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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흔하게 쓰는것 일상용품중 전쟁때문에 발명되것들인데
저도 몇개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더 많이있군요
이것외에도 통조림이나 건빵, 3분짜장에 쓰이는 레토르트 식품등도 전투식량으로 개발되것이죠
제트비행기나 로켓도 마찬가지... 심지어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도...
어떻게서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총력을 다해야했고 그때문에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된게 아이러니하기도하죠
전쟁.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참혹한 재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큰 전쟁이 터질 때마다 인류는 크게 발전해왔다. 없어서는 안 될 컴퓨터, 인터넷부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볼펜, 손목시계까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발전해 온 신기술과 그로 인해 탄생한 제품들에 대해 알아보자.
독일군 암호 해독을 위해 개발된 ‘컴퓨터’
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 해독 기계를 만든 앨런 튜링의 전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인류의 삶을 뒤바꾼 위대한 발명품, 컴퓨터. 현대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 컴퓨터는 말 그대로 ‘현대’와 그 시작을 함께 한다. 인류 최초의 컴퓨터가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부터 사용하던 주판과 계산기에서 계속 발전되어 온 만큼 ‘인류 최초의 컴퓨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자식 컴퓨터가 실험적 의미를 넘어 처음으로 실용화된 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때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 군사 기밀로 남아있던 콜로서스
1944년 영국에서 개발된 ‘콜로서스’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였다. 앨런 튜링의 암호 해독 기계에 착안해 만들어진 콜로서스는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전시 중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으나, 암호 해독을 위해 쓰였던 만큼 그 존재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1970년대 중반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탄도 계산을 위해 개발된 컴퓨터의 조상 에니악
그리고 1946년, 컴퓨터를 배운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컴퓨터의 조상 ‘에니악’이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탄생한다. 콜로서스가 1970년대 중반까지 군사 기밀이었던 덕분에 꽤 오랫동안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은 미 국방부의 포탄과 미사일 탄도 계산을 위해 개발된 것으로, 30톤이 넘는 ‘괴물급’ 무게와 당시로서는 압도적이었던 ‘괴물급’ 성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비록 전력 소모가 엄청났지만, 수백 명의 전문 요원이 몇 시간씩 매달려야 했던 탄도 계산을 3초만에 끝내면서 ‘총알보다 빠른 계산기’라고 불리기도 했다. 에니악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55년까지 무기 개발과 일기 예보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핵 전쟁에 대비해 만들어진 ‘인터넷’
당시 고등연구계획국(ARPA)이었던 미 국방부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인터넷의 시초라 불리는 ‘아파넷’ 역시 미 국방부에 의해 개발되었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극심했던 1960년대. 핵 무기를 두고 소련과 신경전을 벌이던 미국은 혹시라도 핵 전쟁이 벌어질 경우 통신망이 파괴되는 것에 대비하고자, 국방부 산하에 있는 고등연구계획국(ARPA)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미국 서부의 4개 대학교(UCLA, UCSB, 스탠포드, 유타)를 연결한 아파넷
그렇게 개발된 것이 바로 아파넷(ARPAnet). 전화국이나 전화선 없이도 통신이 가능하도록 미국 내 여러 대학의 컴퓨터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1969년 약 600km 떨어진 스탠포드와 UCLA 사이에서 최초의 메시지가 전송되었고, 이후 학문 연구를 위해 대학 간에 활발하게 사용하다가 민간에 개방되어 전세계로 연결되었다. 이메일과 @를 사용하는 메일 주소 체계와 역시 이때 탄생했다.
해군에게 납품된 인류 최초의 ‘헤드폰’
1910년 최초의 헤드폰을 발명한 나다니엘 볼드윈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음향 장비 헤드폰. 지금은 음악 감상 용도로 많이 쓰이지만, 헤드폰이 처음 발명된 것은 단지 아주 작은 전기 신호를 듣기 위해서였다. 인류 최초의 헤드폰을 만든 것은 1910년대 미국에서 전기 기사로 일하던 나다니엘 볼드윈.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발명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미 해군이었다.
독특한 생김새로 놀림거리가 되었던 최초의 헤드폰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작은 전기 신호를 증폭하여 들려주는 성능은 매우 뛰어났고, 테스트를 마친 해군은 1차 대전을 위해 100개의 헤드폰을 주문했다. 이때 볼드윈이 만들던 초기 헤드폰은 임피던스가 무려 1000~2000옴에 달했다고. 이후 헤드폰은 일반 가정에 보급되면서 점차 음악 감상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와 내비게이션의 공통점은?
레이더를 이용해 전자레인지를 발명한 퍼시 스펜서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전자레인지와 내비게이션 역시 군사 기술을 활용한 발명품이다. 1945년, 미국의 한 레이더 회사에서 일하던 퍼시 스펜서는 단파장을 이용한 새로운 레이더 장비를 개발하다가 문득 주머니에 들어있던 딱딱한 초코바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린 것을 발견한다.
1946년 만들어진 최초의 전자레인지 레이더레인지(Radarange)
스펜서는 옥수수 알갱이, 달걀 등 몇 가지 음식을 직접 익혀본 후 그 원인이 실험 중이던 마이크로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방이 차단된 금속 상자에 마이크로파를 쏴 불꽃 없이 음식을 데울 수 있는 최초의 전자레인지를 만들어낸다. 레이더를 이용해 개발된 제품인 만큼 ‘레이더레인지’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으며, 시연을 본 사람들은 마술이라도 본 것처럼 신기해했다고 한다.
