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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을 회상하며 죄를 자복하다
느 9:22-29
22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23 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24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25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26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2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28 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29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느 9:22-29 / 주께서는 그들에게 사방의 나라와 민족을 정복하게 하시고, 그런 나라들을 이스라엘의 변두리 지방으로 할당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땅도 차지하고 바산 왕 옥의 땅도 차지하였습니다. 23) 주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들도 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조상들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약속해 주셨던 그 땅으로 친히 그 후손들을 인도해 들이셨습니다. 24)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들어와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주께서 가나안 땅의 주민들을 굴복시켜 그 후손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시고 그 땅의 왕들과 족속들을 그 후손들의 손에 넘겨 주어 마음대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잘 요새화된 성읍들을 차지하고 기름진 논밭을 점령하고 온갖 좋은 물건이 가득찬 집들에 들어가 살며, 바위 뚫고 파놓은 샘에서 물을 퍼마시고 수많은 포도원과 올리브 동산도 점령하고 온갖 종류의 과일나무들도 차지하여 배불리 먹고 살이 찌며 주님이 주신 큰복을 누리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26) 그런데도 어느새 그들은 주께 대항하고 반역하였으며 주님의 율법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예언자들이 나타나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고 주께 돌아오도록 권고하였으나 그들은 예언자들마저 죽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점점 더 주님을 괴롭히고 모독하였습니다. 27) 그러자 주께서 그들을 다시 원수들의 손에 넘기셔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주께 부르짖으며 살려 달라고 호소하면 주님은 하늘에서 그들의 음성을 들으시고 강한 해방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사사들을 계속 보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토록 크고 깊었습니다. 28) 그러나 그들은 잠시 숨을 돌리게 되자 다시 지난날처럼 범죄하였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그들을 또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원수들이 그들을 다시 짓누르자 그들이 또 주께로 돌아와 부르짖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께서는 하늘에서 항상 크신 사랑으로 그들의 음성을 들어주시고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29)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며 옳게 살도록 가르쳐 주셨으나 그들은 또 자만해져서 주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께서는 사람이 지키기만 하면 살수 있는 계명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으나 그들은 여전히 반항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등을 돌리고 반역하며 냉혹한 고집을 꺾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여 징계를 받았습니다.
큰 복을 주신 하나님(22-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고 놀라운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먼저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그 땅에서 나는 농산물로 배부르게 하셨습니다(25).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굽에 들어올 때는 고작 70명이었지만, 400년의 시간이 지나 애굽을 떠날 때는 번성하여 남자의 수만 60만 명 이상이었습니다(출 1;7, 12 ;12:3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도록 복을 주셨습니다(23).
배신하는 백성들(26)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복을 누렸습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양식을 위하여 만나를, 고기가 필요하면 메추라기를 주셨으며 물이 필요하면 반석을 깨뜨려서라도 생수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불평과 불만뿐입니다. 현재의 삶에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살전 5:18).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까지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말씀을 거역하거나 순종하지 않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큰 죄악입니다.
경계(警戒)하시는 하나님(27-29)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 할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십니다(삼하 7:14; 사 10: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여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레 18:5; 신 10:13).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범죄와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습니다. 또한 어깨를 내밀고 목을 굳게 하는 교만으로, 주의 계명과 율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어깨를 내밀고 목을 굳게 하여”라는 말은 짐을 실은 짐승을 앞으로 가게 했을 때, 오히려 뒤로 버티는 불순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호 4:16; 슥 7:11).
적용: “불평 아니면 감사”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는 당신을 영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과정이 있을 때 당신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갑니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재능에 따라 살아가야만 한다면 인생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요? 오늘은 당신이 뒤처졌지만 내일은 당신이 앞지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의 재능은 이만큼이지만 내일의 재능도 이만큼이라고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내일은 훨씬 더 뛰어난 사람으로 발전할 당신의 모습을 기대해보세요. 환난을 통해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 큰 축복으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 설 교 >
죄와 은혜의 역사
느 9:22-37 / 김동국목사
"우리가 받은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고난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는 통로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을 당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고난은 우리의 꿈과 행복, 건강한 삶을 처참하게 유린해버리고 맙니다. 고난으로 인한 고통과 짓눌림을 우리 자신이 해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참된 삶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종교들도 끊임없이 고난을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난 극복을 위한 세상 종교들의 노력
힌두교는 ‘달마리’라는 교리로 고난을 설명합니다. 고난은 전생에 지은 자기 죄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과응보인 것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될 것을 다시 현세에서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맙니다.
