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에 따르면, 루카 복음사가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의 안타키아) 출신이다. 바오로 사도의 전교 여행에 함께하였던 그는 주님의 복음과 복음 선포 상황을 기록하였다. 곧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이다. 루카는 다른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성모 마리아와 함께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실제 성모님을 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와 '성모 마리아를 그린 최초의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직업이 의사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예수님의 치유 기적들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10-17ㄴ)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신 말씀을 오늘 복음에서 듣습니다. 오늘 축일을 기리는 루카 복음사가는 특이하게도,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개의 제자 파견 사화를 전합니다. 하나는 ‘열두 제자’의 파견과 관련이 있고(9,1-6 참조), 다른 하나는 오늘 복음에 해당하는 ‘일흔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입니다(10,1-12 참조). 후자는 루카 복음에만 나타나는데, 루카는 왜 열두 제자의 파견 외에 일흔두 제자의 파견을 또 이야기하였을까요? 그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는 데에, 열두 명의 파견만으로는 그 수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더 많은 이의 파견으로 더욱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이미 믿음을 가지게 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계속 널리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복음 선포에 헌신할 일꾼들이 어느 시대든 늘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소자들이 크게 감소하는 위기에 맞닥뜨려 있습니다. 물론 학령 인구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겠지만,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큰 폭으로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이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련히 아시고 일꾼들을 부르시겠지.’ 하며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됩니다. 그 일꾼들을 주님께 청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할 이들을 지속적으로 키워 내는 일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성소자 육성을 소홀히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들을 많이 보내 주십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