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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3: 1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고전 13: 2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 ( 1 )
제 13 장 : 사 랑
1. 은사는 사랑으로 ( 13 : 1-3 )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절은 은사의 목적을 설명하는 의미에서, 사랑이 없으면 그것들이 존재의 의의(意義)를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은사(恩賜)를 오용(誤用)하며 사랑이 없이 그것들 자체를 중대시하며 자랑하였다.
고전 13: 1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여기 본문에 있는 방언이나 예언 같은 것은 그때 초대 교회에 있었던 초자연적인 은사였다(Grosheide, De Openbaring God In Het Nieuwe Testament, p.186).
그들이 그 은사를 사랑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14장 참조.)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그것을 경계한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에 관해 말하는 중에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는 먼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참된 사랑을 뜻한다. 그것은 창조자와 섭리자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대한 지식과 믿음에서 나온 사랑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순종하는 사랑을 가리킨다.
사도 시대의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아 방언, 즉 외국어를 말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도는 비록 성도가 방언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방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2]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이 말씀엔, 사랑이 없이 그런 은사를 취급하는 자는 심령과 인격을 결여(缺如)한 도구와 같다는 의미도 있다.
인격적(人格的)인 것은, 사랑을 예상할 수 없는 쓸쓸한 세계에도 사랑을 건설한다. 인격은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기계적 법칙에 예종(隸從)하지 않고 미움을 사랑으로 대하는 좋은 역리적 행동(逆理的行動)도 취한다.
현대는 기계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생활이 점점 기계화되는 것은 유감이다. 인간은 기계를 초월하여서만 살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랑은 식어지고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에 심령상 뜨거움이 없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위에 말한 대로 기계에 반대되는 요소 곧, 인격이라는 것이 자연적 인격(自然的人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거듭난 진정한 사랑을 가진 인격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랑을 소유한 인격은,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
아무 의미 없는 소리라는 뜻도 있으니,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맹목적(盲目的)인 것이란 뜻이다.
고전 13: 2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바울 사도는 비록 성도가 예언하고 모든 비밀을 아는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예언과 지혜와 지식의 은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1]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1) 예언
예언이란 누구나가 어떤 사건에 대하여 미리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에게 전파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선지들의 예언적 기반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그들의 신관에 있으며 그 신관에 수반되는 신앙에서 그 예언의 역사는 성장해 왔다. 하나님의 사람 중에 선지자라는 명칭을 갖지 않고서도 예언자적 역할을 한 자들이 있다. (아브라함과 족장들, 모세) 사무엘에 이르러 예언의 사역은 한층 더 명확해졌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위대한 예언 사역이 통일 국가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경을 기록한 위대한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가 왕정 시대였다. 성경의 에언은 인간이 자아도취에서 발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으로 선포하게 되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감은 예언자의 개성이나 인격이 자유롭게 반영되도록 조절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언과 하나님의 계시를 분리하고 구약의 예언은 단순히 인간들의 발언인데 선지들이 정의감에서 자기들이 살던 시대상을 책망하고 해석하는 의미에서 발언한 것이지 어떤 미래나 장래에 대한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언은 그 성취성을 제외한다면 죽은 설화가 되고 말 것이다. 예언의 미래성은 그 성취에서 그 정확성이 입증된다. 성경에는 선지자의 선포나 시편 기자의 노래 그리고 예수님의 직접적 말씀, 또는 다니엘이나 계시록 등의 묵시문학 등을 통하여 많은 예언이 나온다. 때로는 수 년, 때로는 수 천년을 두고 미리 예언이 행해지고 훗날 그것이 필히 성취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만물과 역사를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역사란 저 혼자 우연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대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사실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성경 예언의 본질과 그것이 이방 세속 문화의 점(占)이나 신탁(神託)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요약 정리해 보기로 한다.
(2) 기원과 본질 : 절대자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의지의 주권적 선포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에게 영감을 통해 계시의 말씀을 주사 일반 백성들에게 선포케 하신 말씀으로서 미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포이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장차 미래에 시행하실 일들을 당신의 종들의 입을 통해 미리 선포하신 것이 바로 성경의 예언이다.
반면 이방 종교의 점술가들의 예언이나 신탁은 전적으로 사탄으로부터 기인한다. 사탄이 인간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찾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미래 계획의 일부를 미리 알아내어 자신의 종들인 점술가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나마 원수 사탄과의 접촉없이 미래를 알아내려는 기만내지는 무지한 시도는 제외하고라도 순수한 의미의 사탄에 의한 미래 예언이라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 기원상 이는 성경 예언과 같이 미래에 대한 절대자 하나님의 고유 의지의 주권적 선포는 더더욱이 아니며, 또한 미래의 사건 전체에 대한 완전한 조망도 못 된다.
이는 다만 신통력의 허황된 모습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제시하여 그들의 영혼을 여호와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시도로서 어차피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된 자들에게나 통할 하나님의 오묘한 묵허(默許)하에 이루어지는 사탄의 악행이다.
(3) 목적 :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한 경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 섭리에 속하는 미래의 계획에 대하여 당신의 종들로 하여금 예언케하신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예비케 하여 결국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다. 즉 예언을 통하여 미리 당신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강한 경고와 책망의 예언을 주시고, 때로는 미래에 있을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예언을 주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을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또 하나님이 예언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심으로써 당신의 신실성을 보여 주신다.
