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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바람이 이루어지게 하는 유일한 바람
2024년 나해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11,15-2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인들은 선을 위하여 하나가 되고 악인들은 악한 일을 위해 하나가 된다고 하시며 악마들도 악한 일에서는 갈라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청하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게 무엇일까요?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그러니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행복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그렇다면 우리가 죽기까지 청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청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그러니 먼저 우리 안의 악을 몰아내는 성령님을 청합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욕망을 몰아내십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머지는 다 곁들여 받게 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여 청하지 못하는 것도.
시에나의 성 가타리나(1347~1380)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삶은 영적 평화와 연합을 추구하는 누군가를 통해 그녀의 가족을 포함해 누구라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강력한 예입니다.
가타리나은 이탈리아 시에나의 부유한 대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25명의 자녀 중 25번째였지만, 그녀의 형제자매 중 상당수는 유아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자코모는 부유한 양모 염색가였고, 그녀의 어머니 라파는 의지가 강하고 실용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가족과 마찬가지로 가타리나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하여 존경할 만한 결합을 통해 가족의 지위와 부를 더욱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사회적, 재정적 지위에 있어 잠재적인 자산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가타리나는 대부분의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불과 여섯 살 때 사도 베드로, 바오로, 요한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환상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가타리나가 나이가 들자 그녀의 가족은 그녀에게 결혼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회 계층의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기대였으며, 가타리나의 부모는 잠재적인 구혼자를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가타리나는 결혼이나 가족이 꿈꾸던 세속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을 대체할 행복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가타리나의 소망은 명성이나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평화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그녀는 수녀원 밖에 있으면서도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았던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평신도 공동체인 ‘만텔라테’(Mantellate)에 합류했습니다.
그녀의 금욕적인 생활 방식은 그녀의 가족을 걱정시켰고, 가족은 그녀가 극단적인 영적 수행을 버리고 좀 더 전통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계속 희망했습니다. 그녀의 신비로운 경험 중 하나가 그녀를 고독한 삶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르면서 그녀의 삶은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이에 순종했고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혼란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지만, 교회와 사회 모두에서 빠르게 강력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가타리나가 참여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는 아비뇽에서 로마로 교황권이 복귀된 일이었습니다. 거의 70년 동안 교황들은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 살았는데, 그로 인해 이탈리아와 그리스도교국 전체에 큰 정치적, 종교적 불안정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녀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하여 그에게 교황권을 로마로 돌려보내고 교회에 평화를 회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카타리나의 지혜와 영적 권위에 감명받은 그레고리오 11세는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고 결국 1377년에 교황권을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교황권에 대한 참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타리나는 이탈리아, 특히 교황권과의 갈등이 특히 심했던 피렌체의 다양한 전쟁 세력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피렌체로 가서 평화 협상을 했습니다. 가타리나는 결코 권력이나 명성을 추구한 적이 없었지만,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기를 기대했지만, 가타리나는 오직 영적인 평화와 연합만을 추구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통해 그녀는 교회 변화를 위한 강력한 힘이 되었으며, 로마에 교황권을 회복하고, 전쟁 중인 파벌들에 평화를 가져오고,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개혁과 거룩함을 촉구했습니다. 영적인 평화만을 원했던 카타리나는 로마에 교황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평화를 가져오며, 교회가 거룩함을 향하도록 영감을 주는 등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학원도 보내고 돈을 많이 들이며 노력합니다. 하지만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은 덤으로 받게 된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녀 가타리나처럼 마음의 평화,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받게 됩니다. 그녀는 ‘대화’라는 책을 써서 교회 학자도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글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소원합시다. 죽기까지 소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생각만 해도 주실 것입니다.
- 전삼용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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