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면, 내차에 짐을 싣고 나 가고 싶은데로 작정없이 훌쩍 떠나는 것을 제일로 치는데 이번 여행은 좀 색다릅니다.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도 그렇고 무박2일이라는 일정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버거울 것 같아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습니다.
낯선사람과 어울리는 것, 더구나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이 익숙치 않아 불편할 것 같았는데 그 불편을 상쇄할만큼 여행지가 매력적이었습니다.
때로 무식이 용기를 내게 하지요.
처음엔 거문도가 거제도인 줄 알았고, 가기로 결정을 하고서도 거문도가 여수에서 배로 잠깐이면 가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지난 여름 돌산도를 갔을때도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건넜고, 남해에서 사천갈 때도 다리를 건너니 육지이고 섬과 육지는 대부분 다리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다만 변화 많은 날씨에 짐 챙기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차를 갖고 간다면 트렁크에 가득 실어도 누가 뭐랄 사람 없으니 하룻밤 지내는 여행에도 항상 짐이 두세개씩 되는 습성이라 뭘 넣고, 무얼 놓고 가야하는지 고심끝에 먹을 것은 무조건 참는다, 옷은 두툼한 것 안에 얇은 것을 입고 버티기로 한다. 화장 고치지 않기 위해 잠을 안잔다. (안자면 화장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죠) 대충 그런 계획을 세우고 손수건 하나와 칫솔치약, 지갑도 두고 비상금 몇푼만 넣은 채 정말 홀가분하게 출발했습니다.
여행을 떠날때는 눈썹도 놓고 가라했는데 하루쯤 최소한으로 지내보자는 각오를 했지요.
무조건 견뎌보자고 수없이 작정했는데, 그건 머릿속 계산일 뿐이었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올수록 다리는 저려오고 건너편에 수면 안대를 하고 자는 사람이 어찌나 부럽던지, 준비성 없는 자신을 탓할 밖에요.
맥주라도 두어 캔 준비했더라면 술기운에라도 좀 자두련만 눈만 뻑뻑한 채 화장실만 들락거렸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기차는 밤을 달리고 간간히 나타나는 정겨운 역 이름 세기도 가물거려지고
내려오는 눈거풀을 어쩌지 못해 한잠 들 무렵 기차는 여수역에 도착했고, 고양이 세수도 못한 채였습니다.
여수역에 내려 버스로 여객선터미널로 이동
거문도행 오가고호 쾌속정을 탔습니다.
아침 8시도 안된 시간에 배에서 내렸어요.
저는 거문도가 여수에서 5분거리인줄 알고 별 생각없이 여행에 참가 했는데
밤새 기차로 달리고 뱃길로 두 시간,
기차에서 거의 고박 새운 셈이라 오히려 배에서는 곯아떨어져,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뱃멀미를 피해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침을 여는 섬마을은 난생처음 많은 인원의 손님맞이를 하느라 부산하고, 갈매기도 덩달아 이리저리 날며 우릴 맞아주는 듯,,,
거문도 동도항입니다.

선창가에는 서도부녀회에서 나와 아침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선창에 길게 깔아놓은 하얀 스티로플을 보고 저는 무슨 제의를 위한 길인줄 알았어요.
거기 앉아 남도 냄새 물씬 풍기는 해초로 끓인 멀국-쑥국인줄 알았습니다-과 숭어회무침 달래무침으로 빈 속을 달랬습니다.

생대나무 끝에 매달린 오색깃발이 나부낍니다. 어디 초등학교 운동회에 온 기분으로 온 섬이 들뜬 분위기입니다.

남도무형문화재로 등록된 거문도 뱃놀이 시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에서 쓸 밧줄을 맬 때 하는 술비노래가 흥겹게 이어집니다.
동트는 신새벽에 찾아온 손님을 위해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는 섬사람의 표정은 순박한 우리 어르신들의 모습입니다.