그러나 이방의 점술가들에 의해 주어지는 예언, 또는 신탁의 목적은 전적으로 미래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이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화를 면하고 복을 얻으려는 이기적 기복 신앙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탄은 인간들에게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믿게 하고, 그를 통하여 인간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
(4) 내용 : 오묘한 복합성
대부분의 성경 예언은 어느 한 시대에 일어날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 시대의 역사적 사건 및 세상 종말과도 동시에 오묘하게 관계되기도 하는 복합성을 지닌다. 예를 들면 이사야 2: 1-22절은 바벨론 포로 회복에 관한 예언인 동시에 세상 끝 날의 축복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또한 마 24장의 예수님의 예언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예언인 동시에 세상 끝 날의 심판적 상황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이런 성경 예언의 복합성은 결국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 및 심판이라는 동일한 패턴에 의해 세상 끝 날까지 계속 진행되다가 종결될 것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5) 비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신적인 계시로만 설명될 수 있는 어떤 것.
* 단 2: 18-19, 28-30 – 1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19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29 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30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
* 단 4: 9 –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
* 막 4: 11 –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 롬 11: 25 –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① 하나님의 비밀을 보여 주시고 시행하신다.
* 암 3: 7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이 세상에 생존하는 모든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에게 비밀은 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도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역사를 보면, 아담 때로부터 하나님 마음에 통하는 사람에게 비밀을 알려 주시고, 그 종으로 하여금 비밀을 공개하게 하시고 이루셨다.
과거에 있었던 비밀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가지를 든다면, 홍수 심판의 비밀과 소돔성 비밀의 심판이다. 당시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이 인간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없이 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 그런데 그중에 노아라는 의인이 있었으니,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의 심판을 알리시고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
노아는 비밀을 알려주신 그 때로부터 가족과 함께 120년 동안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 여덟 식구 외에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몰두하였으니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 시대 사람들도 마 24: 37-39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으면서 주님이 오시는 그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노아에게 홍수의 비밀을 알려 주셔서 가족 모두 충실하게 방주를 만들었고, 지구의 생명체가 다 물로 심판받을 때 노아의 가정은 생명을 보존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이 소돔성에 불비를 내려 심판하실 때에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그 비밀을 알려 주셨다. 아브라함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하지 않으시겠다는 응답을 받았지만, 소돔성에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엔 심판을 받고 말았다.
우리 시대도 이 지구를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계 9: 13-16에 그 년 월 일 시로 말씀하고 있다. 이 시는 유브라데 전쟁(중동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주의 재림이 있는 시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교회가 세워져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아직 하나님의 비밀은 모르고 있는 것이 교회의 가장 큰 난제다.
② 천국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
* 마 13: 10-12 –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엡 3: 3-4 –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사도들에게만 알도록 허락하셨다. 유대인들은 율법사로부터 성경을 나면서부터 배워서 성경을 잘 알았다. 그런데 마 5: 1이하에 산상보훈을 시작으로 주옥같은 말씀을 쏟아내셨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 보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실 때는 귀신의 왕 바알세블이라 하였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믿느냐?’ 하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배운 적도 없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 천국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사시면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실 때 예수님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 것을 줄여서 천국의 비밀이라고 한다. 그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비유로, 비사로 말씀하셨다.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율법사나 유대인에게는 천국의 비밀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못 알아들었으나, 우리는 사도들과 같이 천국의 비밀 아는 것을 허락받아 성경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시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비밀은 사도 요한에게 알려주셨다.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으로써 예수님의 총 생애를 줄여서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한다. 천국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을 묶어서 말하면 성경대로 된 일의 말씀이라고 하며, 그것을 믿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
이 시대의 많은 교회가 성령이 오셔서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은사와 능력이 와서 변화가 왔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영적으로 정체되어 있다. 이런 영적인 정체가 오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은 심령이 공허하고, 컬컬하고, 곤고·곤비하게 되는데 그것을 심령의 난제라고 한다. 영적인 정체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③ 하나님의 비밀 (계 10: 7)
하나님의 비밀은 사도 요한이 깨달았다. 그럼 하나님의 비밀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자.
ⓐ 천년왕국 -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앞으로 환난이 온다. 재림이 있다. 재림 후에 심판이 있다. 심판 후에 천년왕국이 온다. 천년왕국 후에 영원 세계가 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편적으로 될 일의 말씀이라고 한다. 성경은 과거의 얘기. 된 일의 말씀과 미래의 얘기 될 일의 말씀이 합하여져 신구약 성경 66권을 이루고 있다.
많은 교회가 천국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된 일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안 믿던 사람이 들으면 믿어지게 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오랫동안 믿어 온 사람들에게는 된 일의 말씀을 2천 년 동안 영의 양식으로 주셔서 먹을 만큼 충분히 먹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된 일의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안 되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공허가 오는 것이다.
공허가 오는 이유는 이 시대 자신의 영혼이 요구하는 양식은 될 일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양식을 얻기 위해 찾아다니다가 비진리에 빠지기도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먹을 만큼 먹으면 밥을 먹기 위해 밥상에 달려들다가 아무거나 먹고 탈이 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된 일의 말씀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가감 없이 기록해 놓은 말씀이고, 될 일의 말씀은 미래에 있게 될 말씀을 가감 없이 기록해 놓은 말씀으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밀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동안 숨겨놓고 봉함해 놓으셨다가,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그것을 공개하신다. 홍수 심판은 노아에게 알려 주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시는데 누구에게 알려 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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