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必從夫訛(여필종부와) 如便耐(여편내), 풍자적 언어유희.
본문에 앞서, 이 글은 끝까지 읽지 않고 판단하시면 오해할 수 있는 내용임을 밝히오니 참고해 주십시오. ()()꾸벅.
女必從夫訛(여필종부와) 여기서 ‘와’는 의도적으로 訛(그릇될 와)자를 덧붙여 만든 표현임을 밝힙니다.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말. (女 여자 녀(여)) (必 반드시 필) (從 좇을 종 ) (夫 지아비 부) (訛 그릇될 와)
如便耐(여편내) (如 같을 여) (便 편할 편) (耐 견딜 내, 능할 능)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자기 아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
여필종부와 여편내 두운 시.
여 : 여기 저기 필 : 필요할 때 종 : 종 부리듯 부 : 부리나케 따르라 했는데 와 : 와신상담 깊이 뉘우치고.
여 : 여태까지 모두 다 감내하며 편 : 편하게 나의 뒷수발 들게 했던 그간의 차별 내 : 내가 뒤늦게 나의 반쪽 반려자임을 깨달았소.
남편에게 여편네란, 남편이 어떠한 경우라도 궁지에 몰렸을 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남편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존재,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편이어야 마땅한 아내를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그 위에 군림하던 시선을 뜻한다.
육체적 힘의 강자인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역사 속에서, 남아선호사상에 찌든 가부장적 관습에 따라 女必從夫(여필종부)라는 이름으로 아내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남편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당연히 관계의 의미도 달라져야 했다. 그간 가부장적 관습에 따라 아내에게 무조건 자신을 따르라고 했던 남편이 어느 순간 종속관계였음을 깨닫고,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고뇌한 끝에 자신의 지난날을 깊이 뉘우쳤다. 그리고 여태까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모든 차별을 감내하며 뒷수발을 들어온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순간부터 아내인 당신을 나의 반쪽이자 반려자로 대하겠소.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아내도 아니며, 남편이 앞서가면 뒤따라오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남편이 힘들 때만 찾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오. 당신은 남편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 챙겨가며 나란히 걸어가는 동등한 인격체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소.
그것이 이제야 남편이 깨달은 아내라는 존재의 진짜 의미다. 그 낡은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아내를 자신과 나란히 걷는 동등한 인격체이자 반려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위트 있게 풀어낸 것이다.
여필종부가 실제 역사·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를 두고 부부 중 누가 더 힘든가를 따지면 안 될 것이다. 서로의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을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며, 남편이 아내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지난한 역사 속에서 종속 관계였던 부부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서로를 존중하며 반려자로 바라보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본 언어유희가 품고 있는 가장 좋은 결말이다.
女必從夫訛 (여필종부와) 訛 그릇될 와, 그릇되다, 잘못되다, 거짓되다, 속이다 (女 여자 녀(여)) (必 반드시 필) (從 좇을 종) (夫 지아비 부) (訛 그릇될 와) 즉,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뜻의 女必從夫를 바탕으로, 제 개인의 관점에서 그릇되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의미의 訛(와)를 덧붙여 풍자적으로 만든 표현이다.
如便耐(여편내) (如 같을 여) (便 편할 편) (耐 견딜 내)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자기 아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
여필종부(女必從夫)는 문자 그대로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전통적인 유교적 가족 질서에서 여성인 아내에게 남편 중심의 눈높이로 종속과 복종을 요구하는 규범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남성과 남편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구조가 굳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여기에 부계 혈통,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장자 중심의 상속과 제사 계승, 남아선호 같은 관습이 서로 맞물리면서 남성과 남편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구조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육체적 힘의 우위에 있는 강자의 시선에서 남성 중심으로 유지했던 여러 제도와 관습이 서로 얽힌 것이다.
여필종부의 뜻을 풍자적으로 해석하여 여편내라는 표현을 언어유희로 풀어낸 것은, 가부장적 남편의 시선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힘의 우위에 있던 존재가 성찰 끝에 아내를 차별받지 않는 동등한 인격체이자 반려자로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줄거리다.
부부라는 존재는 누가 더 고생했는가를 겨루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서로의 고생을 알아주는 관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언어유희의 기착점은 남편의 반성이나 아내의 승리와는 전혀 무관하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복종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가 동행하는 관계임을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의 중심은 단순히 여필종부를 비판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과거 낡은 관습 속에 자리한 권위와 남편 중심의 시선을 언어유희로 뒤집어, 부부가 서로를 동등한 반려자로 바라보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如便耐(여편내)는 한자사전에 실려 있는 본래의 如便內(여편내)에서 마지막 글자인 內(안 내)자를 견디다라는 뜻을 지닌 耐(견딜 내)로 의도적으로 바꿔 조합한 창작적·풍자적 언어유희이다.
이는 옛 시절 아내에게 감내와 인내를 요구했던 가부장적 관계를 풍자적으로 되돌아보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따라서 如便耐(여편내)에서 耐(내)는 단순히 견디다라는 뜻을 넘어 지난 시절 아내가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헤아려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며.
여편내라는 표현은 실제 「여편네」의 어원이 如便耐라는 뜻과는 무관한 제 개인의 시선이며 사전에 적시된 如便內(여편내)를 바탕으로 마지막 한자를 內에서 耐로 바꾸어 개인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재 구성한 풍자적 표현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를 실제 어원이나 정식 한자어로 이해하기보다는, 옛 가부장적 관계에서 아내가 감내했던 삶을 되돌아보고 부부가 서로를 동등한 반려자로 바라보자는 뜻을 담은 창작적 언어유희로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끝으로 일방의 희생이나 종속관계로 읽히는 여필종부의 시대를 건너온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나란히 걷는 반려로 살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