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빛이 들지 않아도 살아지는 게 더 많으니까, 뿌리가 끊어진 곳에서 생각을 생각해요. 물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유리병의 식물은 부지런하고 지난일은 다정해지고. 마음이 마음을 벗을 때까지, 죽어가는 식물을 버릴까 말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보내고, 높이 자란 생각이 생각으로 자랄 때까지, 다시 자라지 않는 꽃을 땅속에 심으면, 우리는 죄인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울고 싶지 않은 밤에는 넘칠 듯 물을 주면 허덕이는 외로움만이 우리를 구원할까요. 들여다보아도 아무것도 없을 거면서, 죽여도 자라날 거면서, 가지고 싶지 않은 벼랑과 쏟아진 우리는 눈이 없는 것들이 있는 세계로, 빛으로 아빠를 망가트리면 조금은 슬픈 어둠이 될까요, 엄마는 알잖아요. 처음부터 우리는 인과 없는 광합성. 거짓말이 없는 그림자, 아무리 어둠을 밝혀도 빛이 되지 않는 명도, 이룰 수 없는 미움 따위, 엄마는 알잖아요. 죽을힘을 다해 광합성을 떠올려도.
소용돌이
또 사람을 갉아먹을까봐 겁이 나
누워서 하는 기도는 등이 자꾸 가려워
침대 속에는
어둠보다 긴 내가 들어 있고
나를 본뜨며 낮을 기울이는 신은
빛을 듣게 한다.
손가락을 잊은 나무는 미완성된 출구
아름다운 배열들,
가시의 일이다.
그것을 날씨라고 말하게 되었고
오른쪽으로 지문을 그리다가
어느새 반투명 거울이 가득한 해변으로 와 있다.
견딜 수 없는 일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인형의 관절 마디를 부러트리면
혀는 파묻힌다.
신의 얼굴을 그리다 보면
한 방향으로 빛이 쏟아지는 해변을 걷는 기분
해석하고 싶지 않은 꿈속에
너는 해변에 웅크려 앉아
나뭇가지로 적고 있다고 말한다.
마음은 돌아나가는 모양이어서
사람을 한 붓으로 그린다.
눈을 하나만 뜬 천사를 대하는 기분으로.
모든 단어에 꽃 없는 혈관의 기분으로.
프리즘
잠자리에서 심장을 꺼낼 수 있다면,
행운,
시간이 만든 보드라운 넝쿨,
아물지 않은 두 눈에 누가 투명한 알들을 슬어놓았나
알면서 모르는 척
곡선을 그리며 쌓여 죽은 잠자리 눈,
머리를 돌려 떼어내면
복도에는 사마귀를 잡는 까마귀,
손목마다 잠자리 날개들이 돋고
빛을 쓸고 가는 복수형의
빛,
너는 아직 죽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가위질한 손가락들을 가지런히 모은다.
햇빛,
문을 열고 나온 빛은 꼬리를 자르고 가는 긴 검은 새들의 여백을 지키며 돌아오지 않는다.
실눈을 뜨는 나무를 너는 죄라고 이야기한다.
네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시집 『소멸하는 밤 』 현대문학 2023,1
정현우 시인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있다.
2019년 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