의 구질서는 80년대 민주화의 여정에서 획득한 1987년 이래 지금까지 4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이른바 ‘87체제’를 말한다. ‘87체제’에 기반한 정당정치, 여야 대표체계, 정치적 경쟁구도, 그리고 이념과 가치체계 등 모두가 시대적 한계에 봉착했으며 극복되어야 할 질서라고 하겠다. 이미 이러한 구질서체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정치체제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대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민 대중은 구질서에 터 잡은 현 정치체제로부터의 강요된 선택에 고통을 받았고, 정치 혐오로 맞대응해왔다. 안철수 후보의 비정치의 정치, 탈이념의 정치는 기성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정치질서와 가치, 그리고 제3의 인물에 대한 대중적 갈망에 불을 지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시장경제, 우리 모두 함께 하는 공정사회, 공생발전의 길과 사회운영의 원리와 방식에 대한 새로운 논의와 합의를 열망하는 대중의 꿈이 안철수 현상으로 모여들어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정권교체가 우선이고 정치혁신은 차하의 정치적 실행 목표로 삼는 이유는 박근혜라는 수구 정권 연장으로는 더 이상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민주개혁 진영으로의 정권교체를 통해 정치 혁신의 토대가 먼저 마련되어야 그나마 정치 혁신과제를 추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안철수 현상이 우리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축복이었듯이 조금은 느닷없는 방법으로 새로운 역사의 주체가 될 대선의 단상에서 표표히 사라진 것이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한쪽의 후보 사퇴라는 형식이기에 대중들의 이번 야권 후보 단일화를 보는 심정들이 조금은 불편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안철수의 일시(?) 퇴장을 지켜보면서 그가 제기했던 정치적 어젠다는 여전히 정당 구도의 밖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양극화, 복지, 노동, 교육 등 정치사회적 이슈와 여론을 수렴하고 해결하는 정당의 고유 기능은 상실된 상태다. 또한 정치시장의 저열한 메커니즘은 정당정치에 기반한 국민적 대표체계의 불합리성과 함께 위기 상황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의 퇴장이 지역과 이념의 근친구조 속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정치시장의 진출이 원천 봉쇄된 것은 아닌지를 헤아리면서 나는 다만 가슴이 먹먹한 심정이다. |
출처: 체 게바라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체 게바라
첫댓글 좀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기왕 사퇴해야 했다면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퇴장했으면 좋았을 것을...아울러 선거때는 제발 보수니 진보니, 좌파니 우파니 따지지 말고 되어야 할 사람과 되고 싶은 사람을 구별해서 모두 다 같이 축제처럼 선거권을 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과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
저는 안철수 후보 사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봅니다. 단일화 과정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단일화 결과를 망쳐버릴지 아닐지는 이제부터 안철수의 행보에 달려 있다고 하지요. 안철수 본인도 계속 정치를 해 나갈 의지가 있는 것처럼 말을 했으니까 앞으로 신당 창당 같은 형식으로 정치적인 입지를 다져갈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이번 대선 출마 선언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본인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나름 효과적으로 야권에 힘을 실어 주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겠지요. ㅎㅎ
사실 2002년 부터는 비정치의 정치가 대선의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저는 노무현, 이명박, 안철수를 연장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덜 보수적인 그리고 덜 진보적인(흔히 부동층) 이들의 선택은 지속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이들을 선택했다는 점인데,, 안철수의 퇴장으로 부동층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