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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난독증에 고등학교 중퇴, 그러나 전세계 26개국에 36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세계적 기업의 회장이 됐다. 여행, 의류, 음료, 투자정보 서비스업, 컴퓨터 게임, 음반사업 등 가히 ‘세계 제국’이라 불릴 만한 영국 거대 그룹 버진(Virgin)의 창시자 리처드 브랜슨의 성공 신화를 만나보자.
리처드 브랜슨(55. Richard Branson), 그는 기업가이며, 모험가라 불린다. 1986년 버진 아틀란틱 챌린저 2호 보트를 타고 대서양을 최단시간에 횡단. 1991년에는 일본에서 캐나다까지 기구를 타고 이동. 교통, 레저, 통신, 벤처 기업, 오락 등 5개의 독립적인 기업을 외부 자본 없이 운영한다. 영국에서 브랜슨의 영향력과 인기는 굉장히 높다. 그가 세운 버진(Virgin) 제국의 로고는 영국 에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비행기, 철도, 영화관, 음반 매장, 호텔, 이동통신 단말기, 복권, 콜라 캔 그리고 사이버 세계에서까지. 그리고 영국 소비자들은 그 로고를 보면 자연스럽게 브랜슨을 떠올린다. 브랜슨은 소비자를 경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통적인 대기업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 보기 좋게 이기고, 여왕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고 3조 원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소박하다. .열기구로 대서양을 건너는 목숨 건 모험을 하고, 또한 걸프전쟁 발발 직전에는 바그다드로 인질 구조 비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에 이가 다 드러나는 시원한 웃음을 짓는 그는 지금 영국 국민의 우상이 되어 있다.
리차드 브랜슨은 195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도전의식과 모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가 네 살 때 집에서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그를 혼자 버려두고 집을 찾아오라고 하기도 하는 등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그의 부모는 다른 부모들처럼 간섭하고, 훈계하는 부모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 이야기하고 격려하는 부모였다. 따라서 그의 가정은 언제나 화목하고 자유로우며 활기가 넘쳤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그가 이후 버진을 설립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확장하기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항상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좋아했던 브랜슨이었지만 그의 학창시절이 항상 밝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브랜슨은 전통적인 스캐트클리프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정규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선천적으로 난독증(難讀症,, dyslexia)을 가지고 있었던 브랜슨은 학교에서 늘 골칫거리인 아이었다. 독서장애증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듣고 말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문자를 판독하는 데에 이상이 있는 증세로 지능은 정상이지만 글자를 읽거나 쓰는데 어려움이 있는 증세를 말한다. 때문에 브랜슨의 성적은 늘 바닥을 헤매었고, 시험에는 낙제하기 일쑤였다. 그는 한 차례의 벼락 공부로 스토 사립학교에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브랜슨의 관심은 교실 안에 있지 않았다. 그는 공부보다는 스포츠를 더 좋아했다. 그는 축구, 럭비, 크리켓 등 모든 경주에서 1등을 했으나 축구경기 중 무릎부상으로 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는 열 여섯 살 때 학교를 자퇴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때 교장은 브랜슨이 감옥에 가거나 백만장자가 될 거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브랜슨은 어릴 적부터 사업을 했다. 친구이자 오랜 사업 파트너인 닉 파웰과 함께 앵무새 기르는 것으로 첫 사업 경험을 쌓았고, 그 다음은 크리스마스 트리 재배 사업을 했다. 그러나 그 사업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제대로 된 첫 번째 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바로 열 여섯 살에 발행한 「스튜던트(Student)」라는 학생 잡지이다. 그의 첫 사업은 가장 가까이에서 접했던 학교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학교의 부조리한 교칙- 체벌, 교회 및 응원의 의무적 참가, 라틴어 교육 등에 불만이 많았던 브랜슨은 이러한 규칙과 기존 관습에 저항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학생잡지 「스튜던트」를 발간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16세였다. 학생들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던 이 잡지는 이후「스튜던트 카운셀링 센터(Student Counseling Center)」로 발전하게 되었다. 브랜슨은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편집 쪽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업 분야를 맡아서, 광고를 얻고 인쇄업자와 흥정을 하고 거리에 나가 잡지를 판매했다. 이 때의 책임감은 그를 급속히 성장시켰다. 10대 청소년 브랜슨은 점점 사업가가 되어 갔으나, 그는 자신을 사업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잡지로 돈을 벌고 싶었고,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했지만, 잡지를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창조적인 기업으로 생각했다. 그는 잡지를 발행하려면 독창적이고 남다르게 뛰어난 것, 유용한 목적을 위해 오래 봉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후 항상 그의 사업 철학이었다. 그와 함께 잡지를 만든 20명의 사람들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졌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창조력과 열정을 잡지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잡지는 돈을 벌어다 주지 못했다
