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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장군 아에밀리우스가 집정관의 딸 파피리아와 결혼해 살다 이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가 “그대의 부인이 정숙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자식도 잘 낳아주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마치 이러한 부인과 헤어지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아에밀리우스는 이렇게 묻는 친구에게 신발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신발은 아름답지 않은가? 새 신발이 아닌가? 그러나 이 신발이 내 발 어디를 깨무는지 그대는 아는가?”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아내의 큰 허물 때문에 이혼하기도 하지만 성질과 습성이 맞지 않아 마음 상하고, 그게 심해져 수습하기 어려운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네.”라고 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다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이 어떤지 알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부부의 일은 남이 잘 알 수가 없다’는 이치가 이천여 년 전 로마에서도 회자되었던 모양이다.
‘이조여인 잔혹사’라는 영화와 책에서 보듯 이조시대 여인들은 그 권익이 사방으로 짓눌림을 당했다고 역사에 기록돼 있지만 이 시대 모든 여인들이 다 그렇지만은 않았나보다. 선조 때 양반 소슬은 관기(官妓)와 더불어 여러 날을 지내다 집에 온 탓에 아내와 부부싸움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갓과 옷이 다 찢어지는 등 몰골이 엉망진창이 돼 주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정조 때 지어진 『추관지』에 이런 판례가 수록돼 있다. 황해도 신계에 사는 박춘복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집에 양식이 떨어진 걸 한탄하면서 그에게 주변머리 없는 사내라고 바가지를 긁어댔다. 술 취해 있는 그가 그런 아내를 발길로 걷어차 죽게 했다. 당시 배우자를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함이 원칙인데 왕은 정배(定配) 보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유인즉슨 쌍놈 부부야 툭하면 치고받고 싸우고, 저녁에는 주먹질 하다가도 이튿날 아침이면 곧 헤헤거리는 일이 다반사인데 과실치사에 사형은 지나치다는 판결이었다.
서양의 악처 하면 흔히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떠올린다. 하지만 크산티페는 악처 노릇을 유별나게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훌륭한 철학자를 깍듯이 모시지 않았다고 여겨져 그런 누명을 쓰는 듯하다.
동양에서 무서운 아내 하면 한나라 고조의 비 여태후(呂太后)를 꼽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천하의 한량이었던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척부인(戚夫人)이라는 후궁을 유달리 총애하자 질투와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여태후는 척부인의 눈을 도려내고 귀를 지지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고 손발까지 잘라낸 후 골방에 가두었다. 태자 혜제(惠帝)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여태후는 태연하게 황제와서 자기를 못살게 군 인체(人彘: 사람돼지)라고 대답했다.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태자는 눈물을 펑펑 쏟고는 어머니의 잔인무도함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여 1년간 병석에 드러눕고 말았다.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무서운 아내의 대표자로 중종 때 허지의 아내 유씨를 들 수 있다. 당시 사헌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읽어보면 혀를 내두를 만하다. 투기가 한번 발동되면 남편을 때리고 욕을 하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드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볏집으로 만든 인형에다 허지라고 이름 붙여서 팔다리와 몸뚱이를 끊어놓고는 계집종들로 하여금 뜰에 모여 축하하도록 하고, 남편이 사신으로 나갈 때에는 종들에게 문밖에서 곡을 하게 하여 남편이 죽어 발상(發喪)하는 흉내를 내었으며, 이웃집 수탉이 암탉을 쫓아다니다 담장을 넘어오자 붙잡아 죄를 따지면서 “네 집에도 암탉이 있을 텐데 또 이웃집 암탉을 쫓아다니니 이것도 허지 같은 놈이다.” 하고는 깃털을 뽑아 사지를 찢어 죽였다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과거시험의 감독관으로 나오라는 어명을 적은 명패(命牌)를 감춰두고 남편에게 알리지 않아 처벌받게 하려 하였고, 허지가 파주 목사로 있을 때에는 계집종에게 남장차림으로 담장을 쌓게 하고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인 어른께서 파주 고을 사람을 보내어 담장을 쌓는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남편을 탐관오리로 몰아세우려 했다고 한다.
무서운 아내에 대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교화시키기 어려운 것은 부인네들이다. 배짱 좋다는 남자치고 부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옛날 어떤 장군이 있었는데 마누라를 매우 두려워했다. 십만 병사를 거느리고 넓은 사막에 진을 칠 때 동서로 갈라 큰 깃발을 세웠으니 하나는 푸른 색이요, 하나는 붉은 색이었다.
장군이 전군에 명령을 내리기를
“마누라를 두려워하는 자는 붉은 깃발 아래 서고, 마누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 아래 서라.”
하니 십만의 군사가 모두 붉은 깃발 아래에 모였는데 어떤 병졸이 홀로 푸른 깃발 아래 서 있었다. 이에 장군이 장하게 여겨 물었다.
