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림(保林), 返照, ~에 비추어 헤아리다. 미루어 알다/보다.
(paccavekkhaṇa, 회고, review, 반성, 再檢討, 點檢, 透視<투시>)
paccavekkhati:[pati + ava + ikkh + a]
[ yathāvimuttaṃ cittaṃ na paccavekkhati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하지 않는다.]
{Ud6:3} [ tena kho pana samayena bhagavā
attano aneke pāpake akusale dhamme pahīne paccavekkhamāno nisinno hoti,
aneke ca kusale dhamme bhāvanāpāripūriṃ gate.
그 무렵 세존께서는 자신에게서 제거된 여러 가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과
닦아서 성취된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을 반조하면서 앉아 계셨다.
“ahu pubbe tadā nāhu, nāhu pubbe tadā ahu.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ī”ti.
“전에 있었던 것이 그 [도의 순간에는] 없었고
전에 없었던 것이 그때는 있었다.
전에 없었던 것은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177)
'태어남은 다했다.178) 청정범행179)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습니다.”
177)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다(vimuttasmiṃ vimuttamīti ñāṇaṃ ahosi).'는 것은 반조의 지혜(paccavekkhaṇa-ñāṇa)를 말한다. 세존께서 이 지혜로 반조하실 때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라는 등을 꿰뚫어 아셨다는 말이다.” (MA.i.127)
반조의 지혜에 대해서는 본서「역마차 교대 경」 (M24) §2의 주해를 참조하고 자세한 것은 『청정도론』 XXII.19 이하를 참조할 것.
178) '태어남은 다했다(khīṇā jāti).'라고 하셨다. 그러면 세존의 어떤 태어남이 다했으며, 어떻게 그것을 꿰뚫어 아셨는가? 이것은 과거의 태어남이 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태어남이 다한 것도 아니다. 미래에 정진이 없기 때문이다. 금생의 태어남이 다한 것도 아니다.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를 닦지 않았을 때는 한 가지 무더기[一蘊]나 네 가지 무더기[四蘊]나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의 존재 가운데서 한 가지 무더기와 네 가지 무더기와 다섯 가지 무더기로 분류되는 태어남이 일어나지만, 도를 닦아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 상태(anuppāda-dhammatā)를 얻음으로써 태어남이 다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도를 닦아서 버려진 오염원들을 반조하시고 오염원들이 없을 때 비록 업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미래에 재생연결을 만들지 않는다고 아시면서 꿰뚫어 아셨다.”(MA.i.127)
여기서 한 가지 무더기의 존재는 몸의 생명기능만 유지되는 무상유정천의 존재이고 네 가지 무더기의 존재는 물질이 없는 무색계의 존재이고 다섯 가지 무더기의 존재는 그 외의 존재들이다.(『청정도론』 XVII.255를 참조할 것.)]
8. pabbajitābhiṇhasuttaṃ (AN 10.48) 경우 경(A10:48)137) Dhamma-sutta
137) 6차결집본의 경제목은 '출가자가 끊임없이'(Pabbajitābhiṇha-sutta)이다.
♦ 48. “dasayime, bhikkhave, dhammā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ā . katame dasa?
1.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열 가지 경우를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무엇이 열인가?”
