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앞서지 말고 나대지 말고
사람의 가장 큰 약점 두 가지는 생명과 재산일 거 같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지혜 2,23-24) 그리고 재물이나 재산은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길 정도로 행복하게 사는 데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물질적으로 너무 가난하면 행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재산과 행복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닌 거 같다. 그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고 또 운인 거 같다. 그래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건 참 좋다. 잘 안돼도 여전히 감사하고 청하는 건 더 좋다.
나도 아는 걸 마귀가 모를 리 없다. 예수님은 이방인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마귀 들린 두 사람을 만나셨고 그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 두 사람을 이용해서 소리 지르게 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맞다, 하느님과 마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결코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다. 아니 그것은 하느님 계신 곳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 숨어 있는 이들은 언제나 안전하고 온전하고 영원하다.
그런데 돼지 떼가 한꺼번에 죽게 되는 바람에 예수님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거기로 들어가지도 못하셨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거부했는지 뻔하다. 돼지, 재산 때문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위험해 보였을 거다. 가진 재산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워했던 거 같다. 그 당시 유다인 예수님에게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었으니(레위 11,7-8) 마귀가 거기서 살겠다는 걸 막지 않으셨을 거다. 그런데 돼지는 이방인 지역 사람들에게 재산이었다. 유다인에게 양처럼 말이다. 우리가 그러는 거처럼 예수님도 마귀들 장난에 당하셨다. 일이 그렇게 꼬일 줄은 모르셨던 거 같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분 안에 있기 위해 우리는 조신하고 조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도 당하셨는데 죄인인 우리는 오죽하겠나. 예수님보다 앞서가려고 나서거나 나대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나를 이끄시던 성령님은 설쳐대는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나신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넘어지면 위로하시고 일으켜 세워 다시 당신을 따라오게 하신다. 우리는 매일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른다. 나를 버렸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재물에 대한 욕심은 그와 함께 없어져 나를 흔들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행동일지라도 하느님 뜻을 따름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선하고 의로운 마음보다 하느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게 더 중요하다. 하느님 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온전하고 영원히 산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리고 내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말만이 아니라 진심이 되도록 노력한다.
예수님, 오늘도 저 자신을 버립니다. 건강, 일, 미래 등에 대한 걱정이 제 안에서 무슨 공장처럼 매일 만들어집니다. 저는 죄인인 게 분명합니다. 주님과 떨어져 있는 겁니다. 누추하지만 주님 제 안에서 사십시오. 저도 주님 안에 살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마음을 아드님 마음 안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