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대전고등학교 제37회 동창회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白壽산우회(산을 사랑하는 친구 모임) 백수산우회 서울대공원 둘례길걷기
주재원 추천 0 조회 175 20.06.12 19:09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0.06.13 02:35

    첫댓글 주선장은 바다에만 살아서 육지 일은 모르는 군요. 바다는 넓고 깊고 푸르고 청정하며 무든 것을 품으며 모든 것을 침으며 모든 것을 힘께 하면서 살아가지만 육지는 그 반대랍니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이기에 역사도 승사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씨(명숙)는 무죄, 독립군에 금고문 열어주었다는 김성수는 유죄 입니다. 그 당시 배웟고 있는 사람이라면 친일적 글 한줄도 쓰지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장점과 단점은 다 있습니다. 이때 단점은 덮어주고 장점은 고무격려 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원수 갚데는 죽은 사람 묘도 파서 처형하는 독한 민족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그 독한 민족의 후예입니다.

  • 20.06.13 08:34

  • 20.06.13 08:36

    이 날 폰에 담은 김성수 전부통령 동상과 친일파로 판정되어 철거 예정이라는 안내판입니다.

  • 20.06.12 21:05

    최옹(총무 호칭보다 최옹이라 부르는 게 내겐 더 좋네요), 생일은 4월에 지나갔지만 재수 삼수해서 쏜 오늘 점심 식사를 맛있게 먹었어요. 감사하고, 지금처럼 그대로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 20.06.13 02:46

    애인은 지기 생일은 물론 자기와 처음 만난 날만 잊어도 삐지는데 조강지친구는 설사 그 생일을 잊어버렸다해도 이해 하고 참는 것을 알아요. 그러기에 최 조강지 친구는 내가 당신 생일 을 정확히 알기에 오늘은 가짜 생일임을 알고 안 온 것을 오히려 현명한 조강지친구라고 칭찬할 거에요. 어쨋던 당신이 가짜 생일임을 모르는 친구들과 생일잔치 잘 했다니 당신이 돈은 썻어도 나는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그러기에 당신도 늙어가면서 평펑 써요. 금년도 당신이 돈 있다고 3수했어도 그때마다 칭찬했어요. 나 같은 조강치 친구 없어요.

  • 20.06.13 08:39

    김성수 전부통령 동상 철거에 관한 애국 충정까지 표현한 주재원 선장님의 등산기 잘 봤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 금요일에 있을 송구헌 옹님의 점심 잔치 예고가 빠졌네요.

  • 20.06.13 09:04

    최기한 조강지 진구와 내가 만난 것은 6.25 포성이 멋지않은 1952년 봄였지. 친구는 산내면서에 짚신 신고 걷가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출퇴근하였고 나는 청양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대중에 유학와서 고향생각 부모생각에 하염없이 눈물 흘릴때 입엿답니다. 우기 기거한 처소는 판자로 칸막이하고 화판을 책상으로 차디찬 마루방에서 동고동락했지요. 우리는 나이가 많고 키가 커서 맨 뒤에 자리했는데 우리의 첫날밤은 옆방 수업소리로 달콤한 속삭임도 없었다오.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좋았고 그 후 고운정 미운정으로 70연연을 해로 했으니 내킨김에 백년 해로합시다.

  • 20.06.13 10:07

    나이가 많고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은 사람은 최기한이고 윤총장은 기한이보다 나이가 어리고 키작은 축에 들었다는 고백이 나왔군요. 조강지 친구에 해당되는 사람이 윤총장이니 남편에 해당하는 최기한을 하늘같이 모셔야 마땅한 도리인데 남편되는 사람 생일 잔치에 불참한 죄는 칠거지악에 속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 20.06.13 16:43

    그때 우리는 뒤에 앉았기에 앞 뒤 방 강의를 다 들었어요. 그러기에 우리는 어딴때는 예습을, 어떤때는 복습을 다 할수 있었고 강의 중 웃기는 대목은 옆방에서도 같은 시간대에 웃엇기에 그 웃는 내용까지도 다 알앗어요. 조강지 동생이 철들어 형없이도 생일백기 했다니 대견해요. 그간 형 따라 고생했기에 후일 경찰 생활에서도 우수한 민완 형사가 된 것에요. 동생과 함께 잔치한 그 친구들 언제 형님집에 한번 놀러오라 해요. 형이 동생과 잘 놀아주어 고맙다 인사한다 해요. 그 중 몃 사람은 내 친구 동생돌고 있어요.