‘vevaṇṇiyamhi ajjhupagato’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2. “'나는 저열한 상태138)에 이르렀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138) “'저열한 상태(vevaṇṇiya)'란 두 종류가 있다. 몸(sarīra)의 저열한 상태와 생활필수품(parikkhāra)의 저열한 상태다. 여기서 머리털과 수염이 없는 것이 몸의 저열한 상태라고 알아야 한다. 전에는 여러 색깔로 된 감촉이 좋은 옷을 입고, 여러 맛난 음식을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서 먹고, 좋은 침상이나 의자에 눕고 앉고, 제호(醍醐)나 정제된 버터로 약을 만들었지만, 출가한 후로는 떨어진 가사를 수하고, 철이나 흙으로 빚은 그릇에 섞은 밥을 먹어야 하고, 나무 아래의 거처 등에서 문자 풀의 덮개 위에서 누워야 하고, 가죽 매트 위에서 앉아야 하고, 썩은 오줌 등으로 약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같이 여기서 생활필수품의 저열한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반조할 때 분노와 자만심이 제거된다.” (AA.v.38~39)
‘parapaṭibaddhā me jīvikā’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내 생명은 남에게 달려있다.'139)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139) “'나의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다.(parapaṭibaddhā me jīvikā)'는 것은 우리는 다른 사람에 의존해있다(parāyattā), 즉 4종 필수품에 의존해 있는 것이 우리의 삶(catu-paccaya-jīvikā)이라는 말이다.”(AA.v.39)
‘añño me ākappo karaṇīyo’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내 행동은 [재가자들과] 달라야 한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kacci nu kho me attā sīlato na upavadat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내 마음은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kacci nu kho maṃ anuvicca viññū sabrahmacārī sīlato na upavadant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이 나를 자세히 살핀 다음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sabbehi me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모든 것은 변해버리고 없어져버린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kammassakomhi kammadāyādo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ṭisaraṇo,
yaṃ kammaṃ karissāmi kalyāṇaṃ vā pāpakaṃ vā tassa dāyādo bhavissām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좋은 업이건 나쁜 업이건, 업을 지으면 나는 그것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kathaṃbhūtassa me rattindivā vītivattant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내가 무엇이 되어있건 낮과 밤은 지나가버린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kacci nu kho ahaṃ suññāgāre abhiramām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빈 집에 거주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가, 아닌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atthi nu kho me uttari manussadhammo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adhigato,
yenāhaṃ pacchime kāle sabrahmacārīhi puṭṭho na maṅku bhavissām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했는가?
그래서 나는 죽을 때140) 동료 수행자들이 물으면 의의기소침해지지 않을 것인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140) “'죽을 때(pacchime kāle)'란 임종하는 침상에 누워있을 때(maraṇa-mañce nipannakāle)라는 뜻이다.”(AA.v.40)
ime kho, bhikkhave, dasa dhammā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ā”ti.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이러한 열 가지 경우를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aṭṭhamaṃ.
[ “seyyathāpi, mahārāja,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ṃ vā ‘sakaṇikan’ti jāneyya, akaṇikaṃ vā ‘akaṇikan’ti jāneyya;
대왕이여, 예를 들면 여인이나 남자가 젊으면 치장하기를 좋아하여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얼굴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는 것은 없다고 아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cetopari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saṅkhitt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心]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에 대하여 꿰뚫어 압니다.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 <중간생략> …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압니다.]
[ seyyathāpi, bhikkhave, aññova aññaṃ paccavekkheyya,
ṭhito vā nisinnaṃ paccavekkheyya,
nisinno vā nipannaṃ paccavekkheyya.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살펴보는 것과 같다.
그는 서서 앉아 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하고,
앉아서 누워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한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ariyassa, bhikkhave, pañcaṅgikassa sammāsamādhissa ayaṃ pañcamā bhāvanā.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반조의 표상 <*아래 sati āyatane 주목>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삼매 수행 가운데 다섯 번째 수행이다.
evaṃ bhāvite kho, bhikkhave, bhikkhu ariye pañcaṅgike sammāsamādhimhi
evaṃ bahulīkate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 seyyathāpi, bhikkhave,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k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asseva rajassa vā aṅgaṇassa vā pahānāya vāyamati.
no 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enev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
‘lābhā vata me, parisuddhaṃ vata me’ti.
