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아의 전설》
어느 순간부터인지 대한민국이
커피의 나라가 돼 버렸어요.
거리마다 마을마다
커피숍, 카페, 커피전문점, 찻집이 즐비하구요,
그것도 부족해 직장마다 커피머신이
대기하고 있구요,
요즘엔 가정에서도 커피숍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원두커피 분쇄기나 핸드드립 커피 도구들이
필수죠.
혼수품에 커피용품 빠지면
그 결혼 무효래나 뭐래나.
이른바 커피 공화국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커피 식민지쯤 되겠죠.
이런 커피에 대한 팩트를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어요.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는 367잔,
이는 세계 2위로 세계 평균인 161잔의
두 배가 넘구요,
우리나라 인구 100만 명당 커피전문점 수는 1,384개로 2위인 일본(529개)의
2배를 훨씬 웃돌구요,
지난해 커피시장 규모는 43억 달러로
우리 돈으로 6조 원을 훌쩍 넘었구요,
이는 2007년 3억 달러에서 13년 만에
13배 이상 성장한 거래요.
세계 순위로 따지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3위로 성장했지만
한국이 인구수가 5,500만 명,
미국이 인구수가 3억5000만명,
중국이 인구수가 14억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는 비교 불가다,
한 마디로 지존이다, 라는 걸 알 수 있겠죠.
(심지어 이런 통계는 2022년 자료래요.)
헥헥...! 힘들다.
커피의 역사는 구한말로
개화기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죠.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대략
1890년 전후로 알려졌으며,
이는 예멘의 양치기가 처음
커피를 발견한 지 1,000년 뒤,
네덜란드 사람이 일본에 커피를 전한 지
180년 뒤의 일이라고 해요.
당시 국왕이었던 고종은 커피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도망가 있을 때(아관파천)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고종과 담소하면서
커피를 권했다고 합니다.
무너져가는 나라의 왕,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야반도주해서
마시는 커피맛이 얼마나
씁쓸했을까요?
이후 고종은 환궁 이후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해서 정헌관이라는 서양식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습니다.
역시 커피는 서양식으로 마셔야지
1902년 고종의 시중을 들던
독일 여인 손탁은 옛 이화여고
본관이 들어서 있던 중구 정동
손탁호텔 안에 최초로 커피 다방을 열었어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다방에
가장 많이 다녔던 사람은 이완용을 중심으로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을.사.오.적이었답니다.
이런!
커피 마시며 나라팔아 먹으니
커피맛이 달달했냐?
그즈음 고종에 대한 독살 시도가 있었는데
주범 김홍륙을 비롯한 3명이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독살 방법은 바로 고종이 최애하던 커피에
독을 타는 거였죠. 커피 좋아했던 고종은
이상한 맛에 바로 뱉어 독살을 면했지만
아들 순종이 한 모금 마시고 혼절했으며
이후 순종은 허약체질이돼서
평생 골골했으며
후사도 낳을 수 없었다는
슬픈 커피 얘기가 전해집니다.
그랬던 왕조 커피가 드디어
공화국 커피로 거듭나 전성기를 구가하나요?
근래들어 다양한 커피가 한국을
점령하는데 그 중 하나가 얼음을 넣어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줄여서 '아아'라고 부르는 그 얼라 맞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얼라 사랑은 정말
세계적인 관심거리죠.
왜 남의 먹거리에 관심이 많을까?
저렇게 얼려먹고 얼마나 사나보자
그런 관심 아닐까요?
특히 겁대가리없는 젊은층의 아이스 사랑은
거의 무조건적이죠. 마치 뜨거운 것에 대한
알레르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예요.
아이스가 아니면 젊은 사람 취급을 안할 정도...
그들이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을
외계인보듯 하는 것은 외국인들이
얼음커피를 마시는 한국인들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과 동격입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3대 트렌드가 있어요.
하나는 아이폰이죠.
아마도 안젊은이들의 삼성폰과 양분되는
젊은이들의 아이폰 사랑은 젊은이만 놓고 보면
세계 탑급이 아닐까 해요.
둘은 외제차죠.
안젊은이들의 현기차와 양분되는
젊은이들의 외제차 사랑은 역시
세계 10대 불가사의중 하나가 아닐까 해요.
집도 없고 당장 굶어죽을지라도
외제차를 타야해요.
그것이 젊은이들의 가오니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셋이 바로 아이스 사랑이에요.
차가운 음식은 암을 유발합니다, 따위의
허황된 말에 굴복할 가오들이 아니지.