1990년 세계 최초로 GPS 내비게이션을 탑재한 자동차 마쓰다 코스모
이제 운전할 때 없어서는 안 될 내비게이션은 미 국방부에서 개발한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 GPS를 적극 활용하는 발명품이다. 내비게이션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스마트기기에 탑재된 GPS는 사실 냉전 시기 오직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군용 기술이었다.
위성 신호를 이용해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GPS
1957년 소련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한 뒤 미국에서는 위성 신호를 통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1978년 첫 GPS 위성을 발사해 미사일 유도와 병력 배치 등에 사용했다. 그러나 1983년,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에 침범한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민간인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자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은 GPS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결정한다.
초기에는 민간용 GPS에 의도적으로 노이즈를 넣어 정확도를 떨어뜨렸지만, 2000년부터 이 정책을 폐지하면서 정확도가 크게 향상되었고 GPS를 탑재한 내비게이션과 스마트기기가 활발하게 출시되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2022년부터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 KPS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일상품
전쟁 중 만년필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볼펜 바이롬(Birome)
컴퓨터, GPS와 같은 첨단 기술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 속에는 전쟁통에 태어난 발명품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볼펜. 볼펜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만년필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만년필은 사용할 때마다 잉크를 채워야 하고 너무 쉽게 번져, 고지대나 해안가 등 극한 상황에서 사용하기가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라즐로 비로 탄생 117주년을 기념했던 구글 로고
유태인계 헝가리인이자 신문 기자였던 라즐로 비로는 만년필 잉크와 달리 흘러내리지 않고 빨리 마르는 신문 잉크를 활용하여, 펜 끝에 달린 금속구가 굴러가면서 잉크가 알맞게 새어나오는 필기구를 개발해낸다. 그리고 독일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특허를 낸 뒤 ‘바이롬’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전쟁 이후 민간에 판매되기 시작한 볼펜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며 만년필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대체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필기구로 자리잡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Waltham 손목시계 광고
손목시계 역시 전쟁 이후 대중화 된 물건 중 하나다.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손목시계는 팔찌와 비슷한 고가의 장식품으로 오직 여성들의 전유물이었고, 남자들은 대부분 회중시계를 소지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값싸고 튼튼하면서 어디서든 빠르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실용적인 시계가 필요했고, 이때 만들어진 것이 회중시계에 가죽끈이 달린 지금 형태의 손목시계다. 시계 바늘에 발광 물질인 라듐을 발라 참호 등 어둠 속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당시 손목시계를 트렌치워치(참호시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르토르 식품이나 통조림 음식도 전쟁 중 음식을 간편하게 조리해 먹기 위해 발명된 제품들이다. (참고: 국방력 세계 6위! K-전투식량 맛보기)
다만 한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 있다면 바로 환타.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 다음으로 코카콜라를 사랑하던 독일은 전쟁이 터지자 콜라를 먹을 수 없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만들어 낸 것이 환타였다. 전쟁이 끝난 이후 코카콜라가 다시 독일 공장을 운영하면서 저품질 판타를 단종시켰고, 1955년 펩시 신제품에 대항하여 다시 부활시킨 것이 바로 지금의 오렌지맛 환타다.
따뜻하고 실용적인 군복에서 일상복으로!
트렌치코트 패션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카사블랑카>
밀리터리 패션하면 흔히 국방색, 카키색이나 카모플라쥬 패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은 일상복이나 다름없는 옷들도 사실 군복이었던 경우가 꽤 많다. 지금처럼 쌀쌀한 계절에 입기 딱 좋은 트렌치코트 역시 트렌치(참호)라는 이름처럼 군인들이 참호에서 주로 입던 코트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물이 자주 고이는 참호에서 생활하던 영국 군인들을 위해, 어느 정도 방수가 되면서 통기성이 좋아 잘 마르도록 개량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트렌치코트를 입은 영국 장교
군복답게 주머니가 많고 견장이나 휘장 등을 달 수 있는 어깨끈이 달려있으며, 일반적으로 오버코트 위에 추가 보온을 위해 걸쳐 입었기 때문에 품이 크고 길이가 길었다. 이 때문에 허리끈이 꼭 필요했고, 이 허리끈은 곧 트렌치코드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 장교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계속해서 트렌치코트를 착용했고, 이후 대중문화에도 자주 노출되면서 남녀 모두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기병대를 이끌고 돌진하는 카디건 백작 (1894)
포근한 느낌을 주는 카디건은 1853년 크림전쟁 당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병사들이 추운 날씨에 스웨터를 껴입다 보니 옷을 벗기고 상처를 치료하기가 어려워지자, 이를 지켜보던 카디건 백작이 스웨터 앞에 단추를 달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카디건 백작의 이름을 딴 카디건은 따뜻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 덕분에 전쟁 이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바지나 방풍 효과 및 보온성이 뛰어난 해군용 피코트 또한 군복에서 유래된 의복들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기획, 편집 / 다나와 홍석표 hongdev@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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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레트로제품을보니 옛날 환타음료 생각납니다
여름 ,환타가 갈증 해소에 가장 탁월하더군요.
통조림가 시계가 제가 보기에는 가장 으뜸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