비구들이여,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기미나 반점을 보게 되면 그 기미나 반점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고,
기미나 반점을 찾지 못하면 '이것은 내게 이득이다. 나는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지고 그의 의도한 바가 성취되는 것과 같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 bahukārā hoti kusalesu dhammesu —
‘abhijjhālu nu kho bahulaṃ viharāmi, anabhijjhālu nu kho bahulaṃ viharāmi,
byāpannacit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abyāpannacit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thinamiddhapariyuṭṭhi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vigatathinamiddho nu kho bahulaṃ viharāmi,
uddha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anuddha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vicikiccho nu kho bahulaṃ viharāmi, tiṇṇavicikiccho nu kho bahulaṃ viharāmi,
kodhano nu kho bahulaṃ viharāmi, akkodhano nu kho bahulaṃ viharāmi,
saṃkiliṭṭhacit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asaṃkiliṭṭhacit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sāraddhakāyo nu kho bahulaṃ viharāmi, asāraddhakāyo nu kho bahulaṃ viharāmi,
kusī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āraddhavīriyo nu kho bahulaṃ viharāmi,
asamāhito nu kho bahulaṃ viharāmi, samāhito nu kho bahulaṃ viharāmī’ti.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의 반조는 유익한 법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짓는다.
'나는 대체로 간탐하면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간탐하지 않고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악의에 찬 마음으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악의 없는 마음으로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해태와 혼침에 압도되어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해태와 혼침을 여의고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들떠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들뜨지 않고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의심하면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의심을 건너서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분노하면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분노하지 않고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오염된 마음으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몸이 불편한 채로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몸에 불편함이 없이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게으름에 빠져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열심히 정진하며 머무는가?
나는 대체로 삼매에 들지 않고 머무는가, 아니면 대체로 삼매에 들어서 머무는가?'라고.]
[ “seyyathāpi, mahārāja,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tatrāssa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대왕이여, 예를 들면 깨끗하고 최상품인 유리 보석이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다 갖추었으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다 합시다.
그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서 '이 유리 보석은 깨끗하고 최상품이며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다 갖추었는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구나.'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습니다.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ñāṇadassa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evaṃ pajānāti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압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yathāṭhitaṃ yathāpaṇihitaṃ dhātus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 seyyathāpi, bhikkhave,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tatrāssa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anāvil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진귀하고 빛나고 양질이고 팔각형이고 잘 다듬어졌고
투명하고 티가 없고 모든 측면에서 빼어난 보석이 있는데,
그것이 파란색이나 노란색이나 빨간색이나 흰색이나 회색 실에 꿰어 있다고 하자.
눈 있는 사람은 그것을 손에다 놓고
'이것은 진귀하고 빛나고 양질이고 팔각형이고 잘 다듬어졌고 투명하고
티가 없고 모든 측면에서 빼어난 보석이다.
그리고 이것은 파란색이나 노란색이나 빨간색이나 흰색이나 회색 실에 꿰어 있다.'라고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vameva kho, bhikkhave,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na bodhisattamātu kocideva ābādho uppajjati, sukhinī bodhisattamātā hoti akilantakāyā,
bodhisattañca bodhisattamātā tirokucchigataṃ passati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ayamettha dhammatā.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갈 때 보살의 어머니는 어떤 병도 없다.
행복하고 몸도 편안하며,
보살의 어머니는 자궁 안에 있는 보살의 사지와 감각기관들을 훤히 볼 수 있다.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A2:2:5} [ yasmiṃ, bhikkhave, adhikaraṇe āpanno ca bhikkhu codako ca bhikkhu
na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tasmetaṃ, bhikkhave, adhikaraṇe pāṭikaṅkhaṃ dīghattāya kharattāya vāḷattāya saṃvattissati,
bhikkhū ca na phāsuṃ viharissantīti .
yasmiñca kho, bhikkhave, adhikaraṇe āpanno ca bhikkhu codako ca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tasmetaṃ, bhikkhave, adhikaraṇe pāṭikaṅkhaṃ na dīghattāya kharattāya vāḷattāya saṃvattissati,
bhikkhū ca phāsuṃ viharissantīti.
비구들이여, 어떤 대중공사[諍事]에서건
계를 범한[犯成] 비구와 훈계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반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래 끌게 되고 험악하게 되고 투쟁적이 되어 비구들이 편안히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분쟁에서건 계를 범한 비구와 훈계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반조한다면
그것은 오래 끌지 않고 험악하지 않고 투쟁적이지 않아서 비구들이 편안히 지낼 것이다.
