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최근에 여경 관련해 논란이 있더군요.
공중파 방송 조작 논란과 체포 관련한 논란은 일단 제쳐두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더 근본적인 논란은 여경이란 제도 자체에 있다고 보기에 몇 마디 나눠보려고 합니다.
보니까 여경 논란에 대해 포인트가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는데, 하나 비유를 들어볼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주토피아"가 있습니다. 멋진 에니메이션과 음악,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더불어, 뻔하지만 항상 유효한 메시지, "차별에 기죽지 말고 자신의 꿈을 위해 스스로를 믿고 최선을 다하자"도 있죠. 차별에 대항하는 주디의 태도는, 아직까지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여러가지로 경종을 울리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회에 여자 경찰이 더욱 많아야 한다고 봅니다. "여경"이 아니라 그냥 여자인 "경찰"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직업적 장벽이 허물어졌으면 합니다. 남녀 할 것 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게 당연한 것이 되는 전제조건 중 하나가 어떤 직업이든 택할 수 있을 것, "누구나 뭐든 될 수 있는 것(Anyone can be anything)"이니까요.
그러나 거기에는 물론 "그 직업이 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있어야 합니다.
주디가 차별을 이겨내고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될 때 장면을 되돌아보죠. 작중에서는 토끼는 매우 작고 약한 동물이라 범죄자들을 제압하고 체포하는 경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 토끼가 경찰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걸 최초로 깨부순게 주디죠.
그런데 주디에게는 경찰직이 "주어진"게 아닙니다. 그녀는 수많은 훈련과 노력을 통해 체급의 차이를 이겨내고 코뿔소를 쓰러뜨릴 정도로 뛰어난 격투술을 익히고, 체력을 키우고, 특유의 민첩성을 이용해 체구를 장점으로 만들고 해서 모든 시험을 최고성적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실전 배치를 통해 자신이 경찰직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죠.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지, 동등한 "결과"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의 인종, 성별, 국적 등으로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 해당 인물의 능력과 상관없이 결과만 맞추어놓는게 절대 아닙니다.
그건 정치인들의 논리입니다. "제가 ~으로 있는 동안 ~명의 여경이 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경력을 포장하기 위한 수작이죠.
만약 주디가 그냥 평범한 약한 토끼였는데, 토끼라는 이유로 시장이 표를 얻기 위해 그녀를 경찰에 임명했고, 그녀가 범인 하나 체포할 수 없는 허약한 존재였다면 주토피아의 감동이 있었을까요? 그녀는 차별을 이겨내서 경찰직과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를 충분한 능력과 가치가 있는 인물로 증명했고 여기서 감동이 있는 겁니다.
다시 여경 얘기로 돌아오죠.
논란의 핵심은 해당 여경 한명이 체포하는데 시민의 손을 빌렸느니, 제대로 대응을 못했느니 그런게 아닙니다. 남자 경찰이 체포를 못해도 당연히 욕을 먹었겠죠. 그런데 만약 그랬다면 이런 논란이 생겨났을까요? 여자든 남자든, 그들에게 적용되는 잣대는 동일해야 합니다. 비판도 동일해야 하죠.
예전부터 "여경"과 "경찰"의 체력적 요구 조건은 판이하게 달랐는데, 이러한 낮은 잣대만을 만족시키는 인물들이 과연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높은 내근비율로 인해, 경찰의 중요한 임무인 현장 근무를 많이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는 걸 대중들이 불편하게 여긴다는 거죠.
주디가 단순히 배지를 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 경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서 그녀의 투쟁이 의미가 있듯이, 진짜 경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성들로 이 자리가 채워져야 진정한 차별을 철폐하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내근만 하는 "여경," 범인체포를 제대로 안해도 용인이 되는 "여경"이 아닌, 단순히 성별이 여성일 뿐인 "경찰"로 인식이 될때 우리는 진정한 성평등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쉬운 체력검증, 여성이라는 이유로 용인되는 다른 근무환경 등이 문제가 되는 거죠.
정치인들이 지금 여경에 대한 비판을 무시하고 숫자만 늘리려는데 급급한 것은 단순합니다. 숫자가 늘어야 자기 성과가 되니까요. 그리고 사회적인 풍조를 서서히 바꿔서 경찰의 성별을 맞추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단순히 합격조건을 다르게 해서 숫자를 늘리는 것은 빠르거든요. 그리고 그걸 갖고 주장하는 거죠. "나는 사회의 성차별을 깨부수는데 일조를 했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변화와 갈등은 신경쓰지 않고 말이죠.
물론 성별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생리휴가, (수유실이 있는) 여성 휴게실같은 복리후생은 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업무내용 자체가 달라선 안되겠죠.
저는 기자인데, 초짜 기자들은 경찰서/법원/장례식장 등을 돌면서 하루에 두세시간씩박에 못자면서 굉장히 강행군을 하며 취재를 하는 "마와리"란 전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군기잡기용 쓰레기같은 전통이라고 봅니다. 근데 여기서 여기자라고 빠지진 않습니다. 여기자라고 야근을 빼주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업무내용은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이 "기자"로서 한 사람 몫에 대한 기대치는 동일하죠. (물론 그럼에도 언론계에 성차별적인 기조는 심합니다. 이 점도 고쳐나가야 할 점이죠)
포인트는 이겁니다. 남자건 여자건, "경찰" 한 사람으로서 업무내용과 능력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합니다. 물론 그 중 뛰어난 경찰도, 좀 모자란 경찰도 있지만 최소한 경찰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한 사람분 역할은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업무내용과 능력이 성별에 따라 달라선 안된다고 봅니다.
즉, "여경"과 "경찰"이 따로 있어선 안된다는 겁니다. "여자경찰"과 "남자경찰"이 있어야죠.
이번 논란의 핵심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곁에 있는게 "여경"인지, "여자경찰"인지 의문을 갖고 있는 거죠.
첫댓글 음 이번 사건 관련해서 저도 여러가지 생각이 들긴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해주셨네요. 그리고 사실 옆에 남자 경찰분이 제압을 잘 해주셔서 더 큰 비교가 되긴하는데 이건 남자 여자 문제보다 체포술의 숙련도 및 기술의 부족이라고 보고싶습니다. 다만 그게 일반적으로 여자 경찰분들이 못하는게 사실이고 이건 글쓴이님 말씀대로 실력으로 증명을 해야하는 부분이죠.
좋은글이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합니다
👍👍
맞는 말씀입니다. 그냥 국민들은 경찰 업무를 더 잘 할 수 있는 경찰이 필요한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