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원자폭탄原子爆彈의 피해〉 원폭의 파괴력은 히로시마의 “리틀보이(우라늄235)”보다 나가사키의 “팻맨(플루토늄)”이 몇 배나 더 강했지만, 완전 평지인 히로시마와 달리 나가사키는 산지로 둘러싸여서 멀리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로시마의 피해가 나가사키보다 큰 것입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합천이었던 이유〉 •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 목표 도시 중 유일하게 연합군의 포로수용소가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제1의 목표가 됐습니다. 투하 계획 당일 날의 기상 관측기에서도 히로시마의 날씨가 양호해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게 됩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지면서 발생한 거대한 폭발의 충격파는 히로시마의 거의 모든 건물들을 파괴 시켰고, 동시에 발생한 밝은 빛은 사람들의 시력을 앗아갔으며 그 고열로 인해 온몸에 화상을 입게 됐습니다. 이후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으로 인해 모든 것이 타버렸고 남은 재가 비와 섞여 수증기로 변해 ‘검은비’가 내렸습니다. •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원래 고쿠라에 투하하기로 돼있었지만, 투하 당일의 고쿠라 상공의 시야가 나빴기 때문에 제2목표인 나가사키에 투하가 됐습니다. 나가사키의 상공도 구름에 덮여있었지만, 한 순간 구름이 30초 가량 걷히면서 시가지가 보여서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습니다. • 합천에 원폭피해자들이 많은 이유는 일제시대 합천인들이 주로 히로시마 군수공장 및 본토정비에 강제징용‧배치 됐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 원폭의 한국피해자 중 99%가 합천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미국이 원폭을 쓴 이유〉 미국이 원폭을 쓴 직접적인 이유는 “이오지마전투(1945년 2월 16일 ~ 3월 26일)”와 “오키나와전투(1945년 4월 1일 ~ 6월 23일)” 때문입니다. 두 전투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결과물인 핵(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습니다. 1945년 8월 6일·9일의 원폭투하로 인해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원폭 피해의 특성〉 • 막강한 파괴력, 열선, 초고압 폭풍 원폭은 기존의 폭탄에 비해 수천~수만 배의 현격한 폭발력을 가집니다. 폭발 순간에 발생하는 강력한 에너지는 강렬한 열선으로 방출돼 인체에 화상, 주택 등에 발화를 일으킵니다. 또한 급속히 팽창한 주위 공기가 초고압의 폭풍이 되어 큰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 방사선의 방출 핵폭발에 의해 대량의 방사선(감마선이나 중성자선)이 방출돼 인체 깊숙이 침투하여 심각한 장해를 일으킵니다. 또한 폭발 후에도 잔류 방사선을 지상에 남겨 직접 피폭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방사선에 의한 장애는 장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원폭 개발과 투하〉 • 원자폭탄의 연구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미국은 일본과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사용계획에 대응해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1942년에는 이른바 ‘맨해튼 계획’이라 불리는 원자폭탄의 제조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 투하 목표의 검토 1945년 4월 27일, 투하 목표 대상으로 일본 17개 지역이 선정됐습니다. 그 후 핵폭풍 등으로 효과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등의 조건에 따라 목표 후보지들이 좁혀졌습니다. 목표도시들에 대한 일반공습은 금지됐습니다. 주요 목표도시들은 교토, 히로시마, 요코하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등... 이었다 합니다. * 합천원폭자료관·전시관 *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휴관일 : 1월 1일, 설날, 추석 관람료 : 무료 경남 합천군 합천읍 대야로 989 합천원폭자료관 경남 합천군 합천읍 영창리 443-4 전화 : 055-932-0630 ※합천원폭자료관의 팜플렛과 전시실의 설명들을 토대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합천원폭 문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출처: 상민이의 불교 자료실, 법보시 원문보기 글쓴이: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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