“kathañca, bhikkhave, āpann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idha, bhikkhave, āpanno bhikkhu iti paṭisañcikkhati —
‘ahaṃ kho akusalaṃ āpanno kañcideva desaṃ kāyena.
maṃ so bhikkhu addasa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no ce ahaṃ akusalaṃ āpajjeyy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na maṃ so bhikkhu passeyya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yasmā ca kho, ahaṃ akusalaṃ āpanno kiñcideva desaṃ kāyena,
tasmā maṃ so bhikkhu addasa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disvā ca pana maṃ so bhikkhu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anattamano ahosi.
anattamano samāno anattamanavacanaṃ maṃ so bhikkhu avaca.
anattamanavacanāhaṃ tena bhikkhunā vutto samāno anattamano ahosiṃ.
anattamano samāno paresaṃ ārocesiṃ.
iti mameva tattha accayo accagamā suṅkadāyakaṃva bhaṇḍasminti.
evaṃ kho, bhikkhave, āpann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비구들이여, 그럼 어떻게 계를 범한 비구가 자신을 잘 반조하는가?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이렇게 자신을 잘 반조한다.
'나에게 해로운 생각이 일어나서 어떤 점에 대해서 몸으로 잘못을 범했다.
그런데 저 비구가 내가 해로운 생각이 생겨서 어떤 점에 대해서 몸으로 잘못을 범하는 것을 보았다.
만일 내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저 비구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저 비구가 본 것이다.
내가 잘못을 범한 것을 보고 저 비구는 마음으로 언짢아했다.
저 비구는 마음이 언짢아서 나에게 언짢은 말을 하였다.
저 비구가 언짢은 말을 하자 나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그래서 언짢아하면서 나는 남들에게 그 사실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마치 세금을 내어야 하는 사람이 죄를 범한 것처럼 내가 잘못을 범했다.'라고.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신을 잘 반조한다.]
[ “dveme, bhikkhave, dhammā. katame dve?
paṭisaṅkhānabalañca bhāvanābalañca. ime kho, bhikkhave, dve dhammā”.
8. “ … 숙고(paṭisaṅkhāna)의 힘317)과 수행(bhāvana)의 힘이다. … ”
317) “여기서 '숙고의 힘(paṭisaṅkhāna bala)'이란 반조(paccavekkhaṇa)의 힘이다.” (AA.ii.161)]
[ “pañcimāni, bhikkhave, ṭhānān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āni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katamāni pañca?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경우를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jarādhammomhi, jaraṃ anatīto’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byādhidhammomhi, byādhiṃ anatīto’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maraṇadhammomhi, maraṇaṃ anatīto’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sabbehi me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kammassakomhi, kammadāyādo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ṭisaraṇo.
yaṃ kammaṃ karissāmi — kalyāṇaṃ vā pāpakaṃ vā —
tassa dāyādo bhavissāmī’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나는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나는 병들기 마련이고 병듦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나는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여자든 남자는 재가자는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헤어지기 마련이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는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나의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내가 선업을 짓건 악업을 짓건 나는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atthi, bhikkhave, sattānaṃ yobbane yobbanamado, yena madena mattā kāyena duccaritaṃ caranti,
vācāya duccaritaṃ caranti, manasā duccaritaṃ caranti.
tassa taṃ ṭhānaṃ abhiṇhaṃ paccavekkhato
yo yobbane yobbanamado so sabbaso vā pahīyati tanu vā pana hoti.
idaṃ kho, bhikkhave, atthavasaṃ paṭicca ‘jarādhammomhi, jaraṃ anatīto’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비구들이여, 중생들이 젊었을 때에는 젊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다.
