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할 겨울비
입춘을 이틀 앞둔 이월 첫 주 첫날은 월요일로 시작했다. 남녘 해안에는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겨울비 치고는 강수량이 제법 되었다. 아침밥은 일찍 해결했다만 와실에서 미적대다 일곱 시가 지나 현관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내려 들녘으로 나서는 산책은 줄이고 우산을 받쳐 들고 학교로 곧장 향했다. 교정에 드니 배움터지킴이와 생활안전부 교사들이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중앙 현관에는 보건교사가 열화상 카메라를 점검하고 있어 주말을 보낸 인사를 나누고 나중 다시 내려오마고 이르고 문화보건부실로 들었다. 노트북을 열어 놓고 책상 위 달력을 이월로 넘겼다. 고3은 이번 주 목요일 졸업을 해 나가고, 재학생은 금요일 종업식을 하면 봄방학에 들어간다. 주말부터는 창원으로 복귀해 한동안 여가를 보내게 된다. 다음 주는 음력 설날이 다가온다.
나는 월요일과 화요일 아침 학생 등교 시간이면 열화상 카메라로 발열 유무를 체크하는 임무이다. 역할을 먼저 수행하던 담임들과 교대해서 그들은 학급으로 올라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야간 당직자가 현관에 종이 박스를 미리 펼쳐 깔아두는 수고를 해 바닥이 젖지 않았다. 통학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줄 지어 현관으로 들었다. 각자 손에 든 우산은 빗물제거기에 털고 들어왔다.
현관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열화상 카메라 상태를 살피고 난 뒤 교장실에 잠시 들렸다. 교감과 실장이 찾아가 업무 협의를 하는 중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 개학 첫날 교장을 뵙지 못해 방학을 보낸 인사를 나누었다. 교장은 이번 이월 말 정년을 맞는 분인데 겨울방학에 관절을 비롯해 몸이 편치 않아 입원해 있었다고 들었다. 겉으로 뵈기엔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라 마음이 놓였다.
문화보건부실로 들어 일과 시간표를 살폈다.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한 시간 수업이 든 날이다. 고3은 수능 이후 등교하지 않은 재택 원격수업이다. 졸업이 임박해 더 나갈 학습 진도가 없었다. 줌 개인 회의실에서 화상으로 얼굴이 비치긴 하나 육성은 음 소거를 해두고 채팅으로 몇 자 문자를 날려 보냈다. 곧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에게 축하 메시지와 덕담을 건네는 정도다.
오전에 문화보건부실로 방문한 동료가 둘 있었다. 지난 연말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가 재직하던 학교에서 코로나 감염 학생이 나와 황당했을 국어과 동료였다. 하필 예식 전날 신부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코로나 감염 학생이 발생했다. 신부가 2주간 격리를 당해 방학으로 미루어진 식을 올렸다. 그는 실마다 돌며 호두과자를 돌렸다. 친목회 총무는 또 다른 예식의 답례 봉투를 건넸다.
아침나절 이런저런 업무 연락이 메신저로 자꾸 날아왔다. 교과서를 배부하는 부서도 있고 교무부에서는 전체 직원 모임을 예고했다. 봄방학과 새 학년을 맞을 일들이 기다리는 때다. 3학년부 기획은 졸업해 나가는 학생들의 앨범에 수록한 교사 사진을 각자 본인에게 파일로 보내왔다. 올 한 해가 남았지만 내 교직 생활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질 얼굴 사진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점심나절 되니 비는 그쳐갔다. 새벽부터 내리던 겨울비는 강수량이 상당할 듯했다. 가뭄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산불 예방에 도움 되지 싶다. 겨울을 뒤로 하고 봄을 재촉할 비였다. 나목으로 겨울을 나는 낙엽활엽수도 땅속뿌리는 쉼 없이 수액을 펌프질해 올릴 것이다. 수면에 뜬 오리들이 겉으로 보이기엔 가만히 있는 듯해도 물에 잠긴 물갈퀴는 연신 저어댄다고 하지 않던가.
입춘에서 우수경칩까지 우리 지역 아침 기온이 빙점 근처까지 내려갈 날도 더러 있다. 잠시지만 영하권 추위에 꽃망울을 터뜨리던 매화나 산수유 꽃이 화들짝 놀라기도 할 테다. 이제 계절의 축은 봄을 향해 굴러간다. 올 한 해는 앞으로 내 교직 생애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 년이다. 아직 코로나가 멈추지 않고 있지만 창원과 거제를 오가면서 보낼 날들이 삼백 예순 날이다. 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