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나훈아의 은퇴 무대
출처 조선일보 :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4/28/BLVWM75UIRGNNMCKI4EFPLCTKA/
일러스트=이철원
노벨문학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는 2012년 13번째 소설집 ‘디어 라이프’를 내며 절필도 선언했다. 조용히 작품 활동을 멈춰도 될 것을 굳이 선언까지 한 것은 “80세가 된 내가 더는 잘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했다. 끝내야 할 때를 아는 소설가의 결단 덕에 ‘디어 라이프’는 먼로의 마지막 걸작으로 남아 있다. 국내에선 프로야구 선수 이대호가 재작년 팬들의 박수 속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3할 타자로 선수복을 벗은 그는 은퇴하는 해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유일한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멋진 은퇴 대열에 가수 나훈아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주말 인천 송도 공연에서 “마지막 은퇴 투어”라며 올 연말을 끝으로 58년 지켜온 무대를 떠난다고 했다.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이래 ‘갈무리’ ‘잡초’ ‘사랑’ ‘영영’ ‘무시로’ 등 2600여 곡을 발표했다. 작사·작곡도 뛰어나 1200여 곡을 직접 지었다. 120곡 넘는 히트곡으로 전국 노래방 반주기에 가장 많이 곡이 수록된 국민 가수이기도 하다.
▶나훈아의 노래에는 한국 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고향역’과 ‘물레방아 도는데’에는 1970년대 타향살이의 애환을, ‘녹슬은 기찻길’과 ‘대동강 편지’엔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눈물을 담았다. ‘테스형’처럼 세대를 넘나드는 곡을 불러 청년들에게 ‘노인돌’(노인+아이돌)로 불린다.
▶북한에서도 인기 가수다. 우리 가수들의 평양 공연 때는 김정은이 당시 우리 문화부 장관에게 “나훈아는 왜 안 왔냐?”고 물었다. 그 후 남한 유행가 단속이 시작됐을 때, 북한 청년들이 나훈아 노래 ‘사내’를 부르다가 불잡혔다. 왜 그 노래를 불렀느냐는 당국의 질책에 청년들은 “‘사내답게 살다가 사내답게 갈 거다’라는 가사가 가슴에 와 닿아서”라고 했다는 사실이 북한 내부에서 큰 화제가 됐다.
▶송도 공연에서 나훈아는 ‘고향역’부터 ‘18세 순이’까지 숨찬 기색 하나 없이 내리 불렀다.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땐 30대이던 1986년과 40대이던 1996년 공연 동영상을 함께 틀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훈아 목소리가 청년·중년 때와 다르지 않았다. 객석에서 “이런데 왜 은퇴하느냐?”고 묻자 나훈아는 “저는 아직 더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이라 했다. 시인 이형기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시 ‘낙화’에 썼다. 나훈아가 남긴 노래의 꽃은 국민의 마음에 떨어져 오래도록 시들지 않을 것이다.
김태훈 기자 논설위원
빛명상
발자취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선업善業을 남긴다.
그 선업의 빛이 이름을 빛나게 한다.
어떤 삶의 발자취를
남기고 갈 것인가?
침향을 사르며
명상에 든다.
침향을 사르며 차茶명상에 든다.
향이 떠난 자리에 향기가 남듯이
우리가 떠난 자리도 맑고 향기롭길 소원한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350-351
나훈아 씨 하면 그가 말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일본의 앤카와 한국의 가요가 다른점은 , 일본의 앤카에는 내지르는 맛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훈아 씨의 말은 쉬운 것이 특징입니다. 누구나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게 쉬운 것 같아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