밧줄을 매달고 드디어 출항, 만선의 꿈을 싣고 배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갑니다.
뱃전에 선 아낙들은 남자들이 모진 바람과 파도에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무릎이 닳도록 빌고 또 빌겠지요. 섬마을에 유난히 비손의 상징물이 많은 것도 섬생활의 특징때문이겠지요.
어제 그리 비가 오더니 하늘은 아직 잔뜩 흐렸습니다.
일기예보에 그친다고는 했지만, 지나는 구름에도 비가 들어있지나 않을까 집떠난 나그네의 심사는
그리 편하지는 않습니다.
슈퍼에서 우산을 사서 쌕에 넣었습니다. 펴보지도 못하고 거문도 관광기념품이 되긴 했지만요.
그래도 무언가를 대비했다는 안도감에 몇번을 버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달랬습니다.
삐죽 나온 우산 꼭지를 볼때마다 준비 없이 나선 여행길의 교훈이라 생각하며 지고 다녔습니다.

백도 유람선을 타기위해 다시 선착장으로 가던 중 봉고차 머리에 안내등을 단 택시를 보았습니다.
거문도는 외지인이 차를 갖고 들어올 수 없다는 군요. 섬 사람 대부분은 걸어다니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한다는데 늘어나는 관광객때문에 이런 택시가 등장한 모양입니다. 저도 거문도 등대까지 가는 길에 일행 몰래 이용하기는 했습니다.
무네미 고개까지 두사람이 6천원을 지불했는데(가는 차를 얻어탔거든요.) 돌아오는 길은 같은 거리인데도 만원을 받더라구요, 그야말로 엿장수맘대로가 아니라 택시기사 맘대로 입니다.