브랜슨은 잡지를 발행하면서 많은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함께 하면서 그들이 음악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레코드를 사는데 많은 돈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음악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정부가 소매가격 유지 협정을 폐기했는 데도 불구하고 할인 판매를 하는 음반 가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주 훌륭한 사업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브랜슨은 통신 판매 음반 회사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1971년 브랜슨은 그의 동료 닉(Nick)과 함께 우편 통신으로 음반 할인판매를 시작했다.「스튜던트」에 레코드 통신 판매 광고를 싣자 예상대로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브랜슨은 좀더 사람들의 눈을 끌 수 있고 학생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이름을 생각해 내기로 했다. 모두들 둘러앉아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에 누군가가 ‘버진’이 어떻겠냐고 했다. 자신들 모두 사업에서는 완전한 처녀, 즉 그것이 미지의 영역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버진’이라는 세계적 브랜드는 만들어졌고, 영국 옥스퍼드가에 첫 사무실을 열면서 버진그룹의 시초인 ''버진레코드(Virgin Records)''가 탄생하게 되었다.
브랜슨은 버진 레코드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제국을 세우기 시작했다. 버진 나이트클럽을 시작으로, 영화·비디오 배급 업체인 버진 비전((Virgin Vision, 버진 커뮤니케이션스 전신), 컴퓨터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인 버진 게임즈, 버진 애틀랜틱항공과 버진 카고, 그리고 버진 호텔 등, 1985년까지 버진은 스물 다섯 개의 사업체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 중 버진 애틀랜틱항공(Virgin Atlantic)은 버진 제국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체로 성장했는데, 브랜슨의 기업가적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다. 버진 애틀랜틱은 아주 뜻밖의 제안에서 출발한다. ''버진 뮤직'' 이후 연예오락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추진 중이던 브랜슨은 1984년 2월, 랜돌프 필즈(Randolph Pills)라는 미국인 변호사로부터 항공사를 운영할 의사가 없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당시 영국 항공(British Airways)이라는 거대 기업이 버티고 있는 항공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브랜슨은 ‘고객들이 지불하는 금액’에 비해 ‘더 많은 가치와 재미’를 제공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1984년 브랜슨은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공 사업에 진출했다. 달랑 비행기 한 대로 출발한 항공사였지만 버진 애틀랜틱의 서비스는 분명히 파격적이었다. 일등석은 없지만 비즈니스 클래스 요금대의 ‘어퍼 클래스(Upper Class)’에서는 적어도 타 항공사의 퍼스트클래스급 대우를 받는다. 또한 기내에서는 비디오, 음악, 게임은 물론 목욕, 이ㆍ미용 뿐 아니라 무료 안마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고, 기내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하는 등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승무원들 스스로가 근무를 즐기고 있다고 느낄 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여행을 할 수 있다. 고객들은 이와 같은 버진 애틀랜틱에서의 경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버진 애틀랜틱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은 승객들은 버진 그룹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이는 버진의 명성을 높게 함으로써 이후에 버진이 다양한 분야에 사업 진출을 할 수 있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 . 버진 애틀랜틱은 매년 항공사들에 수여하는 각종 상을 거의 독식하면서 영국 제2의 항공사가 되었다.
Universal Brand를 만든 원칙 현재 버진 그룹의 홈페이지에 구분된 각 그룹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각 그룹사의 세부 계열사는 물론, 새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까지 합하면 버진 그룹의 사업 영역은 실로 막대하다. 항공사에서 콜라, 주택 담보까지 버진의 영역을 넓힌 브랜슨은 호텔와 온라인 세계까지 그 발걸음을 옮겼다. 주력업종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업종에 동일한 브랜드를 활용하고 있는 버진. 문어발식 경영이 비판받고 기업의 수평적, 수직적 계열화 그 둘 중 하나를 이루는 것도 어려운 때에 브랜슨의 이러한 무차별적 확장은 어찌보면 어리석고 무모해보인다.
