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논어(論語) 제8편 태백(泰伯) 7장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공자의 제자 증자(曾參)가 말했다.
선비는 내키지 아니하여도 마음이 넓고 굳세야 한다.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아득하고 멀기(遼遠)” 때문이다
선비는 모름지기 마음이 넓고 깊고 의지가 굳세어야 한다.
그 맡은 바 임무는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써 자신의 삶의 목적을 삼으니 어찌 무겁지 않으며
그 책임은 죽은 다음에야 끝나니 어찌 멀지 않겠는가!
논어(論語)의 이 장에서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명문(名文)
“임중도원(任重道遠)”이 나왔다.
위의 사자성어는
책임의식이 강한 지사적(志士的) 인물에 대해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지사적(志士的)-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위대한 사람을 뜻함.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라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대전시에 살 때 부여와 공주를 자주 갔다.
백제의 고적지이기 때문이다.
신라보다 강한 백제였지만 나라가 패망하였기 때문에 신라 경주보다
역사 유적지가 적다고 생각한다.
무릉왕릉도 필자가 대전 살 때인 1970년이가 71년 그 무렵 복원된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복원현장인 왕릉 안을 답사한 적이 있다.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의 치열한 모습이 겹쳐지나간다
충남 부여 규암면 부산(浮山)기슭에 “대재각(大哉閣)”비각이 있다.
위에 있는 사진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淸)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충신 이경여(李敬輿)가 청(淸)나라를 처들어가자(北伐)는
상소문(上疏文)을 올렸다
이에 대한 효종(孝宗)의 아래의 응답이 있다.
至痛在心 日暮途遠 이라 !
【마음에는 병자호란을 설욕(雪辱)하지 못한 깊은 아픔이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구나!】
라는 논어(論語)의 구절을 빌려와 바위에 새겨 놓았다.
우리는 효종(孝宗)이라하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북벌(北伐)”
이라는 단어다.
그러나 마음뿐이고 국력이 약했다.
인조(仁祖)와 장남인 소현세자(昭顯世子)와의 갈등도 국력을 약하게
만든 한 원인이다.
권력 다툼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인조(仁祖)를 선조(宣祖)보다 더 못난 왕으로 생각한다.
위의 논어의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은 효종(孝宗)의 깊은 한탄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역사적 한탄이다.
“화냥년”이란 말을 지금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서방질을 잘하는 여자를 욕하는 말이다.
이 욕은 우리민족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다
원래는 “청나라에 잡혀 갔던 부녀자가 조선으로 돌아온다”는
“환향녀(還鄕女)”가 “화냥년”이라는 욕으로 변했다.
내나라 아내와 딸들을 중국 놈에 몸을 더럽힌 것은 당시 정치인들의
무능한 굴종(屈從)탓이다.
“화냥년”은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들과 못난 조선 남자들이 만든 욕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간까지 중국이 대한민국에 엄포를 놓고 있다.
대한민국은 중국에 속해 있는 동이(東夷동쪽의 오랑캐)라고--
어떤 정신 빠진 지식인은 “동이(東夷)”를 설명하기를
“동쪽의 활잘 쏘는 민족”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조선 여인들을 잡아간 오만이 지금까지 중국인들의 머리에 있다.
이런 중국 놈들에게 굽실거리는 못난 한국의 정치역적들도 있다.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라 !
이 나이까지 먹어오면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얼마나 도리를 하였는지
아버지로서 자식 앞에 어떤 모습인지 논어(論語)의 이 장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