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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y 19th, 2007
벌써 유럽에서 맞는 두번째 주말!
이제는 정말로 유럽에 있음을 실감하며 혼자 신나서 어깨가 들썩들썩 거릴만도 한데
아침부터 내 얼굴은 전과 12범의 인상으로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나쁜 기지배들,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고 투 더 헬!! 제길슨!!"
여전히 씩씩-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는 게 영락없이 투우사의 빨간 깃발에 흥분한 소가 따로 없다.
정말 울통이 터져서 이를 어디에 분출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체크 인을 하고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 전부 여섯명이 묵을 수 있는 곳에
좋은 침대 자리는 이미 이름 모를 주인들이 차지하고, (이런- 새침떼기들 같으니라고-;;)
3개의 이층침대 중에서도 가운데 침대, 그것도 2층 침대가 "주인님~"이라며 나를 반겼던 그 상황에서
어느정도 내게 다가올 일을 예상 했었어야 하는 걸까.
정신없이 침대에 가방을 떵-하니 던져놓고 부랴부랴 나간 듯한 뒷자리는 개판 5분전이 따로 없었다.
관광에 안달난 남자애들이겠거니, 혹시 모두가 같은 일행일까? 하고 살짝 의심을 가져보긴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사건의 전말인즉,
지난 밤 잔세 스칸스를 다녀와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에 개운하게 씻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웬걸. 다섯명의 여자애들이 술을 먹고 취한겐지, 마약을 하고 맛이 진정 가주신겐지,
깊은 새벽, 귀신 신나라 까먹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시끄럽게 웃고 떠들어 대는 통에
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다 이 말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뭐.
모처럼 친한 친구들끼리 여행와서 재밌는 추억을 만들고도 싶겠지.
하지만 한 방에서 다섯명의 무리에 끼인 채로 그것도 한 가운데의 침대에 아무렇지 않은 듯
숨 죽인채 누워있으려니 이건 험악한 죄수들 사이에 낀 착한 양심수가 된 심정이랄까.
엉겁결에 잠에서 깨어 기분이 확 나빠진 나.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머릿수가 이미 5 대 1로 뒤진 싸움.
쥐 죽은 듯 고요히 누워 있을 수밖에. 오 마이 갓. 헬프 미.
진정으로 미쳐주신 이 처녀들의 신나라 행진, 점점 심해지면 심해졌지 빨리 끝날 것 같진 않다.
"삐걱삐걱- 흔들흔들"
내가 잠을 못자고 뒤척이는 걸 느꼈을까, 내가 마치 요람에 누워있는 두 세살의 어린애인 양
뚱띵이 처녀 1 이 거구의 몸으로 자꾸만 침대를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삐걱삐걱-, 흔들흔들~ 삐걱삐걱-, 흔들흔들~"
오오오, 이제는 처녀 2, 3, 4, 5 하나 둘 동참하는가 싶더니 사정없이 흔들리는 가녀린 나의 침대.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머리에서 팍팍 솟아오르는 스팀, 한 마디 해주려고 일어나 앉았다, 김양.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의도적으로 침대를 붙잡고 흔들어 대고 있지 않다. 어라..?
다시 누워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눈을 부릅뜨고 주변 관찰 시작.
침대가 무너질 듯한 진동의 주범은 바로, 이들이 침대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만들어내던 것.
"이런- 뚱띵이 시끼들" 몸이 무거운 걸 뭐라 할 순 없지, 그냥 자야겠다. 이젠 완전 자포자기.
아무리 배게로 두 귀를 덮고, 몇 번이고 뒤척여가며 애써 잠을 청해보았지만 될리 만무하다.
자연스레 욕이 터져 나온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 혀가 잔뜩 꼬인 이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들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잤을까, 지진이 난 것처럼 울려대는 이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오- 나 진짜 죽고 싶다. -_ -;;
"내 35유로 내놔앗!!!!!!!!!1" 머릿속의 나는 이미 1층 리셉션 데스크로 달려가 외치고 있었다.
휴. 가끔은 현실과 이상이 달라 좌절하고플 때가 참 많다. 인생을 살다보면.
참을 인(忍)자 백만개 필요하다. 오, 신이시여.
난 여자애들이 이렇게도 무식하게 코고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오늘 신기록 좀 세워주시는 군.