지금 당장 눈 앞에서 암에 걸린다면 모르까.
그러기 전엔 젊은이들의 얼라 사랑을
멈출 수 없지. 우린 젊은이니까!
외국에서는 음식 차갑게 먹는 것을 경계합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차가운 음식은 극도로 꺼리죠.
중국에서는 무조건 뜨거운 음식, 뜨거운 차,
뜨거운 물을 먹는데 심지어는 탄산음료도
끓여먹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예요.
그들이 익힌 음식을 선호하는 이면에는
수질 문제가 있어요. 한국과 달리 깨끗한 생수를
구하기 힘든 조건이 배경이죠.
그리고 대륙의 특성상 전염병이 한번 휩쓸면
수백, 수천 만 명이 죽어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치 보건 위생이 늘 중요한 화두였으며,
따라서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강제로
애국위생운동캠페인을 벌이고
물을 끓여먹도록 권장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식문화로 자리잡은 거래요.
그런 뜨거운족들이 한국의 차가운족을
비정상적인 눈으로 보는 것을 불문가지죠.
심지어 아이스를 먹고난 뒤 얼음까지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는 모습에
외국인들은 경악을 하며 거의
몬도가네급 엽기로 봅니다.
왜 그렇게 아이스를 좋아하는 민족이 됐냐고?
일제시대 이후 굴곡진 현대사에 화를 키우고
속으로 꾹꾹 눌러 참고 살아야 했던
역사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차가운 족의 후손인 저도
얼라를 좋아합니다.
저는 얼라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뜨거운 커피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서
향도 같이 날아갑니다. 그래서
직장 사무실 같은데서 커피를 내리면
커피향이 사방으로 퍼지죠. 미치죠. 코가...
아이스 커피는 향이 날이가지 않고 보관이 돼서
먹을 때 혀위에서 녹습니다. 혀가 미칩니다.
향과 고소한 맛이 혀위에 녹기 때문에
훨씬 맛이 좋은 것이며 아이스 좋아하는 사람은 방귀도 향기롭다는 얘기가 있어요.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요.
그만치 아이스커피는
이기적인 커피라고 단언하겠습니다.
제가 아이스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이기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제 혀가 이기적이라는 뜻이니까
오해는 노노!
저는 가끔 서울아산병원에 갈 일이 있어요.
물론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좋은 일로 가는 것은 아니죠.
나이들수록 병원은 가까운 곳에 있어야
좋다고들 하는데, 반면 가까운 곳에 있되
가까이는 하지 말라는 것이 병원이에요.
그래서인지 병원에 갈 때는 마음이 무겁고
반대로 끝나고 나면 발길이 한없이 가볍죠.
특히 끝나고 나서 로비에 있는 커피숍 앞을
지날 때면 콧속을 파고 드는
커피 한 잔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어요.
여러모로 이순간 커피 한 잔은 내가
유혹당해야만 하는 완벽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우선 진료가 끝났으니 홀가분한 마음이죠.
커피가 제격입니다.
또 앞으로 두세 시간 운전하고 내려가야 하죠.
역시 차안에서의 커피 제격입니다.
더구나 그곳 커피가 참 맛있어요.
광고 아니니까
일부러 아산병원 찾아가지는 마세용.
그래서 올 때마다 그곳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데 그날도 생각없이 버릇처럼
얼라를 사 들고 병원문을 나섰죠.
찬바람이 송곳처럼 살을 파고들더군요.
병원문을 나서면 주차장까지
20여분을 걸어가야 하거든요.
아, 콧속으로 파고든 찬 기운에
숨이 얼어붙을 지경이었어요.
그날이 하필 1월 초순 30년인가 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강타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미쳤지.
지나치는 사람들 얼어붙은 표정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오들오들 떨면서 아이스를
들고 가는 꼴이라니.
미쳤지.
미친 커피는 어떻게 됐냐구요?
먹긴 먹었어요. 근데 너무 차가워서
솔직히 몇 번 먹다가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미쳤어.
그리고 다음날 차에 와서 보니
불쌍하게 꽝꽝 얼어서 용기랑 빨대랑 커피가
한 덩어리가 되었더라구요.
미쳤군! 미쳤어!!
첫댓글 꿀이 많을수록 벌도 많이 모이듯
정(情)이 많을수록 사람도 많이 모인다...!
음식(飮食)을 버리는 건 적게 버리는 것이요
돈을 버리는 건 많이 버리는 것이고
인연(因緣)을 버리는 건 모두 버리는 것이다...!
건강과행운이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