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렸을 때 유아 세례를 받았고 대학도 가톨릭 계통을 나왔다.
대학교 다닐 때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외국인 신부님이셨고 그 분들은 신
앙인으로서, 또는 스승으로서 완벽한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 분들을 제대로 본받지 못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바로 코앞에
있는 인간들 생각에 급급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언제나 뒷전이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에는 그저 나 편리한 대로 살다가 아쉬울 때만 하느
님을 찾는, 참으로 한심한 신자이다.
하느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괘씸하실 거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쟤는 원래 그런 애려니, 인간들을 너무 많이 만들다 보니 별종도 나오는
군. 내가 저렇게 만들었으니 할 수 없지, 하시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시
리라 생각하고 양심의 가책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런 나도 가능하면 주일 미사는 꼭 참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첫째,
지은 죄가 워낙 많은 데 주일 미사까지 빠지면 혹시 하늘에서 벼락이라
도 떨어질까 봐 께름칙해서이고, 둘째, 일주일 동안 그야말로 꽁지 빠진
닭처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겨우 주일 미사 때나 한 번 어머니와
동생 식구들을 마주하는 셈인데 그 기회마저 놓치기 뭣하고, 셋째, 성경
은 문학의 뿌리이고 특히 영문학 공부하는 사람에게 성경 공부는 필수
조건인데 혼자 앉아 성경 읽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미사 때 짧게 읽는
성경이나마 큰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당에 가면 잠시나마 나를 한번 돌이켜보고, 일주
일간 뒤죽박죽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The Feast of Saint Nioholas."/ Jan Steen)
지난 주일에는 식구들과 시간이 안 맞아 혼자 저녁7시 미사에 갔다. 그
런데 신부님이 그 날의 성경 구절을 나눔의 메시지와 연관시켜 강론 하시
다가 갑자기 무엇이든 좋으니 옆 사람과 나누어 보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가방이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서로 나눌 물건들을 찾
기 시작했다. 봉헌금만 가지고 달랑 맨몸으로 갔던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 봐도 차 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 키를 준다? 하, 말도 안 되지. 그럼 뭐가 있을까. 궁여지책으로 내 몸
뚱이에 걸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목에 맨 스카프? 백 퍼센트 실크이니
아마 2,3만 원은 할 걸. 귀고리로 말하자면 금 아닌가, 금. 한 돈쯤 된 다
쳐도 5만원은 할 것이다. 목걸이는 아마 그보다 더 비싸겠지? 대충 6,7만원?
평상시, 숫자라면 백치에 가깝도록 무능한 나의 두뇌가 ‘못 줄 이유’를 찾
기 위해서는 놀랍게도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내가 지닌 물건들의 가격을
계산하고 있었다. 내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실반지, 이것은 가격으로야 얼
마 나가지 않겠지만 학생들이 해 준 선물이다. 못 주지, 암, 못 주고말고.
그럼 재킷? 낡긴 했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고 이맘때쯤이면 교복처
럼 입는 옷이니 그것도 줄 수 없다. 그럼, 거기에 꽂힌 브로치? 하지만 세
트로 된 것이라 하나를 줘 버리면 나머지는 짝짝이가 될 터라 그것도 못
주겠고...
("Celebrating the Birth" / Jan Steen)
옆에 앉으신 할머니는 이미 무엇인가를 내게 내밀고 있었다. 어쩌나, 어
쩔거나. 그런데 무심히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아, 다행히, 너무
나도 다행히, 며칠 전 음식점에서 입가심으로 준 박하사탕 하나가 집혔다.
원래 박하사탕을 싫어하기 때문에 먹지 않고, 그나마 버리는 수고가 아까
워 그냥 넣어 두었던 물건이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는 내게 필요 없는 물건, 아니 오히려 주어 버려서
속 시원한 물건을 발견하게 해 주신 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탕을 할
머니께 내밀었다. 할머니도 무엇인가를 내 손에 쥐어 주었는데, 그것은 아
주 조그맣고 예쁜 병에 '구심‘이라는 심장약 이었다.
신부님은 “작은 물건이라도 옆 사람과 나누는 기쁨이 어떠냐”고 물었다.
과연 사람들의 얼굴들이 환한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소를
담을 수 없었다. 나는 항상 내가 신심은 좀 부족해도 그런대로 하느님의
뜻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선하고 올곧게 살아간다고 믿었다. 아니, 어떤
때는 오히려 선하기 때문에 손해 보며 산다고 억울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건 순전히 구차한 자기 합리화였다.
(Jean Francois Millet)
옆에 앉은 할머니의 형색이 옹색해 보여서, 날씨가 추운데 할머니 재킷
이 내 것보다 얇아 보여서, ‘구심’을 내어 놓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고
마워서 등 ‘줄 이유’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는데도,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못 줄 이유’를 먼저 찾고,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그를 ‘좋아해
야 할 이유’보다는 ‘좋아하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 건 채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이유’보다는 ‘사랑하지 못할 이유’를 먼
저 찾지는 않았는지.
나는 ‘구심’병을 손에 꼭 쥐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
“주님, 제 육체 속의 심장은 멀쩡이 뛰고 있지만 제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제 마음을 고쳐 주소서. 저에게 ‘구심球心’의 은총을 베푸시어 희고 깨끗
한 마음을 주소서.”
Chopin - Nocturnes
10. No.10 in A flat Major Op.32-2
/Samson Francois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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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대인의 모습이네요 오늘의 나 이기도 하고요
장영희 교수님 정말 훌륭한 분이셨는데 참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