하지만 브랜슨은 말한다.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거의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믿는다" 라고. 그의 말처럼 이제 버진은 세계 최초의 만능 브랜드(universal brand)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버진의 사업확장 방식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이용해서 손쉽게 기업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거대 그룹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영역의 틈새를 노린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기회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끼면 도전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버진의 명성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는 브랜슨은 사업확장에 있어서 다음의 다섯 가지의 기준철학을 두고 있다. - 1. 최상의 품질을 지니고 있을 것, 2. 기존의 것과는 다른 혁신적인 것일 것, 3. 금전적 효용성이 큰 것, 4. 고객들에게 고급감과 신뢰를 줄 것, 5.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재미, 유머감각을 더할 수 있는 것일 것 이런 요소는 이제 버진의 브랜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버진은 이미 소비자가 알고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에 기초해 사업을 확장하면서 그것이 버진의 이미지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한다. 이러한 사업들은 서로 아이디어와 가치를 공유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간다. 때문에 오히려 사업들간에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는 것이다. 버진그룹의 사업들은 계층적인 구조이기 보다는 오히려 가족에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수많은 확장에도 브랜드의 가치를 희석 시키지 않는 중요한 힘이 되고 있다. 명성을 이용한 제휴 방식 현재 버진이 전개 중인 사업은 250여가 넘는다. 이러한 버진의 사업확장이 여느 영.미 기업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확장이 거의 대부분 제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버진의 제휴 파트너는 그 분야의 전문업체로서 제품과 자본을 대며 버진은 버진이라는 이름을 제품에 붙이도록 하고 실제 경영전략의 수립 집행을 담당한다. 이에 대한 대가로 버진은 그 합작 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즉 버진은 기업의 명성을 자본화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융 분야의 버진다이렉트(Virgin Direct)같은 회사는 스코틀랜드 최대의 은행인 로얄 스코틀랜드 은행(Royal Bank of Scotland)이 파트너이며, 버진 콜라의 경우 캐나다의 음료업체인 코트(Cott Corp)가 제휴 파트너이다. 버진은 자신의 명성못지 않게 경쟁사의 명성도 시장 경쟁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97년 영국 항공이 기존의 영국국기인 유니온 잭 모양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업 로고를 제정했을 때, 버진 항공은 유니온 잭문양을 그들이 사용하겠다고 하여 영국국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최근 코카콜라가 유럽의 몇 개국가에서 식중독을 일으켰을 때 버진은 민첩하게 그 기회를 포착하여 일부 시장에서 매상이 10배 가까이 오르기도 하였다. 브랜슨의 명성에 대한 시각은 상당히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명성이란 매우 소중한 기업의 무형자산이므로 남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브랜슨은 지금까지 2백여개의 신규사업에 진출하면서 버진이라는 그룹의 명성을 거의 예외 없이 활용하였다. 21세기의 경영환경은 지식화 정보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해 명성이 기업의 중요한 전략적 자원으로서 그 가치를 더욱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기업들도 명성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어떻게 명성을 구축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 더 나아가 지적 자본화할 것인지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1. 실력자를 상대로 겨루어라 거대기업을 경쟁 상대로 선택하는 것이 버진 철학 제1조이고 브랜슨을 성공으로 이끈 열쇠이다. 억만장자이면서도 서민성을 유지하고 브랜슨. 사람들은 브랜슨의 자유분방한 스타일과 비순응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히피 자본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에게 대해 덜 알려진 능력 가운데 하나는 노련한 협상 기술이다. 몇해 전 버진이 재정난에 빠졌다는 소문이 확대되자 그는 싱가포르 항공을 설득, 버진 애틀랜틱의 지분 49%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무려 6억 파운드를 받아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또한 업무 문화를 만드는것은 유능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또 이들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브랜슨은 여기기에 일하는 데 있어 "재미"를 강조한다. "재미" 그것은 그들에게 봉급보다 더 큰 충성 요인이 된다고 브랜슨은 생각한다. 그는 누구보다 브랜드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브랜드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가치는 지속될 것이며 브랜슨은 버진 브랜드가 그 완전 무결성에 손상을 입지 않는 한, 무한한 융통성을 보일거라고 믿는다. 