불교는 ‘열반’이라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열반’은 ‘촛불을 끄듯 꺼진다’라는 뜻입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정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잠재울 때 고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고통이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텐리 존스의 말처럼 ‘두통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고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회교에서는 ‘고난은 알라신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 당한 고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신이 네게 고난을 정해줬으니 감당해라’ 이것이 회교의 가르침입니다. 신이 준 고난에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요, 고난은 그 인생 가운데 있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에피크로스 학파는 ‘향락주의’를 주장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다. 술을 마셔서 잊을 수 있으면 술을 마시고, 춤을 춰서 잊을 수 있다면 춤을 춰라’라고 가르칩니다.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왜 고난이 주어지는가
이렇게 많은 종교, 학파들이 고난의 문제를 규명하고 정의하지만 고난과 고통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난은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시편 119편 75절에서는 나에게 고난이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나를 끌고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자신의 나라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는 학교인 것입니다. 고난의 학교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자체보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진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고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고난의 목적을 알 수 있다면 그 고난은 오히려 나를 변화시켜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고난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고난의 의미를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왜 우리는 포로로 살아야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을 버려 두셨는가?’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넓은 광장에 모여서 낮의 사분의 일 동안 말씀을 듣고 낮의 사분의 일 동안 기도를 하며 그 고난의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이 고난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37절과 38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그들의 죄를 조상들의 역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상들의 사건을 통해서 조상들의 죄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현재 삶 가운데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자신의 죄의 유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조상들의 역사를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5가지 기도의 제목, 회개의 내용, 죄의 패턴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22절에서 2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저희가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주께서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 열조에게 명하사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22절에서 26절까지 말씀은 가나안 정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말씀, 아브라함에게 준 말씀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씩 이루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신실함을 철저히 증명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불순종하는 인간
하나님은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겠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산 땅에서 생육하여 번성하게 하고 장정이 60만 명인 상태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광야 40년 생애를 거쳐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는 7족속과 31명의 왕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이들은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와 같은 존재로 존중하고 대우해주셨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7족속과 31명의 왕을 정복하시고 지배하시게 되는 순간 그 땅에 대한 주도권을 자신의 백성에게 주십니다. 24절 끝에 있는 ‘임의로 행하다’의 본래 뜻은 ‘소원대로 행하게 하다, 자기의 뜻대로 행하게 하다’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 땅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기름진 땅과 견고한 성 등 그 땅에 있는 좋은 것들을 다 취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누렸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을 저지릅니다.
➊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로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죄의 내용은 하나님이 주신 복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25절과 26절을 보면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아낌없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고, 마땅히 누려야 될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벌을 내리고 징계하시는 겁니다.
➋ 두 번째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는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1장 8절과 9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을 지켜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형통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비단 여호수아 개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이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하는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 죄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도록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한 요나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 기간에 하나님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더 중요시 여기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27절에서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버려 두사 대적에게 제어를 받게 하시다가 저희가 돌이켜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번 긍휼을 발하사 건져내시고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➌ 세 번째 유형의 죄는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기 이전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다른 민족의 손에 붙이십니다. 그들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해주시길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 준 이후에 더 큰 죄를 저지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죄인 것입니다.
➍ 네 번째 이들은 자기들의 고집, 생각, 주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반복해 죄를 짓습니다.
