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연중 제14주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예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부활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다. 그리고 예수님이 몸소 가르치신 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만난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참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이 거친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세상 속 그리스도인은 이리떼 속 순한 양과 같다.(루카 10,3)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의 선교사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고 온 삶으로 증언하셨다. 그분의 삶은 너무나 전격적이어서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당장 내일이라도 하늘나라가 올 거처럼, 아니 이미 이 땅에 사는 첫 하늘나라 시민으로 사셨다. 그 시민권은 당신이 친구들에게 버려지고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명으로 죽게 되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거였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실 때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로마군 장교는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하고 말하였고, 그 현장을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루카 23,46-48) 예수님에게는 당신이 죽게 돼도 포기할 수 없는 신성한 사명이 있었고, 그분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도 그게 뭔지는 몰라도 자기들이 뭔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됐다.
예수님은 나 홀로 거룩하게 사신 게 아니다.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신 건 더더욱 아니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가르치신 것도 복음을 온 세상 끝까지 전하려는 목적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제자들은 그 일의 증인이다.’(루카 26,46-48) 그래서 처음에는 열둘을(루카 9,1-6) 그다음에는 일흔둘을(루카 10,1) 파견하셨다. 여기서 ‘일흔둘’은 모든 이민족 종류 숫자를 상징한다고 한다.(창세 10장) 즉 지금 여기 온 세상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다.
예수님의 지상 삶이 너무 급진적이고 전격적이었던 건 그분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분을 대하는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다. 한마디로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빠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떨어져 있어서 죄인이다. 죄는 하느님과 나를 갈라놓으니까. 한 발은 하느님 나라에, 다른 한 발은 세속에 넣고 살아갈 수 없다. 그 발을 잘라버리고 한 발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든가, 두 발로 멀쩡하게 지옥에 던져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마태 5,29-30)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과격하게 보였던 거다. 하늘나라 시민이었던 예수님에게는 자연스러웠는데 말이다. 생명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 편과 그 반대편 사이에는 서로 건너갈 수 없는 큰 구렁만 있을 뿐이다.(루카 16,26) 우리는 계속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마음을 바꾸어 먹고 예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회심의 최고 모범이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에서 목숨 걸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도는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갈라 6,17) 자기 몸에 새겨진 낙인이란 복음을 전하느라 겪은 수고와 고생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여러 차례 맞았던 태형을 이르는 말이겠지만, 그 이전에 예수님을 박해했던 죄인이고 또 이제는 그분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그분 소유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죄를 용서받았고, 용서받은 죄인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부르심을 받았고 또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파견된다. 세례성사로 내 영혼에 새겨진 인호가 바오로 사도가 말한 그 낙인이다.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세속인도 아닌 어정쩡한 삶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예수님, 주님은 오늘도 저를 부르십니다. 주님 목소리를 안 듣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 등을 돌리는 길뿐입니다. 주님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들이 있는 곳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