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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
1
우리가 마이애미 비치에서 묵었던 곳은 ‘마이애미 비치 인터내셔날 트래블러스 호스텔’이라는 곳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이 유스 호스텔의 별채에 해당하는 한 아파트에 들었다. 침실을 두 개 갖추고 있는 이 아파트는 1박에 200달러였다. 유스 호스텔 본관의 방값도 그보다 별로 싸지 않았지만 빈 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본관의 투숙객은 거의 다 학생들이었다. 그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온, 그야말로 선남선녀들...... 그들은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밤 유스 호스텔 측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열렸다. 주최측의 청년은 나보고도 파티에 참석하라고 하면서 명단에 이름을 올리라고 권하였지만 나는 사양하였다. “이보게, 자네는 내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독일인 청년 하나와 학생들을 인솔하고 왔다는 아르헨티나의 아줌마 한 사람밖에 없다. 이 곳에서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듯한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분명히 재미있는 일이...... 그러나 나는, 잠도 다른 곳에서 자는 늙은 아웃사이더였다. 이런 처지가 되어서는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기 어렵다. 헤밍웨이라도, 이런 위치에서는 이야기 거리를 캐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스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카운터를 보고 있었던 사람은 착하고 성실한 청년 제프였다. 나중에 제프는, 여기에는 자기 말고도 두 명의 J가 더 있으며 그 세 명은 “쓰리 J”라고 불린다고 알려주었다. 또 다른 두 명의 J 중 하나의 이름은 지금 기억나지 않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기억난다. 기억나는 이름은 조나단이다. 제프는 이 사람을 ‘빅 보스’라고 불렀는데, 우리가 떠날 때쯤 되어서는 이 사람이 이 호스텔의 주인이라고 넌즈시 귀뜸해 주었다. 내가 짐짓 놀라는 척하자, 제프는 내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면서 그것은 ‘특급 비밀’이라고 말하였다. “아, 그랬구나. 저 사람, 지나치게 친절하다고 생각했더니......” 그 곳 직원 중 지금 내가 그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는 세 명이 더 있다. 얼굴에 주름이 많은 프랑스인 아저씨, 식당에서 일하는, 다들 ‘마마’라고 부르는 흑인 할머니, 그리고 영어를 거의 못하는 히스패닉계의 통통한 여자 한 사람이 그들이다.
이 곳에 뭔가 진짜 이야기 거리가 숨어있지 않을까? 뭔가 비밀이 있지 않을까? 체크인하기 위하여 유스 호스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 곳 특유의 분위기에 당황하여 비질비질 땀을 흘려야만 하였다. 사이키델릭 조명과 시끄러운 낯 선 음악을 배경으로 한 채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이 상냥하게 웃으면서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바짝 대고 내 이름과 국적 등을 캐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바로 '쓰리 J'였다. 제프와 ‘빅 보스’ 조나단 등...... 나는 조나단은 게이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물론 근거 없는 의심이었다. 그 다음 날 조나단은 예쁜 아기를 대리고 나와, 자랑하듯 자기 아들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브라질 사람이라고 한다. 조나단 이외에 내 시선을 끈 사람은 흑인 할머니 마마다. 저녁 식사가 다 끝난 시간이면 마마는 호스텔 로비 아무 데나 앉아 눈의 초점을 허공에 둔 채 그냥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어느 날, 비좁은 계단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마마를 보고 인사를 하였는데, 큰 목소리로 여러 번 말을 걸어도 알아차리지 못 해 인사 나누기를 포기하였다. “이 할머니는 집이 따로 없나?”
아, 결국 호스텔 직원들도 아웃 사이더인가? 그리고 이 곳에서는 모두가 모두에게 아웃 사이더인가? 여행객들은 떠나가게 마련이다. 여행객들은 항상 체크인하고 또 항상 체크아웃한다. 어떤 사람은 낯이 익을 만하면 가버리고, 어떤 사람은 낯이 익기도 전에 가버린다. 여행객들과 여행객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파티에 동참하여 같이 마시고 같이 놀고 같이 춤추고 연락처까지 주고받지만 그냥 그뿐이다.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예요. 아쉬움 같은 것은 없어요. 하긴, 어딘들 그렇지 않나요?” 마이애미에도 계절이 있는 듯, 12월 중순의 사우스 비치 바다는 파도가 높고 물이 찼으며 해변에 도열한 수백 개의 파라솔은, 찾는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머쓱하게 보였다.