그들은 그 자부심에 도취하여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가 이것을 끊임없이 반조할 때,
젊었을 때 가진 젊음에 대한 자부심은 모두 제거되거나 혹은 줄어든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목적을 반연하여 '나는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는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sa kho so, bhikkhave,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na kho ahaññeveko jarādhammo jaraṃ anatīto,
atha kho yāvatā sattānaṃ āgati gati cuti upapatti sabbe sattā jarādhammā jaraṃ anatītā’ti.
tassa taṃ ṭhānaṃ abhiṇhaṃ paccavekkhato maggo sañjāyati.
so taṃ maggaṃ āsevati bhāveti bahulīkaroti.
tassa taṃ maggaṃ āsevato bhāvayato bahulīkaroto saṃyojanāni sabbaso pahīyanti
anusayā byantīhonti.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 혼자만 늙는 법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고 가고 죽고 태어나는 모든 중생들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가 이것을 끊임없이 반조할 때 도가 생겨난다.
그는 그 도를 향상시키고 닦고 많이 [공부] 짓는다.
그가 그 도를 향상시키고 닦고 많이[공부]지을 때 [열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고
[일곱 가지] 잠재성향들이 끝난다.]
[ seyyathāpi, brāhmaṇa, udapatto saṃsaṭṭho lākhāya vā haliddiyā vā nīliyā vā mañjiṭṭhāya vā.
tattha cakkhumā puriso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yathābhūtaṃ nappajāneyya na passeyya.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붉은 랙이나 노란 심황이나 남색의 쪽이나
심홍색의 꼭두서니가 섞여 있으면 눈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 자신의 얼굴 영상을 비춰보더라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evamevaṃ kho, brāhmaṇa, yasmiṃ samaye kāmarāg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kāmarāgaparetena, uppannassa ca kāmarāg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tt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na passati, paratthampi ... pe ...
ubhay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na passati,
dīgharattaṃ sajjhāyakatāpi mantā nappaṭibhanti, pageva asajjhāyakatā.
그와 같이 마음이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욕망에 압도되어 머물고
또한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그때 그는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그때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그때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그때 오래 암송한 만뜨라들도 분명해지지 않나니
암송하지 않은 것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puna caparaṃ, brāhmaṇa,
yasmiṃ samaye na vicikicchā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vicikicchāparetena,
uppannāya ca vicikicchāy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att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pajānāti passati,
par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pajānāti passati,
ubhay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pajānāti passati,
dīgharattaṃ asajjhāyakatāpi mantā paṭibhanti, pageva sajjhāyakatā.
seyyathāpi, brāhmaṇa, udapatto accho vippasanno anāvilo āloke nikkhitto.
tattha cakkhumā puriso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yathābhūtaṃ pajāneyya passeyya.
evamevaṃ kho, brāhmaṇa,
yasmiṃ samaye na vicikicchā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na vicikicchāparetena,
uppannāya ca vicikicchāy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pajānāti,
att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pajānāti passati, paratthampi ... pe ...
ubhayatthampi tasmiṃ samaye yathābhūtaṃ pajānāti passati,
dīgharattaṃ asajjhāyakatāpi mantā paṭibhanti, pageva sajjhāyakatā.
다시 바라문이여, 마음이 의심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의심에 압도되지도 않고서 머물고
또한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때 그는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보고,
그때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보고,
그때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보고,
그때 오래 암송하지 않은 만뜨라들도 분명해지나니, 암송한 것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이 흐리지 않고 혼탁하지 않고 진흙투성이가 아니고
어둠 속에 놓여 있지 않으면 눈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 자신의 얼굴 영상을 비춰보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마음이 의심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의심에 압도되지도 않고서 머물고
또한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때 그는 자기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보고,
그때 남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보고,
그때 둘 모두의 이익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보고,
그때 오래 암송하지 않은 만뜨라들도 분명해지나니, 암송한 것들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 tena, bhikkhave, bhikkhunā iti paṭisañcikkhitabbaṃ —
‘atthi nu kho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ṃ kālaṃ karontassa antarāyāyā’”ti.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숙고해야 한다.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sace,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ṃ jānāti —
‘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ṃ kālaṃ karontassa antarāyāyā’t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ṃyeva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adhimatto chando ca vāyāmo ca ussāho ca ussoḷhī ca appaṭivānī ca
sati ca sampajaññañca karaṇīyaṃ.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있다.'라고 알게 되면
그는 그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attavipattiṃ paccavekkhitā hoti.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ravipattiṃ paccavekkhitā hoti.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attasampattiṃ paccavekkhitā hoti.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rasampattiṃ paccavekkhitā hoti.
