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신학자
9.3
신의 대리자?
가톨릭 신부는 신의 대리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있나 보다. 교황을 베드로의 대리자라고 비유한 말은 있었다. 예전에 교황에게 바치는 호칭들이 많았다. 최근 교황청이 발간하는 연보에 <로마 주교> 딱 하나로 줄었다. 신의 대리자라는 호칭은 이제 교황에게도 쓰지 않는다.
지상에서 신의 대리자는 가난한 사람들과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예수그리스도의 고통을 현실에서 몸으로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처럼 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딸이요 신의 대리자다.
<순명 순종 복종>이란 단어조차 나는 싫어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내 자신이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내 책에는 그런 단어는 존중이란 단어로 바꾸었다. 부당한 명령은 그 자체로 무효이므로 받아들일 필요 없다. 주교가 사제에게 내리는 명령은 주교에게 교회법상 그럴 권한이 있다는 말이지 주교의 결정이 저절로 옳다는 뜻을 포함하진 않는다. 악법은 법이 아니듯, 부당한 명령은 순명을 요구할 수 없다.
진리를 따르면 된다. 정의를 따르면 된다. 예수 말씀과 행동을 따르는 것이 순명이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가톨릭 적폐 청산에 침묵하는 신부나 주교의 말을 누가 진심으로 따르겠는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주교 신부는, 순종이니 뭐니 따로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기쁘게 존경한다. 그것이 참된 존중 아닐까.
"이렇게 착한 신도들과 함께라면 착한 목자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로메로 대주교는 말했다. 그러자 가난한 신도들은 "이렇게 착한 목자와 함께라면 착한 양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라고 화답했다.
한국 신자들은 기쁘게 존중하고 따를 신부와 주교를 애타게 찾고 있다. 존경할 만한 신부들과 주교들이 어서 나타나기를 빌고 또 빈다. 신부니 주교니 내세우지 말고, 화려한 말 잔치 그만두고,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