2
헤밍웨이라면 위와 같은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까? 헤밍웨이 저택이 있는 키웨스트는 마이애미에서 4시간 정도 더 내려가야 나온다. 헤밍웨이 저택 입구에서 입장권을 파는 노인에게 내가 농담을 건넸다. “영감님은 헤밍웨이와 무슨 관계라도 있으신가요?” 그는 웃으면서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했고, 나는 “저도 헤밍웨이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예요.”라고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집주인과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것도 주인 없는 시간에, 주인 없이 텅 비어있는 집을 방문하였는가? 전 날 우리는 1인당 50달러씩 내고 ‘마이애미 보트 투어’라는 것을 하였는데, 보트는 리즈 테일러, 실버스타 스텔론 등의 별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우리는 보트 승객이 되어 유명한 연예인들의 삶을 동경하면서 훔쳐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헤밍웨이 저택의 방문객이 되어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면서 훔쳐보게 된 것이다. 예술가의 삶이 연예인의 삶과 같지 않은 것처럼, 예술가의 집을 구경하는 것은 연예인의 집을 구경하는 것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헤밍웨이 저택의 입구에 서서 가족들에게, 이제부터 이 집을 둘러보면서 헤밍웨이가 어째서 위대한 작가인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다고 선언하였다.
어째서 헤밍웨이는 위대한 작가인가, 혹은 어째서 <노인과 바다>는 위대한 작품인가 하는 질문은, 사실은, 작가나 작품을 위대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 보아도 아무런 답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철계단을 따라 헤밍웨이의 집필실에서 내려오던 중 질문을 약간 축소, 수정하였다. 헤밍웨이는 이른바 ‘하드-보일드’의 간결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 스타일이 그와 그의 작품을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스타일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으니, 이 가정은 그렇게까지 그릇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의 내 질문은, 스타일이라는 것이 작가나 작품을 위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대답을 정답으로 허용하되,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러온다. 스타일, 즉 문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곧 그 사람이라고 불리는가?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위대하면 전체가 위대해지는가?
나는 또 열심히 생각하였다. 스타일은 형식 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용에 해당하는 것, 예컨대 주제 -- ‘불굴의 의지’(<노인과 바다>), ‘반전 사상’(<무기여 안녕>) 등등 -- 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타일은 표현되는 것이라기보다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표현 대상이라기보다 표현 방식과 관련이 있고, 메시지 쪽이 아니라 미디어 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음, 좋다. 그런데 이러한 스타일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말이지? 그래서 미디어(스타일)가 바로 메시지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스타일이 사람, 혹은 사람됨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지? 이런 말들은 어디선가 들어 본 말들이다. 그렇기는 한데...... 위의 말들은,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다. 스타일이라는 것은 ‘하드-보일드’니, ‘간결체’니, ‘만연체’니 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사람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어째서 중요하다는 말인가? 중요한 것은 ‘불굴의 의지’나 ‘반전 사상’ 등 내용 쪽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 집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헤밍웨이의 사진이 많이 걸려있었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헤밍웨이의 모습은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늙었을 적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거의 성자(聖者)의 모습으로, 소설 창작 이외에는 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런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젊었을 적 사진을 보니 조금 다르더라. 나는 요즘 인기 있는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진을 보고 무서움과 적의를 동시에 느낀 적이 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싸움을 아주 잘 하였을 것이다. 그 눈빛에는 도전과 도발, 야심과 야망 등이 쓰여 있었다. 젊었을 적의 헤밍웨이의 눈빛이 바로 그러하였다. “덤벼. 전부 다 덤비란 말이야.” 그 눈빛을 확인하고 다시 보니, 성자처럼 수염을 기른 늙었을 적의 모습에도 젊었을 적의 그 눈빛이 희미하게 남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웬 고양이가 그렇게 많은지......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꼼짝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닌가, 혹은 박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모두 산 고양이들이다. 헤밍웨이가 길렀던 고양이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고양이들은 발가락이 여섯 개라고 한다. 헤밍웨이 저택 바로 옆에는 ‘발가락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6-toed cats)라는 상호의 간이음식점 겸 기념품 상점이 있다. 우리는 그 집에 들어가 보슬비가 내리는 키웨스트의 뒷 골목 정취를 만끽하면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나만 그런가? 발가락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의 실물은 그저 그렇다. 확인해 보면 징그러울까? 징그러운 느낌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은 다르다. 발가락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라는 말, 그 간이음식점 여기저기에 쓰인 발가락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라는 글자 -- 이것은 그저 그렇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지 않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말은 우리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우며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설사 그것이 문학소녀적인 유치한 것일지라도.
