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찌(Gucci)
“기분이 구찌 같아(I feel like Gucci).”
밀레니얼 세대는 굿(good)이라는 단어 대신에 구찌라는 브랜드 이름을 쓰는 데 이미 익숙하다. 영어권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도 좋은 기분을 표현할 때 굿을 대신해 구찌란 용어를 쓰곤 한다.
구찌는 2014년까지만 해도 경영난에 시달렸다. 속이 탄 구찌의 모그룹 케링은 구원투수로 마르코 비자리라는 전문 경영인을 최고경영자(CEO)로 급하게 투입했다. 컨설턴트 출신인 그는 구찌 부임 직후 제일 먼저 30세 미만 직원들로 구성된 ‘그림자 위원회’부터 조직했다. ‘역(逆)멘토링 클럽’으로도 불린 이 모임은 케링그룹의 임원회에서 결정한 경영 방침을 젊은 직원들에게 재차 묻는 자리다. 관성에 빠진 구찌를 구하려면 젊은 소비자층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경영진의 목소리가 아닌, 젊은 소비자와 같은 연령층의 언어로 소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구찌 경영진은 이 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을 즉각 반영해 가죽 낭비를 줄이는 공정을 도입하고,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에 맞춰 모든 제품에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디자인 수장으로 유명 외부 디자이너를 비싼 몸값을 주고 모셔오는 대신, 젊은 직원들 의견을 반영해 줄 무명의 내부 인사를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시킨 것도 이 시기다.
♧ 젊은이 취향 맞는 파격 디자인
이후 구찌는 완전히 다른 브랜드로 거듭났다. 고루했던 초록색 캔버스천과 이전 로고 사용을 줄이는 대신 고가품 시장에서 터부시하던 화려하고 현란한 천연색 문양을 제품에 새기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손바닥보다 큰 뱀과 호랑이를 티셔츠 가슴팍에 새기거나, 잠자리와 나비 같은 곤충을 본뜬 패치를 비싼 가죽 제품에 붙였다. 할머니 장롱에서 꺼낸 듯 촌스러우면서도 복고적인 매력을 묘하게 살린 새 제품들은 이탈리아의 전통적 멋스러움을 강조했던 이전 구찌 디자인과 완전히 달랐다. 전통적인 구찌 애호가들은 이런 디자인에 거부감을 가졌지만, 점잖기만 하던 고가품 브랜드를 대신할 신선한 제품을 찾고 있던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는 장난스럽고 화려한 구찌를 ‘기그 시크(괴짜스러운 패션)’라 부르며 열광했다.
2015년 달라진 구찌를 선보이는 첫 패션쇼를 마치자, 전 세계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판매가 급증했다. 매년 뒷걸음치던 구찌 매출은 2015년 한 해에만 12%가 올랐고 여태 매년 두 자리씩 성장하고 있다. 2017년에는 매출 기준으로 에르메스를 제쳤고, 지난해에는 숙적이었던 샤넬마저 추월하며 루이뷔통에 이은 세계 2위의 고가품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고가품 시장 매출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0% 수준이다. 반면 구찌는 소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35세 미만이다. 경쟁 브랜드 대부분이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들이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 스포티파이(Sportify)
‘과거 세대가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한 물건들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밀레니얼 세대는 큰 비용이 드는 구매를 미루거나 완전히 회피한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소유 대신 구독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렇게 분석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밀레니얼 세대는 더 이상 비싼 음반을 사지 않는다. CD 1장 값이면 최소 한 달간 음원 수천만 곡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음반을 살 필요가 없다.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에게 ‘처음으로 산 음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곧바로 저마다 추억이 담긴 음반을 말한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에게 ‘처음 스트리밍으로 들었던 노래는 뭐였냐’고 묻는다면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밀레니얼 세대 가운데 95% 이상이 그날 기분이나 상황에 맞춰 인터넷에서 음악을 바로 찾아 듣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가 서랍장을 뒤적여서 오늘 들을 노래를 카세트 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에 꽂았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선곡을 거의 전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의 추천에 맡긴다.
2008년 선보인 스포티파이는 탁월한 추천 기능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글로벌 음원 시장의 리더다. 국내에서는 아직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아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널리 알려진 애플뮤직조차 스포티파이의 아성을 넘보지 못할 정도로 해외에서 입지가 확고하다. 구글 앱스토어에는 ‘스포티파이가 추천해 준 주간 재생 목록은 헤어진 옛 애인이 만들어 준 것 같다’ ‘이 세상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소름 끼친다’는 밀레니얼 세대의 찬사가 이어진다.
♧ 심장 박동수까지 고려한 맞춤 서비스
스포티파이가 처음부터 맞춤형 추천 서비스로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여느 업체처럼 경쟁사보다 많은 곡을 선점하는 데 매달렸다. 덜 알려진 곡 저작권까지 사들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지만, 소비자는 인기 가요에만 몰렸고 비인기곡을 일부러 찾아 듣는 소비자는 예상보다 드물었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 돈을 투자한 경쟁사들이 스스로 무너지기도 했다.
위기라고 느낀 스포티파이는 2011년 사용자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플레이리스트 알고리즘을 짜기 시작했다. 이 알고리즘은 단순히 아티스트에 대한 사용자 선호도나 해당 트랙 재생 시간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곡별 리듬, 박자, 장르 등 정교한 음악 빅데이터는 물론 소비자가 머무는 지역의 날씨나 블로그에 남긴 이모지(Emoji), 웨어러블 기기에 기록한 심장 박동 수가 추천 알고리즘에 반영된다. 데이터양을 불려 초기에 반짝 눈길을 끌기보다 서비스 질을 높여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