언론의 힘을 잘 인지하고 있는 브랜슨은 매스컴의 관심을 끄는것이 판매를 촉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브랜슨의 사진이 실릴때마다 버진 브랜드는 광고되고 있는 것이다. 브랜슨은 그가 이끄는대로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게 하기보다는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브랜슨은 기회를 포착할 때 재빨리 행동에 착수한다. 그는 예외적으로 짧은 의사 결정 단위를 만들어 냈다. 기발하게 생각하되 단순하게 운영하라.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버진의 주특기이다. 브랜슨의 궁극적인 재능은 대중의 인기를 얻는 자질에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지속적인 성공과 명성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CEO & 엔터테이너 지난달 23일부터 케이블TV Q채널에서 ''빌리어네어, 최고의 인재를 찾아라(Billionaires)’ 라는 리얼리티쇼를 방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리차드 브랜슨은 자신의 기업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각종 게임을 걸쳐 상금 백만 달러와, 자신의 경영 후계자를 선정하는 리얼리티 쇼이다. 총 참가자는 총 16명이며 이들은 6주간 영국을 시작으로 짐바브웨, 모로코, 마이애미, 홍콩, 남아프리카, 도쿄 등 6주간 세계 10개국을 돌며 담력, 도전 정신 및 경영 마인드를 테스트하는 게임을 하게 된다. 미국 NBC에서 방영해 인기를 끌었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어프렌티스’는 대부분 경영에 관한 도전 과제를 받는 것과 달리 이 프로그램은 모험과 담력 등을 포함한 경영 전반에 걸친 평가를 받는다. 매주, 게임 및 브랜슨의 판단으로 한 명씩 탈락하게 되는 이 지난해 미국 공중파 채널 리얼리티 쇼 부문 남성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이 프로그램의 첫회에서 브랜슨은 택시 운전사로 변장, 참가자들의 태도를 관찰 결국 아야시와 스펜서 탈락. 2팀으로 나뉘어 3050 미터 상공에서 2개의 기구 사이 나무판을 걸쳐 놓고 걷는 게임을 한다.
''우주여행''. 러시아 항공국, NASA와 같은 기관만이 떠오르는가? 지난해 10월 최초의 민간주도 유인 로켓인 ''스페이스십원''이 두번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민간인의 우주여행에 대한 꿈도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버진그룹이 참가했다. 스페이스십원의 기술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브랜슨은 승객들이 우주에서 무중력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우주여행 상품을 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우주에서 4분간 무중력 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2시간짜리 로켓여행상품(1인당 19만달러, 약 2억 2000천만원)을 2007년부터 판매한다고 말했다. 2억원이 넘는 금액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민간의 우주비행은 1인당 2000만달러(약 230억원)의 거액을 내야 했던 러시아의 우주선 소유스호 우주 관광이 전부였다. 무려 100분의 1로 브랜슨은 우주여행을 상품화하려 하고 있다. 브랜슨은 자신있게 말했다. "우주여행은 돈이 많이 들 것이다. 하지만 수익전부를 재투자할 것을 약속한다" 라고. 런던의 한 구석에서 출발한 레코드 소매점이 오늘날의 버진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이러한 성공에 기여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바로 ‘버진’이라는 이름의 파워, 사업 파트너 제휴사들, 경영 스타일, 리차드 브랜슨의 이미지, 주위의 친구들 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브랜슨의 끊임없는 ‘도전’ 과 ‘모험’ 정신이었다. 브랜슨은 ''버진콜라''가 ''코카콜라''를 앞지를 것이라며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 탱크를 타고 들어가 코카콜라 간판을 향해 포탄을 쏘는 이벤트를 벌이는가 하면, 두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열기구를 타고 세 번째 세계일주에 도전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의도적으로 광고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모험과 사업은 똑같다”는 브랜슨 회장의 말처럼 이러한 도전정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되새기게 해주며,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열 여섯살의 잡지 발행인인 브랜슨은 결코 돈만을 위해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사업은 열중할 수 있어야 하며, 재미가 있고, 창조적인 본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랜슨은 때론 꿈 많은 몽상가 혹은 운이 좋은 사나이 같이 보이다가 또 한 순간 예리함을 재기발랄함으로 감춘 노련한 경영자 같기도 하다.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정 전의 신중함이라기 보다는 결정 후 자신의 선택에 열정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 일을 할 때 즐거운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했던가. 지진아 취급을 받았더 열 여섯소년. 그 어린 가슴이 품었던 꿈은 점점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주여행을 꿈꾸는 CEO, 그 반짝반짝 빛나는 열정이 현실이 되는 날을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 |
첫댓글 버진 대단하죠...ㅋ 한국에선 별로 모르겠는데 외국가면 버진..=+=
너무 매력남이죠 .... 나도 성공해보겠다고 한때 이사람이 쓴 책을 열심히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