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증언
김대건 신부님 순교는 너무 안타까워 허망할 정도다. 25세 꽃다운 나이도 그렇지만, 조선 땅 산골짝 여러 교우촌 척박한 생활 환경 속에서 신앙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교우들이 사제가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을 텐데 말이다. 10년 동안 해외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사제가 됐는데, 정작 조선에서 사목은 1년도 채 못했다. 신부님 뒤를 이어 최양업 신부님이 과로사하실 정도였다. 할 일이 그렇게 많았는데 너무 일찍 순교하신 거 같다.
조선에 사제 영입이 절실했지만, 그렇게까지 무모해 보일 정도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신부님 순교 3년 후에 동료 최양업 신부님이 입국했다. 그리고 그 이후 20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 한국 사제 숫자는 7천 명이 넘는다. 신부님의 사제 영입 계획은 실패했지만, 신부님의 꿈은 이루어졌다. 아니, 하느님이 그 꿈을 이루어주셨다.
시간이 흘러 신부님 이야기가 역사가 되었으니 이렇게 말하는 거다. 무모해 보이는 사제 영입 계획, 사제 영입보다는 교우촌 방문과 사목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20대 열정과 첫 방인 사제의 사명감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무모한 계획이든 합리적인 계획이든, 중요한 건 김대건 신부님이 천주님, 임금 위에 계신 분, 사람이라면 마땅히 공경하고 따라야 할 하느님을 온 세상에 증언하셨다는 사실이다. 최양업 신부님이 성인이라는 걸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단지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올리는 데는 시간과 절차가 필요할 뿐이다. 순교는 종교를 위한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수도자든 성직자든 성소가 급격히 줄었다. 세상은 더 급속하게 세속화 되어간다. 신앙의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막차를 탄 거 같은 느낌말이다. 그런데 아니다. 숫자가 작아진다고 위기라니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1명에서 7천 명이 넘는데에 200년도 걸리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이 말한 거처럼 우리 하느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마태 3,9) 교회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주인이시다. 그 모진 박해와 교회 고위 성직자들의 부패 속에서도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작품이라면 벌써 없어졌거나, 살아남기 위해 그 형태를 바꾸고 어쩌면 그 본질도 바뀌었을 거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하다. 실수와 잘못도 여전하다. 그래도 남아 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태 28,20) 나는 그 ‘우리’에 속하기를 원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진리를 따랐던 사람들, 순교로 그리고 헌신과 희생으로 신앙을 증언했던 사람들, 이 땅에서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예수님, 인류의 역사가 완성되기 전까지 사제는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사제는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주님이 머무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누추하고 불편해도 언제나 제 안에 계셔 주시고, 혹시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주님 맘에 들게 고치시거나 부수고 아예 다시 만들어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름에 희망을 걸고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저를 지켜주시고 어머니가 원하시는 데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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