섬에서는 사람보다 배가 먼저 잠을 깹니다. 잔잔한 호수같아서 너른집 앞마당같은 항구에 배들이 출항준비를 하는지 이미 한바퀴 돌아 들어 왔는지 닻을 내리고 떠 있습니다.
도시인들은 사람들에 섞여살면서도 늘 혼자 외로운 섬 같다는 고독감을 토로하는데, 장작 섬 안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대로의 생활이 있었습니다.
농협이 있고 슈퍼가 있고 길다방도 있고 우체국도 있고, 길거리에 커피 자판기도 있네요. 이런 곳에서 사흘쯤 지내본다면 나 사는 곳이 못견디게 그리워지게 될까요.
하루저녁 제대로 씻지 못했을 뿐인데 생각은 온통 더운물 나오는 샤워기와 클린징 크림으로 얼굴을 말끔하게 지우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내 작은 집 생각 뿐입니다.
집 떠나봐야 집 그리운 줄 알고, 나라 떠나봐야 애국자 된다더니, 갑자기 집에 벗어두고 온 헐렁한 바지입고 맨발로 걸어다니는 일상이 참 소중하단 생각이 듭니다.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지 못하고 굳어진 습성. 말로는 늘 부족하고 절실한 것이 있어야 글을 쓴다고 하면서 일상의 사소한 불편을 못견뎌합니다. 그것도 행여 남이 눈치챌세라 내색하지도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대는 소심함이라니,
여럿이 섞여서도 마음으로부터 즐거우려면 부딪치고 적응하는 훈련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샅길 더듬어 들어가 문열린 화장실을 몰래 사용하면서 또 한번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다리 헛딛으면 빠질 것 같은 푸세식 변소- 그런 생활 벗어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향수에 젖기 보다 몸에 밸 냄새걱정부터 앞서는지,,,원.
첫댓글 무박의 후유증에 종일 뒹굴뒹굴,, 아직도 제 컨디션을 찾지못했습니다. 뱃전에 부서지는 물살이 몸에서 요동을 치네요. 후기 올리지 않으면 다음답사때 놓고 간다는 대장님 말씀때문에 제카페에 올린 것 스크랩했습니다. 다음 꼭지는 제 카페갤러리방에 있습니다. 함께 해서 즐거웠고 다시금 모놀의 정열을 보았습니다. 모놀님들이 점점 좋아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모놀님들이 좋아지는 이유중에 땡님의 열정적 봉사정신이 제1번이랍니다. 날센돌이 땡님이 점점 더 좋아지니 우짤꼬,,, 푸하하하,,, 그 상쾌한 꼬리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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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다 올려 놓고 보면 어디로 날아가고 없어요. 다시 올립니다. 사진과 글롤 먼저 뵌 주이님 현장에선 못알아봤는데 담엔 꼭 알은체 할게요.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예쁜 할머니 칸나님...거문도에서도 손녀가 아른 거렸을까요? 미래의 수필집에서 거문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수고하셨습니다.
에이~ 대장님도... 예쁜 아가씨가 예쁜 아줌마되고 예쁜 아줌마가 예쁜 할머니 되는 거 아니겠수? 그래도 우리 손주는 외할머니보다 제 친할머니가 좋다네요. 넘 예뻐서 그런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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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님 가까이 뵈서 즐거웠습니다. 한동네 사신다니 더욱 반갑네요. 산행번개때 한번 따라가고 싶어요.
진민님과 함께 다정스럽게 여행하시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잔잔한 미소를 띤 모습만큼이나 후기도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상행길에 저희 건너편에 앉았던 분이죠? 화기애애한 그자리 분위기 부러웠습니다. 함께해서 즐거웠구요.
엥???? 칸나님이 할머니라고라???? 우아...이렇게 예쁜 할머니 있음 나와 보라고 그래!! ㅋㅋ
소문 못들으셨수? 엄마가 예쁘니 딸도 예뻐 일찌감치 결혼해서 예쁜 아줌마를 예쁜 할머니 만들어 놓은 전설,ㅎㅎ,, 그래서 우리딸은 지 아들한테 엄마소리보다 할머니소리 먼저 가르쳤다우,, 혹 같이 나가면 늦둥이 봤다고 오해할까봐,, 믿거나 말거나,,
칸나님, 선상 2층에서 처음 뵈었네요...반가웠습니다.
카페 드나들면서 "요"씨 가문이 어떤 분일까 궁금했어요. 멋진 요시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참, 대장님 글쓰기 강좌 나가신다고 했지요? 이론서가 혹 필요하시면 제가 몇권 챙겨드리고 싶은데,, 연락주셈,,
저는 칸나님이 할머니라기에 뒤로 자빠질 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자랑도 아니지만 굳이 숨길일도 아니어서 실토한 것이 실수였나봐요. 손주 있으니 할머니 맞지만 저, 유채꽃 향기에 취하고 동백꽃 한송이에 넋잃는 무늬만 할머니입니다.
부지런히 후기 올리셨네요...지난번 함양답사때인가? 뵌것 같은데....함께해서 반가웠고 , '비껴가는 리듬' 수필집 조금씩 잘 읽고 있습니다...^^*
다녀오면 뭔가 빨리 정리해놓지 않으면 후다닥 사라져버려서 사진 올리면서 제 카페에 설명 올려놓은 거 한 꼭지 올렸습니다. 닉도 모습도 사랑스런 님과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먼발치에서도 멋이 묻어나오는 분입니다.
어느 한 군데는 빈틈이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나는 법인데... 도무지 차돌맹이 같고... 알토란 같기만 하시니 '접근금지' 표지판을 달고 사시는 분 같아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ㅎㅎ 농담이구요. 뵙게 되어 영광이었구요. 자주 오셔서 제 편견으로 인한 오류를 바로 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속이 워낙 텅 비어서 눈치챌까봐 입을 앙다물고 있어 그렇게 보였나봅니다. 알고보면 저 봄바람보다 부드러운 여자예요. 카페에서 늘 혼자 눈인사만 하다 얘기나누게 되어 얼마나 가슴설렜는데요. 시를 읊는 남자! 캬, 분위기 너무 좋았습니다. 담엔 표지판 확실하게 붙이고 뵐게요."접근 환영!!"
생가보단 재미있는 칸나님!! 우하하하하~~~@@
역시 글 쓰시는 분이라 무언가
라도 
실히 다릅니다. 사진과 함께 글 올리시니 여행작가로 전업하셔야 할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