“네가 정말 대장부다. 세상 사람들이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려 나 자신도 한 나라의 대장으로 십만 병사를 이끌고 적을 만나 온 힘을 다하여 싸울 때는 돌과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도 오히려 간담은 더욱 매서워져서 공포심이란 아예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로지 아내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만 들면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마누라에게 제압당해 버린다. 대체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강할 수가 있느냐?”
“제 마누라가 항상 제게 훈계하기를 ‘남자 세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논하니 세 사람이 모인 장소에 당신은 일체 들어가지 말라.’했습니다. 하물며 지금 십만 명의 남자가 모인 장소가 아닙니까? 그래서 혼자 푸른 깃발 아래 서 있는 것입니다.”
하고 군졸이 대답하자 장군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마누라 두려워하는 것은 나보다 한 수 위다.”
‘배필을 잘못 만나면 당대의 원수가 된다.’는 말이 있다. 19세기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독신으로 산 건 원수를 만날까 두려워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결혼은 자기 권리를 절반으로 깎고, 의무는 배로 걸머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결혼 생활이 어렵다는 뜻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소개한 49계명엔 새길 게 많다. ‘남편의 부정은 아내에게 가장 가혹한 일이다’ ‘아내의 여성 다움을 충족시켜 줘라’ ‘언어폭력은 금물이다’(이상 남편이 지켜야 할 사항) ‘남자는 수다를 싫어한다. 바가지를 긁지 말라’ ‘남편을 도발하지 말라. 남자는 흥분하면 자제력을 잃는다’(이상 부인이 지켜야 할 사항)
이 계명을 실천하면서 사는 부부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근래에 들어와서 이혼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황혼 이혼이 많다고 한다. 부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랑의 총량은 커지고, 함께 지낸 세월만큼 사랑의 두께가 두툼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노부부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이야기를 옮긴다.
프뤼기아 땅 어는 언덕 위에 보리수와 참나무가 한 그루씩 서있고 그 곁에는 야트막한 담이 둘러쳐져 있다.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연못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훌륭하게 사람 사는 집터 노릇을 했다고 하나 지금은 물이 괴어 산오리나 가마우지 따위가 모여드는 곳으로 변했다.
아주 옛날에 제우스가 사람 모습으로 변신해서 바로 이곳에 온 바 있다. 제우스는 아들 헤르메스와 동행이었다. 헤르메스는 날개를 떼어 놓고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온 것이었다.
두 신은 지치고 지친 길손이 되어 이집 저집의 문전에 서서 좀 쉬어 갈수 없겠느냐, 밤이슬을 피하게 해줄 수 없겠느냐고 통 사정을 해보았다. 그러나 모조리 문을 더 단단하게 걸어 잠글 뿐 도무지 열어 주려 하지 않았다. 하기야 밤이 깊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 마을의 불친절한 사람들에게는 한밤중에 부스스 일어나 문을 열고 길손을 맞아들일 만한 정성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외딴 오막살이 집에서 두 길손을 받아들여 주었다. 지붕에 띠를 얹은 오막살이집에는 바우키스라고 하는 믿음이 실다운(진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미덥다) 노파와 남편 필레몬이 살고 있었다. 이 노부부는 소싯적에 부부의 연을 맺은 이래 바로 그 집에서 함께 나이를 먹으며 살았다. 노부부는 희망을 안으로 다독거리고 친절을 밖으로 펴면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니 주인이 따로 있고 하인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노부부 단 두 사람뿐이었으니 이 두 사람이 주인이기도 했고 하인이기도 했다. 두 천상의 길손이 그 오막살이의 초라한 문지방을 넘어 나지막한 문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자 노인은 자리를 갖다 놓았고, 노파는 무엇을 찾는 듯이 잠시 부산을 떨다가 그 자리 위에 깔개를 갖다 펴고는 두 길손에게 앉기를 권했다. 이어 노파는 잿더미에서 덜 탄 숯을 모아다가 다시 모닥불을 지피고, 나뭇잎과 나무 껍질을 넣고 입으로 솔솔 불어 불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었다. 노파는 어느 구석에서 장작과 마른 나뭇가지를 갖다가 잘게 쪼개어 작은 냄비 밑에다 넣었다. 이윽고 노인이 뜰에서 채소를 뜯어오자 노파는 줄기는 버리고 잎만 따서 그 냄비에 넣었다. 노인은 갈래진 막대기를 꺼내와 굴뚝 속에 걸었다. 연기에 그을린 돼지 살코기를 한 조각 떼어내 냄비에 잘게 썰어 넣고 나머지는 나중에 쓸 요량으로 건사해 두었다. 너도밤나무 세숫대야에는 손님들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더운물도 준비했다. 노부부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동안 두 길손은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손님용 의자에는 해초를 넣어 만든 방석이 깔려 있었다. 방석 위에는, 꽤 낡은 것이긴 하나 큰일 치를 때만 나오는 것임에 분명한 깔개도 깔려 있었다. 노파는 앞치마를 입은 채 떨리는 손으로 상을 보았다. 식탁의 다리 중 하나는 다른 다리보다 조금 짧았으나 밑에 석판 조각을 괴어 식탁은 뒤뚱거리지 않았다.