  • 20.06.13 21:29

    어제 금요신행모임 노인9명참가 과천대공원 둘레길 내내 웃음으로 떠들기만 정겹기만햇던 산행기 주선장옹께서 올리셧군요. 한회장. 윤총장. 송옹. 님들께서 연이어 올린답글 거듭거듭 읽어봅니다.

  • 20.06.13 22:16

    그런즉 한 회장 송 옹 윤영연 세 사람은 항상 있을 친구들인데 그 중에서 제1은 조강지 형이니라.

  • 20.06.13 22:40

    조강지 동생 만난 그때 그 시절 매달 발간되는 "학원"잡지 나오기를 손 꼽아 기다렸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며, 부산 가는 십이 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 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우리는 전진한다. 등 그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들이 쏟아저 나올때 마다 우리는 그 것이 우리의 소야곡이 되어 동생도 형 따라 합창했던 그 추억 생도 기억하는가.

  • 20.06.14 07:20

    다음 백수회 금요산행모임(19/6금) 정규직승급안 중요 행사 점심잔치를 송구헌옹이 베푸는 한회장.발표 이는 공덕지역 윤총장.송땡벌 연이은 불참 사례없도록 함이니 윤총장 송재덕 대동 그날 필참 정규직승급에 불이익 없기 이에통고합니다.

  • 20.06.14 04:30

    송땡벌은 알아봤더니 "죽을 병은 아니고 신경외과에 한 번 알아보라!"라는 의사 말을 들었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아버지뻘 되는 송구헌 옹이 점심 자리를 만든다고 했더니 어이쿠! 그 날은 비정규직인 청래 兄이자 혜원이 X오빠인 윤영연 총장 데리고 꼭 참석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윤총장을 원망했어요.자기 건강만 챙기려고 동네 철로길 공원을 열심히 걸으면서 자기에게는 한번도 함께 걷자고 하지 않아 오늘날 이렇게 양쪽 긴다리 능력이 상실되게 되었다고. 그런데 긴다리가를 쓰지않게 되니 중앙 짧은 다리 능력도 약해져 뱀장어 가루 복용량을 배로 증가시켜야겠다고 하더군요.

  • 20.06.14 08:36

    한회장님 잘됏네요 그날 백수 금요산행 점심자리 마련한 송구헌옹 나에게 당부햇어요 송땡벌 꼭 참석 하도록 그런데 다리셋 성실한 윤총장이 가운데것 빼고 양다리 션찬은 송땡벌 장어가루먹여 데리고 참가 성원 만찬자리 이루어 지게 하네요.

  • 20.06.14 10:37

    동생말이 맞아요. 나이는 내가 3세 위지만 여성편력은 동생이 세 형여요.

  • 20.06.14 19:21

    윤총장이 한회장 송옹 자기 셋이 항상친구라며 조강지친구 나보다 자기가 3살 위라 착각 하는데 송옹과 나 갑장친구 라고 한회장이 귀띰 해줘요

  • 20.06.16 06:21

    내가 윤호일 윤윤수 두 전.현 대종회장을 만나러 가면서 한분은 우리나라 100대기업중 40위를 마크하는 대기업회장이고 한분은 국제변호사 250여명(국내변호사 포함 375명)을 거느린 우리나라 빅5의 로펌대표로 바쁜 분들이기에 식사만 하고 바로 혜어지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는데 장장 3시간 담소가 이어젓습니다.
    담소의 내용은 덕담이었는데, 호일 회장이 먼저 먼길 오셔서 저희들에 분에 넘친 격려를 주셔서 감사했다는 인사가 있었고, 저는 건배사에서 두분 모두 우리 문중이 낳은 국제기업가와 국제변호사로 국익을 크게 선양하는 일을 하시기에 하시는 일의 형통과건승을 기원하는 건배를 제안했습니다.
    이어진 이야기는 자기들이 이번 선조 위선에 똑 같이 같은 금액(5찬만원)을 출연한것은 대종화관건립기를 보니 대부님께서 1993년 회관 걸립 시 “5천만원을 쾌척하시고 회관 거립에 앞장서시니 전국 종친들의 열성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이 대역사를 이룩햇다”는 내용을 보고 자기들도 같은 금액을 헌성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의 대화는 자연 대종회관 건림의 무에서 유를 창출한 이야기가 먼저 나왓습니다.

