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1952~)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된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첫댓글 최선을 다하여 삥을 뜯기고있습니다 ♡
지극히 현명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