aṭṭhahi, bhikkhave, asaddhammehi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devadatto
āpāyiko nerayiko kappaṭṭho atekiccho”.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번영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번영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데와닷따는 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법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얼이 빠져서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劫)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 codakena, bhikkhave, bhikkhunā paraṃ codetukāmena evaṃ paccavekkhitabbaṃ —
‘parisuddhakāyasamācāro nu khomhi, parisuddhenamhi kāyasamācārena samannāgato
acchiddena appaṭimaṃsena.
saṃvijjati nu kho me eso dhammo udāhu no’ti?
no ce, bhikkhave, bhikkhu parisuddhakāyasamācāro hoti
parisuddhena kāyasamācārena samannāgato acchiddena appaṭimaṃsena,
tassa bhavanti vattāro — ‘iṅgha tāva āyasmā kāyikaṃ sikkhassū’ti, itissa bhavanti vattāro.
비구들이여, 책망하는 비구가 남을 책망하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반조해야 한다.
'나는 몸의 행실이 청정한가, 아닌가? 나는 훼손되지 않고 흠 없는 청정한 몸의 행실을 구족했는가,
아닌가? 이러한 법이 내게 있는가, 없는가?'라고,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몸의 행실이 청정하지 못하고,
훼손되지 않고 흠 없는 청정한 몸의 행실을 구족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말하기를 '존자부터 먼저 몸에 대해 공부지으시오.'라고 한다.
참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 puna caparaṃ, bhant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idaṃ, bhante, anussatiṭṭhānaṃ evaṃ bhāvitaṃ evaṃ bahulīkataṃ kāmarāgappahānāya saṃvattati.
다시 세존이시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 · 살갗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염통 · 간 · 근막 · 지라 · 허파 · 창자 · 장간막 · 위 · 똥 ·
쓸개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굳기름 · 눈물 · [피부의] 기름기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라고.
세존이시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 지으면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게 됩니다.]
[ dassanasamāpattidesanā (DN 28) 견(見)의 증득에 대한 법문
“aparaṃ pana, bhante, etadānuttariyaṃ,
yathā bhagavā dhammaṃ deseti dassanasamāpattīsu.
catasso imā, bhante, dassanasamāpattiyo.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견(見)의 증득에 대해서 법문을 해 주신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견의 증득이 있습니다.
idha, bhant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yathāsamāhite citte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nikā lasikā muttan’ti.
ayaṃ paṭhamā dassanasamāpatti.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빨 · 살갖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염통 · 간 · 근막 · 지라 · 허파 · 큰창자 · 작은창자 · 위 · 똥 ·
담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굳기름 · 눈물 · [피부의] 기름기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라고 이것이 첫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idh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 pe ...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 pe ... lasikā muttan’ti.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갖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빨 · 살갖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염통 · 간 · 근막 · 지라 · 허파 ·큰창자 · 작은창자 · 똥 ·
담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굳기름 · 눈물 · [피부의] 기름기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라고,
atikkamma ca purisassa chavimaṃsalohitaṃ aṭṭhiṃ paccavekkhati.
ayaṃ dutiyā dassanasamāpatti.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idh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 pe ...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 pe ... lasikā muttan’ti.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라고,
atikkamma ca purisassa chavimaṃsalohitaṃ aṭṭhiṃ paccavekkhati.
purisassa ca viññāṇasotaṃ pajānāti,
ubhayato abbocchinnaṃ idha loke patiṭṭhitañca paraloke patiṭṭhitañca.