29절에 보면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고’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길들여지지 않은 암소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주인이 암소에다 짐을 지우고 끌고 가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고 다시 악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계명과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버티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과 고집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심판과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 가운데서 깨닫는 다섯 번째 죄의 유형이 30절에서 31절의 말씀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또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으로 저희를 경계하시되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의 손에 붙이시고도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열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더욱더 관용해지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의 죄로 인해 멸망과 심판이 올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경계를 듣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고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워진 상황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결과라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대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에스라와 레위 사람을 대표해서 광장에 함께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한 죄악들이 마침내 자신을 포로로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어떠한 죄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지적 앞에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32절부터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열조와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당한바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시지 마옵소서 그러나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 행하셨음이니이다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열조가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의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저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고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곧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사 그 실과를 먹고 그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종이 되었나이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이 종이 되었던 것이 바로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었던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움을 높여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다루심을, 하나님의 고난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을 이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더 이상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이 자신들에게 의미가 되고, 하나님이 복을 주는 통로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난은 바로 변장된 복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자백하면서 회개합니다. 37절과 3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로 인해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난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용서하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계약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언약을 세워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들어올 때만이 그들의 고난의 고통과 눌림과 저주로부터 자유케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구체적인 죄의 유형들, 죄의 제목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고, 그 말씀과 계약을 맺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축복과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느 9:23-30 / 정필도목사
주께서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 열조에게 명하사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시며,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아무리 돌부처 앞에서 천 배의 절을 하고 종일 탑돌이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더 좋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악인들에게도 복을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 43절을 보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이를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2장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인간들을 위해 모든 것들을 다 주셨습니다. 인간들이 다 쓰든지 말든지 처음부터 풍성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부터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 복을 받아 누릴 사람으로 만드는 작업부터 하십니다. 모세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높이 들어서 쓰시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면 다 죽임을 당하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은혜를 주셔서 그의 부모가 잘 숨겨 기르게 하시고 또 갈대상자에 넣어 보호해 주셨으며, 바로 공주의 아들이 되어 애굽의 왕궁에서 최고의 학문을 다 익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40세에 이르렀을 때에 광야로 불러내시고 80세가 될 때까지 훈련시키셨습니다. 그후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복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감당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패역한 이스라엘의 광야 1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려 해도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면 아무 것도 주실 수가 없습니다.
토마스 칼라힐은, 불행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100명이지만 번영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번영을 누리기 무섭게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평안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환난의 때보다 평안할 때 믿음을 지키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스타인벡은 “민족을 멸망시키고 싶으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어서 탐욕스럽고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어 병들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빨리 망하게 만드는 방법은 돈을 많이 주어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요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도 절대로 타락하지 않으며, 아무리 하나님이 높여주셔도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가운데 얻는 부는 타락을 재촉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부요한 사람입니다.
새 성전을 건축하면서 저는 우리 교회에 이렇게 가난한 사람이 많은지 미처 몰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전건축은 대개 부자 교인들이 몇 백억, 몇 십억씩 드림으로 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교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큰 부자는 없지만 모자람이 없이 성전이 지어지는 것을 볼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별로 가진 것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을 보면, 믿음이 부요한 성도들이 우리 교회 안에 많다는 것을 자랑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저는 물질보다 믿음이 더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의 믿음이 따라오지 않으면 성전이 중단되어도 좋다는 각오로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매일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하고, 9시 기도회를 통해 은혜를 받으려고 몸부림치며, 성전건축에 앞서 각 사람의 믿음이 건축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돈, 돈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의 시험만 들 것입니다.