3
솔직히 말해서 여행은 그냥 쉬고 노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책에 다 있다. 여행에 대단한 것이 있는 양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젊은이들을 속여먹고자 하는 수작이다. 헤밍웨이 저택을 다녀온지 열흘이 되었고 집에 돌아온지도 벌써 일 주일이 넘었다. 그 동안 나는 책을 뒤져 스타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보았다. 내가 뒤진 책은 인터넷이다. 이런 경우에는 네이버보다 구글이 훨씬 나은데, 나는 검색창에 ‘스타일’이라고 쳐넣기도 하고, ‘문체’라고 쳐넣기도 했으며, ‘스타일, 미학’이라고 쳐넣기도 했다.
그 어원은 라틴어 stilus인데, stilus는 필기도구 혹은 철필(鐵筆)을 의미한다고 한다. 불어도 영어처럼 style이라는 철자를 사용하지만, 불어에는 stylo(만년필)라는 단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스타일은 ‘양식’(樣式)으로도 번역된다고 한다. 예컨대 ‘로코코 스타일’(‘로코코 양식’) 등. ‘양식’은 영어로 ‘manner’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매너리즘(mannerism)은 이 ‘매너’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매너리즘은 물론 매너(양식, 스타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요,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용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매너를 강조하는 것이요, 아주 정확하게 말하면, (초심자의 습작에서 흔히 발견되듯이) 매너가 내용과 겉돌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매너, 진정한 스타일은 내용과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건,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건, 하나의 작품이라는 온전한 전체가 있을 뿐인데, 우리가 그것을 억지로 내용과 스타일로 분리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과 바다>의 스타일을 ‘하드-보일드’니 ‘간결체’니 하는 용어로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 스타일은 그런 이름의 규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것은, <노인과 바다>의 내용이나 주제를 가리켜 ‘불굴의 의지’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작품이 “이 작품은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등의 명제로 환원된다면 이 세상에 헤밍웨이가 왜 필요하겠는가?) 스타일이라는 것은 그와 같은 규칙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엇, 내용으로부터 분리불가능한 무엇으로, 바로 그것을 가리켜, 소설가 그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스타일은 모든 소설, 모든 줄글에 다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간결체’니 ‘만연체’니 하는 테크닉의 규칙이 스타일이라면 그것은 모든 소설, 모든 줄글에 다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스타일은 그렇지 않다. 누구다 다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 주장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상하게 보이지만, ‘스타일’이 ‘품위’나 ‘품격’으로 번역되기도 하더라.) 이런 요점은 소설 쓰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일, 작곡하는 일 등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킬링 미 소프트리 위드 히스 쏭’이라는 팝송에 보면 “나는 그 소년이 노래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나는 그 소년이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것이 일 주일, 아니 열흘 동안 내가 조사해 보고 알아낸 본 것의 전부다. 너무 빈약하여 한심하게 보이지만, 그게 전부라는 말은 참말이다. 그나마 불분명한 것이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너무 길어졌으므로 그만 이야기하겠다. 그래도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은, 지난 번에 양키 이야기를 하면서 슬쩍 언급한 적이 있는 ‘취미’(taste)가 ‘스타일’과 거의 동의어라는 점이다. 위에서, 누구나 다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말하였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양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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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발가락이 여섯 개 달린 고양이를 찾으려다 결국 못 찾았습니다.^_^
어디에서 찾아 보았다는 말이신지? oso
글 제목도 그렇고 해서 또 2. 아랫 부분에 설명은 있는데~~~ 혹시 실물 사진이라도 있나 눈으로 확인해보려고 했지요 ^_^
낚시 제목인 거같다. 나도 그래서 들어왔더니....
낚시 제목인 것 맞음. ㅋㅋ 그 까페의 상호도 낚시 상호임. 뭔가 재미있어 보이고 근사해 보여서 들어갔거든. (그런데, 나는 헤밍웨이 집에서 고양이 실물을 보면서 발가락을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은 전혀 못 느꼈음.)
ㅎㅎ.. 드디어 영태가.. 다문화 경험을 하는 듯.. 나도 세계 여행을 할 때 회사 비지니스 상 일급호텔에 들어야 되지 않으면... 유스호스텔 격이나.. 카사 산호세등.. 카사/여관 급에 들어서..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과 아침/저녁을 먹으며 제자랑 떠들기 좋아하는데... 영태 한국 돌아가기전에 한 번 어디 여행이나 해 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