ayaṃ tatiyā dassanasamāpatti.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알음알이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puna caparaṃ, bhante, idh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 pe ...
tathārūpaṃ cetosamādhiṃ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 pe ... lasikā muttan’ti.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관절활액 · … 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atikkamma ca purisassa chavimaṃsalohitaṃ aṭṭhiṃ paccavekkhati.
purisassa ca viññāṇasotaṃ pajānāti,
ubhayato abbocchinnaṃ idha loke appatiṭṭhitañca paraloke appatiṭṭhitañca.
ayaṃ catutthā dassanasamāpatti.
etadānuttariyaṃ, bhante, dassanasamāpattīsu.
그리고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184)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알음알이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네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견의 증득입니다.
세존이시여, 견의 증득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itthatta
khīṇā jāti '태어남은 다했다.'
nāparaṃ itthattāya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
itthatta:(itthaṃ + tta:) the present state; this life.
itthaṃ : thus
[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ca panāyasmā mālukyaputto arahataṃ ahosīti.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말룽까뿟따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tamhā kāyā cutā āgāmino honti āgantāro itthattaṃ?
ko pana, bhante, hetu ko paccayo,
yena midhekacce sattā tamhā kāyā cutā anāgāmino honti anāgantāro itthattan”ti?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어떤 중생들은 그 몸을 버리고 죽어서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366) 되돌아오는 자가 됩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어떤 중생들은 그 몸을 버리고 죽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불환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는 자가 됩니까?”
366) “이러한 상태란 욕계의 오온을 가진 중생을 뜻한다.”(AA.iii.148)
“idha, sāriputta,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appahīnāni honti,
so diṭṭheva dhamm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tadassādeti, taṃ nikāme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tattha ṭhito tadadhimutto tabbahulavihārī aparihīno
kālaṃ kurumān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ānaṃ devānaṃ sahabyataṃ upapajjati.
so tato cuto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들을 버리지 못하지만
지금여기에서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하여 머문다.
그는 이 선[禪]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에 만족을 느낀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 비상비비상처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죽어서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는 자가 된다.”
“idha pana, sāriputta, ekaccassa puggalass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honti,
so diṭṭheva dhamme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tadassādeti, taṃ nikāmeti, tena ca vittiṃ āpajjati;
tattha ṭhito tadadhimutto tabbahulavihārī aparihīno
kālaṃ kurumān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ānaṃ devānaṃ sahabyataṃ upapajjati.
so tato cut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사리뿟따여, 여기 어떤 사람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들을 버리고
지금여기에서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하여 머문다.
그는 이 선[禪]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에 만족을 느낀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 비상비비상처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죽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불환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는 자가 된다.]
[ “katamo cāvuso, ajjhattasaṃyojano puggalo?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입니까?
idhāvuso, bhikkhu sīlavā hoti,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so tato cuto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ayaṃ vuccati, āvuso, ajjhattasaṃyojano puggalo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옵니다.
그는 이러한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안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katamo cāvuso, bahiddhāsaṃyojano puggalo?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입니까?
idhāvuso, bhikkhu sīlavā hoti, pātimokkhasaṃvarasaṃvuto viharati ācāragocarasampanno,
aṇumattesu vajjesu bhayadassāvī,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so aññataraṃ santaṃ cetovimuttiṃ upasampajja viharati.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so tato cut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ayaṃ vuccatāvuso, bahiddhāsaṃyojano puggal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心解脫]가운데 하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불환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puna caparaṃ, āvuso, bhikkhu sīlavā hoti ... pe ...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
so kām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so bhav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so taṇhākkhayāya paṭipanno hoti.
so lobhakkhayāya paṭipanno hoti.
so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so tato cut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도반들이여, 다시 어떤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을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존재를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갈애를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탐욕을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ayaṃ vuccatāvuso, bahiddhāsaṃyojano puggalo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n”ti.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라 불리는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인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 더 이상 이와 (그 이전과) 같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