요한 삼서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그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부요해지면 부요해질수록 물질도 부요해질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할 때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느헤미야 9: 24-25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고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으로 행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님이 주신 큰복을 즐겼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그런 대로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 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고 체험적으로 아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을 버리고 사신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2:6-10절에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경건한 지도자와 경건한 부모와 경건한 어른이 계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조상들이 자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나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신앙의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건강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령의 세례를 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어디에 내어 놓아도 타락하지 않고 알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아들 딸로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된 우리는 믿음의 유산이 가장 큰 유산인 줄 명심하고 자녀의 신앙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멸망의 길로 가면 반드시 때리십니다. 구약 성경의 사사기를 보면 이러한 사실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고통을 받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사를 세우시고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다가도 어느 날 다시 타락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용서받고 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계속 전개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75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죽으라고 때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미워서 때리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잘못된 길로 가다가 죽게 될까봐 살리려고, 잘 되게 하고 복 받게 하려고 우리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판단을 의롭다고 특별히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고난이 길어지면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그 즉시 천국 백성으로 천국의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나는 끝났다”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죽었다” “나는 망했다” “차라리 죽어버리자”....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러할 때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는 히브리서 13:5절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 말씀을 들어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성령은 여러분 안에 머물러 계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이사야 49장 14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난 너희를 절대 잊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잊을 수가 있느냐. 여자가 자기가 난 자식은 혹시 잊을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희들을 절대로 잊지 아니한다. 너희들을 내 손바닥에 새겨 놓고 기억하겠다. 너희들이 지금 소망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네 자손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황폐했던 땅이 다시 새롭게 기름진 땅이 될 것이다. 에덴 동산으로 변화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을 통해 여호와를 버림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렘 2:19).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우리가 복 받으면서 잘 되게 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시편 94:12-13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시를 주셔서 정신차리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책망 받았기 때문에, 악한 자가 멸망 당해서 구덩이 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평안하게 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 67, 71절을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시 119:72).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그 축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영광 받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아직도 부족하여 하나님이 주시고 싶지만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주면 타락하고 교만해져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으로 무장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아무리 많이 부어주셔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아껴 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선교하고 구제하는데 열심을 낸다고 하면 믿음의 부요와 함께 물질의 부요도 함께 받는 진정으로 복된 자가 될 줄 믿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꽉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성실하신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용서하시고 또 받아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거역과 징계
느 9:22~29 / 산호석목사
1. 임의로(24절) : ‘자기가 소원(즐겨)하는 대로’란 뜻이다.
2. 등지고(26절) : 소극적으로는 ‘눈과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다’는 뜻이요,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삶을 살다’는 뜻이다.
3. 고집하는 어깨(29절) : 주인의 뜻을 완강히 거부하고 등에 짐 싣기를 싫어하는 짐승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기 싫어하며 고집스럽게 버티는 인생을 빗댄 말이다.
* 말씀묵상
1. 백성들의 거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이후에 그곳에 살고 있던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쫓아내게 하시고 집을 주셨으며 아름다운 물건과 과실과 기름진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와 평안을 누릴수록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또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선지자를 죽임으로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26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이 징계는 완전한 패망을 바라는 악의에 찬 징계가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회개와 회복을 바라는 사랑의 징계였습니다. 징계로 인한 고통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평화가 다시 찾아오면 그들의 죄악은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께 대한 배신과 반역의 역사였습니다.
2.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는 한번 언약하신 백성들은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돌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징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들어 규례를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께 간섭받기를 거부하여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인간의 교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하여 이들의 교만을 부수시고 회복과 회개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그들은 어떤 자들 입니까?(22-23, 25-29절)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큰 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복입니까?(22, 25절)
*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2.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망각하고 반복해서 짓고 있는 죄가 있습니까?
가나안 땅에서의 불순종
느 9:22-31 / 김성수목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꿰뚫는 하나님의 역사는 이제 가나안 땅 정복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단강 동쪽의 땅을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사 말씀하신 대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땅에서 그들은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습니다.(25절)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역했으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했습니다. 이를 하나님은 당신을 심히 모독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는데(26절),
먼저 하나님은 '그러므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반응은 '그러므로'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시고 곤고를 당하게 하시며 환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의 하나님'은 그래도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지켜 주신 하나님이셨지만,
'그러므로의 하나님'은 그래서 책망하시고 고난과 환난을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러나의 하나님'도, '그러므로의 하나님'도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고난과 환난을 당한 그 백성의 선택은 주께 부르짖고, 주께로 돌이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므로의 하나님보다는 그러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습니다. 편합니다.
그러나 교훈의 측면으로 본다면 교만을 꺾으시고, 고집을 꺽으시며, 주께로 돌이키는 방법은
'그러므로'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 번'이란 단어를 자주 대하게 됩니다.
다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은 여러분 주의 긍휼로 건지시고(28절)
여러 해 동안 참으시는(30절),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나 그러므로'나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베푸시기 위하여, 불쌍히 여기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도구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