  • 20.06.14 15:28

    그리고 윤윤수회장이 우리나라 최고 연봉자(300만달라)의 신화를 이룬 이야기와 서울의대 3수후에 의대와 외대를 거처 30세에 신입사원이 된 후 지금은 연매출 33조의 우리나라 40위 기업이 되기 까지의 인생역정을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그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너무 드라마틱하니 타규로 제작하면 많은 젊은 이들에게게 희망을 줄수 있겠다 했더니 호일 회장도 그렇겠다 하더군요. 다음은 제가 자리를 마련하여 윤호일 회장의 인생역정도 듣겟다 했습니다. 윤호일 회장은 대고40회(3년후배)로 일찍이 국제변호사로 활동하여 지금은 우리나라 큰 무역분쟁을 거의 전담한답니다. 두분 모두 80세에 근하면서도 지금도 청년 같이 힐하는 건강비결도 다음에 들어보려합니다.

  • 20.06.15 06:04

    나도 윤윤수 회장이 우리나라 최고연봉자로 신문에 여러번 보도된 사실, 이태리가 자랑하는 휠라패션회사(휘아트차와 자매회사)를 인수한 사실, 매출 33조로 에코노미스트가 매년 선성하는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40위를 마크한 시실등은 알고 있었느나 그가 서울의대 2회 낙방에 3수에는 결국 서울대 치대에 합격하였고 졸업 후 내가 과연 치과병원을 운영해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될가를 생각하여 당시 우리나라가 수출드라이브가 시작되자 여기에 관심을 갖었고 이를 위하여는 외국어가 필수임을 알고 외대에 편입하여 열심히 공부한 결과 1등으로 졸업했고 졸업 후 종합무멱상사 취직시험에서 80대1의 경쟁에서 1등으로 합격한 사실, 그리하여 30세에 겨우 기업에 입문한 신입사원이 오늘의 그가 되기까지의 신화는 그렇게 고비고비마다 드라마틱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아들이 경영하는 회사 매출맥만도 작년 3조원을 넘겼다 하더군요.

  • 20.06.16 09:05

    대화시간이 3시간여가 된 것은 식사후 윤호일 회장이 나에게 종친회관 거립기를 보니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했는 데 그 당시 어떻게 회관을 지엇는지 듣고 싶다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1987년 미국교환교수 마치고 귀국하니 학교에서는 사무처장 교무처장 대학원장의 보직을 하는 바쁜 때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제가 서울종친회장과 대종회장 6년을 하면서 종친회 본부를 경남 함안에서 서울로 옮겼고 대종회관을 마련했습니다. 서울 회장하면서 모은 돈으로는 대지를 마련하였고 사실 회관 질 자금은 전무였습니다.

  • 20.06.16 16:08

    시작이 반이고 또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강박관으로 당시 하나은 행장을 비롯한 10여분을 저희 건물 음식점으로 초청하여 발기인회를 갖으면서 제가 5천만원을 약정하니 거기서 약정된 금액이 1억5천만원였습니다. 그 후 바로 외관건립 발기문을 전 종친에 발송했습니다. 그러자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수원에에 시는 한흠 종친은 자기나이 70에 노후자금 전부인 천만원을 기증했고 택시 기사를 하는 종친은 2백만원을 약정하면서 1년 적금을 들겠다 했고 건설업을 하는 석원 종친은 인건비만 대주면 건축공사는 자기가 무료봉사하겠다 했고, 전기공사를 하는 종사 종친은 전기시설은 자기가 봉사하겠다 했고 창호공사를 하는 철호 종친은 이 공사는 자기가 책임지겠다 나섯습니다. 그렇기에 건축기에 기록된 대로 “이 건물은 종친의 열과 성이 한데 어루러저 쌓아올린 불후의 금자탑”입니다.

  • 20.06.16 17:19

    내가 나에 대한 글을 길게 쓴 것은 내가 이미 실기와 먹기는 합격권에 든 것을 알고 구 집행부가 갑자기 토폴과 에세이를 시험과목으로 추가할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임. 나도 집행부에 푸락치를 두고 철자히 대비하고 있어요.

  • 20.06.18 10:31

    한회장님! 이번주 백수회 금요산행 송옹주최 중식만찬에 윤총장이 송땡벌 꼭 데리고 연이은 참석시 한해 집행부 송씨문중에서 정규직 승인안 무사통과에 협조 힌다는 첩보네요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