준비가 대충 끝나자 노인은 냄새가 좋은 풀로 식탁을 문질렀다. 노파는 이 식탁에다 순결한 처녀신 아테나의 신목인 올리브 열매와 식초에 담갔다 꺼낸 산딸기를 차리고 무와 치즈, 잿불에 익힌 계란을 곁들였다. 이러한 음식을 담은 접시는 모두 토기(土器)였다. 그 옆에는 역시 토기 주전자가 목제 잔과 나란히 놓여 있다.
준비가 다 되자 이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이 올라왔다.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닌 포도주도 함께 나왔다. 입가심할 사과와 꿀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음식보다 훨씬 귀한 것은 두 사람의 친절한 얼굴, 소박하나 참다워 보이는 노부부의 정성이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노부부는 아무리 따라도 술병에 항상 포도주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기겁을 한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자기 집 손님들이 예사 길손이 아니라 바로 천상의 신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며 대접이 소홀했던 것을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
이 집에는 거위가 한 마리 있었다. 노부부는 이 거위를 그 오막살이의 수호신인양 기르고 있었다. 노부부는 이 거위를 잡아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위가 두 다리뿐만 아니라 날개의 도움까지 받으며 설치는 바람에 노부부로서는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거위는 노부부의 추격을 피하여 두 귀한 손님의 다리 사이로 달아났다. 두 천상의 신들은 거위를 죽이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천상의 신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 인심 사나운 마을에 신에 대한 불경의 죗값을 물리고자 한다. 그러나 너희에게만은 이 징벌을 내리지 않겠다. 이 집을 나서서 우리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자.”
노부부는 서둘러 신들이 이끄는 대로 지팡이를 짚으며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활을 쏘면 살이 산꼭대기에 닿을 만한 곳까지 올라갔을 때 노부부는 고개를 돌려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노부부의 오막살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노부부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마을 사람들의 운명을 슬퍼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그들의 오막살이는 신전으로 변했다. 네 모퉁이 기둥은 굵은 원주로, 지붕의 띠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황금 지붕으로 변한 것이었다. 바닥은 어느 틈에 대리석으로, 허름하던 문은 무늬가 새겨지고 황금 장식이 달린 으리으리한 신전의 문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윽고 제우스가 인자한 말투로 두 사람에게 일렀다.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노인이여, 그리고 그런 지아비에 어울리는 노부인이여,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무엇을 바라는지 어디 내게 말해보아라.”
필레몬은 잠깐 바우키스와 상의한 뒤 두 사람의 소원을 아뢰었다.
“저희는 사제가 되어, 두 분을 모시고 이 신전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의좋게 살아온 만큼 이 세상에서 떠날 때도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바라건대 제가 살아남아 할멈의 무덤을 보는 슬픈 일이 없게 하시고, 할멈이 살아서 저의 무덤을 파는 슬픈 일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제우스는 이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두 사람은 살아 있을 동안 내내 신전을 지켰다. 두 사람이 늙고 늙어 더할 나위 없이 쇠약해진 어느 날, 신전 계단에 서서 그곳이 마을이었을 당시의 이야기를 하던 바우키스는, 필레몬의 몸에서 나뭇잎이 돋아나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러자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돋아나 관을 이루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입을 놀릴 수 있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잘 가요, 할멈.”
“잘 가세요, 영감.”
바로 그 순간 나무껍질이 두 사람의 입을 덮고는 그 모습을 가려 버렸다. 티니아 지방 양치기들은, 이 착한 노부부가 변해 마주 서 있다는 두 그루 나무 아래로 지금도 우리를 안내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위에 글에서
어떻게 보면 악처도 현처도 남편 하기 나름 아닐까요?
아내 입장에서 변명 해봅니다ㅎㅎㅎ
전생에 원수진 사이가 이승에서 부부와 부모 자식으로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늘 붙어 있으면 갈등이 많이 있겠지요. 신이 전생의 원한을 이승에서 풀라고 부부나 부모 자식으로 만나게 해주는 데 풀기는 커녕 더욱 원한이 깊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악한 남편이 훨씬 많고요, 지독하게 악한 여자도 드믈게 있어요. 전 경험해봤어요.
감사합니다~~
정곡님의 글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배웁니다.
과찬이십니다. 감사해요. 열심히 글 쓰고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