차라리 기네스 북에라도 올려 드릴까?? 싶을 정도로 이들의 코고는 소리는 완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찍 일어나봐야 할 일도 없어 억지로 침대에 붙어 있어야 할 상황이었던 나로선
길버트의 도움으로 그나마 안정을 찾는가 싶었으나,
"쿵-" 이건 또 뭐냐-;; 침대 제대로 흔들려 주신다.
좀 조용히 좀 자면 안되겠니, 내 밑에 누워있던 거구 뚱띵이, 결국 침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격정적으로 침대를 흔들어 놓은 바람에 심하게 코골며 달콤한 꿈나라를 헤매던 친구들까지 깨어서는
서로 키득키득 조~오탠다.
"이젠 니들이 별 쇼를 다하는 구나. -_ -ㅗ"
젠장할, 35유로나 내고 이런 싸구려 밤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왜왜왜왜?1?1?1?1?1 도대체, 왜왜왜왜!!!!! 내가 뭘 잘못했냐고- ort
동이 트길 기다리고 할 것도 없다, 얼른 이 자리를 뜨자.
시끄럽게 샤워 소리가 들리던 말던 개의치 않고 씻고는 나와서 부스락 부스락 짐싸고,
가방메고 나가려는 데 그제서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말을 거는 처녀 3.
"hey, hi! 너 지금 체크인 하고 들어오는 거니?"
-_ -ㅗ!!!!!! "나 어제 왔거던??" (니들 눈엔 밤새 내가 보이지도 않던..?)
"어, 그래? 잘 가~"
대꾸할 것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나와버리니 그나마 속이 후~련하다. 아이고야.
그 순간 소금 한 자루가 없음을 얼마나 안타까워 했던지.
소금 한 댓바가지 부어다 놓고 오는 건데!!!
아직 이른 시간인데, 아침 나오려면 아직 한참은 기다려야하고,,,
답답한 마음 어디에 풀어 놓을 데도 없고, 영국에서 전화 한 번 한 이후로 연락 한 통 하지 않았던
못난 딸내미의 오명을 씻어내고자 부모님께 메일을 보내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
이미 떠나오기 전, 호스텔에서만 묵기로한 내 고집에 어쩔 수 없이
가끔씩 영어로 메일을 보낸다고 말씀은 드리고 오긴 했지만,
오늘같은 날은 좔좔좔-엄마에게 이 모든 분통 터지는 상황을 얘기해야
카타르시스의 과정을 거쳐 뭔가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도 가져 볼 텐데,, 쯧.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습니다, 지난 밤 아주 푹 자고 아침까지 배 부르게 챙겨 먹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또 메일 보내겠습니다."
-_ - 피노키오의 긴 코 좀 잠깐 빌려야겠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난 밤 아주 잘 잤다고 써버리고 나니 분통이 더 터지는 것 같다, 이거.
어서어서 뜨자, 떠.
Amsterdam, Netherlands (08:45) → Den Haag, Netherlands
10시쯤 도착,
한국에서부터 얼마나 오고 싶은 곳이었는데, 난 아직도 똥 씹은 표정.
악몽같은 지난 날의 밤이 머릿 속에서 도통 씻겨져 나가질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여행, 망칠 수는 없지. 자자자, 마음을 가다듬고 신나게 고고고~
가이드북 부록 20% 할인 쿠폰 이용. 14유로 입장 티켓, 10.40유로.
오호? 5% 추가할인?! 슬슬 기분 좋아지려고 하는데,, 이거?
네덜란드 각지의 명소와 건물들을 실물의 25분의 1로 축소해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을
총 집합시켜 놓은 곳, 마두로담.
아들 조지 마두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두로 부부가 30여년동안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그런데 조지 마두로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넋을 기린다는 거지,,,?
조지 마두로의 얼굴을 새긴 비석에는 단지,
"그의 안에서 네덜란드의 제 2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들의 넋을 기린다."라고 씌어 있을 뿐.
조지 마두로도 같은 전쟁 영웅이었던 걸까..?
사진은 1895년 조지 마두로가 태어났던 생가 축소 조형물.
마두로담의 총 167개를 차지하는 조형물 중에 넘버 원을 차지하는 이유로
마두로담 이동 경로 초입 왼쪽에 위치해 첫 시작부터 만나게 되는 조형물.
잠깐 묵념하고 지나가는 센스도 잊지 말것.
마두로담 전경.
에게게게.. 이게 뭐야- 요고 밖에 안돼?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에 실망하고 30분도 안돼 집에 돌아가게 생겼구나 했는데,
한번 둘러보는 데 두시간은 족히 걸렸다 이 말씀.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니까.
"네덜란드 보물 제 1722호, 걸리버 나막신"
역사적으로 걸리버가 마두로담에 방문했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문화재인 셈.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덕에
관람객들은 입장하자마자 저걸 신고 기념사진 촬영하기 바쁨.
따라쟁이 김양도 하고 싶다. -ㅠ -ㅋ
하지만 찍어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고.
오늘 드디어 걸리버의 발자취를 뒤쫓아가는 구낫. 히힛.
1382년 완성된 112m의 성당 탑. 짓는 데만 무려 61년이 걸렸다고.
축소해 놓았는데도 사람 키를 훌쩍 뛰어 넘는다.
어제 찾아간 네덜란드 국립 박물관.
정원이 꼭 상추 밭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아- 뜯어서 보슬보슬 흰 쌀밥에 쌈장 찍어 얹어 푸짐한 상추쌈 해먹고 싶어롸~
자자자, 이제부터는 실제 모습과 축소 모형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구경해보자그~
1899년 암스테르담 중앙 우체국으로 문을 연 이 건물에게 찾아온 대변신!!
1992년 암스테르담 최고의 쇼핑 센터로 탈바꿈하여
지금은 Magna Plaza shopping center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중.
우체국 치고는 어마어마할 정도의 웅장함을 느끼게 하고,
쇼핑 센터 치고는 고풍스러움이 묻어 나는 듯.
어떤 사진이 실제고 어떤 사진이 가짜??
담 광장에 있는 왕궁.
1648년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
가짜 모형에서도 빠지지 않는 그룹 투어~
담 광장의 만남의 장소, 전쟁 위령비.
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네덜란드 군인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같은 담 광장, 같은 전쟁 위령비.
하지만 옥의 티가 있디요~
실제 담 광장 주변으로는 트램도 다니고, 사람들도 더 북적북적!
암스테르담의 담 광장은 생동감 있는 만인의 쉼터.
네덜란드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운하의 다리가 올라가는 풍경.
네덜란드하면 빼놓을 수 없는 풍차!
군인들을 쪼아 먹으려는 무서운 까마귀들.
3013년쯤 아마 이런 세계가 도래하지 않을까...?!
까마귀가 세상을 휘어잡고 사람을 잡아먹는,, 그런 끔찍한 세상.
네덜란드의 일반적인 농가 모습.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적으로 달리는 기차.
무시하지 말라구요, 그래도 나름 빠른 5Km/s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이 말씀!
꽃 농장.
마두로담의 꽃 농장이 실제 꽃 농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1년 내내 꽃이 활짝 피어있다는 것.
제법 그럴싸한 공장.
암스테르담의 자랑, 스키폴 국제 공항.
한없이 순수하고 풋풋했던 어린 시절,
걸리버 여행기 동화책을 펴들어 마주했던 아주 인상적이었던 그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소인국의 바닷가에 표류해 온 걸리버가 정신을 잃은 사이,
소인국 사람들이 걸리버가 오도가도 못하도록 밧줄로 꽁꽁 묶어 놓던 그림.
이제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러, 걸리버 여행기가 무슨 내용인지도 가물가물한데,
이상하게도 그 그림만큼은 유난히 머릿 속에 남아있다.
소인국에서 걸리버가 느꼈던 그 감정,
바로 내가 지금 여기서 느끼는 흥미진진한 감정과 같았을까.
"미쓰 걸리버, 김양의 마두로담 방문!!"
먼 훗날, 동화책으로 쓰여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녹일 일은 전혀 일어나진 않겠지만,
왠지,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이 되면 낮엔 죽은 듯 서있는 조형물들에 조명이 들어오고
멈춰선 가짜 사람들이 살아나 재잘거리거나 모형 자동차들이 씽씽 달릴 것만 같은 상상만으로도
벌써 동화책 한 권은 출판한 것 마냥 유쾌하다.
각박한 세상을 피해 가끔은 동심의 세계로 피난가고 싶은 이 시대의 힘겨운 당신들이여,
당신들에겐 미스터 걸리버, 미스 걸리버가 될 자유가 정녕 있으리니!
그대들에게, 헤이그의 마두로담은 펼쳐져 있을지니,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
더 이상 걸리버 여행기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한 조각이었다.
어딘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 옛날의 동심을 찾을 수 있는 피난처 하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들다, 힘들다,고 하는 세상, 힘차게 살아갈 의지가 불끈 솟아 오르는 기분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