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레고무비 제작에 대한 이야길 들었을 때는 농담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뭐... 생각해보면 나오지 못할 이유는 또 없죠.
그런가보다..하다가 트레일러를 보고 확 흥미가 생기더군요. 이게 꽤 재미있겠더라구요.
문제는 한국에서 개봉을 해줄까..? 라는 것이었는데 뭐, 부율 문제로 시끄럽긴 했습니다만
어찌어찌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반쯤 포기하던 저는 집 앞 메가박스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죠.
가끔 우리는 영화의 방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를 봅니다.
오래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흉내낸 프랑켄위니라던가 B급 쾌락영화를 의도적으로 패러디한
마세티 시리즈 같은 것들 말이죠. 시나리오만 놓고 고민했을 때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지만
충분히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략이 있다는 것이죠. 레고무비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흔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제작진은 쫄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 그러한 뻔함과 허술함을 전체적인 그림에서 보자면 복선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름 함정카드 발동이랄까요.
레고무비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에밋이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레고인(?)이 있어요. 좀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그는 어느날
자신의 직장인 공사현장에서 수상쩍은 와일드 스타일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녀의 주의를 끌어보려던 그는 기막힌 사고 끝에 전설속의 피스와 결합되고 맙니다.
그것은 악당 프레지던트 비지니스의 음모를 막을 수 있는 영웅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했죠.
이제 에밋은 멘토인 비트루비우스와 그를 불신하는 와일드 스타일, 그리고 자아 넘치는 배트맨 등
몇 안 남은 마스터빌더들을 도와 레고세상을 끝장내려는 비지니스와 싸워야 합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평범한 이웃이 어찌어찌하다 세상의 운명을 바꿀 영웅이 된다..라는 건 진짜
폭풍 속의 네덜란드 풍차 마냥 수없이 돌려먹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안에서의 특별함은 대부분 그것이 레고의 세계 안에 있음으로 인해서 생깁니다.
마스터 빌더들은 세상만물을 분해, 재조립해서 이런저런 기계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비지니스는 그들을 잡아 새로운 패키지를 만들어 냅니다. 살짝 매트릭스가 생각나지만
화려한 추격전을 하며 다리를 뜯어 오토바이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그 간단한 아이디어가 얼마나 멋지게 비쥬얼화 되는지 경탄하며 볼 수 있어요
핵심은 이들은 스스로 레고임을 인식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명체로서, 나름의 잘 작동하는 시스템을 가진 세계관으로서의 컨셉을 가지고 있죠.
에밋의 첫 아이디어를 보면 그는 스스로 레고완구로서의 움직임적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 선택을 해서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죠)
네, 그는 레고가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가 끝나는 순간을 걱정하고 사랑에도 빠지는
순수 생명체로서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 논리적이지 않은 기묘한 정서적 공존이
레고무비의 외양을 결정짓는 재미발생의 틈이자 영화의 핵심입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제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이고
'뭘 그렇게 빙 둘러서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영화의 시작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지는 액션 시퀸스들은
레고에 사용되는 실제 부품들(? 제가 레고를 안 가지고 있어서 정식명칭을 잘...)을 십분활용해서
엥간한 블록버스터가 가지는 비쥬얼 스펙타클에 뒤지지 않는 멋진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토이스토리를 본 사람들이면 전통적으로 오프닝에 사용되는 '장난감 세계관 안에서의 멋진 액션 시퀸스'가
가지는 키치와 (전통적인 의미로의) 스펙타클을 넘나드는 볼거리의 매력을 아실거에요.
다소 빠른 호흡의 액션 시퀸스들은 그러한 쾌락을 거의 극단까지 밀어부친 결과물이며
그런 면에서도 이 영화가 온전히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는 아닌 거 같다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너무 빨라요)
액션과 액션 사이를 채우는 건 전통적인 영웅서사 사이에 채워놓은 빼곡한 패러디인데
미국식 농담이나 소소한 패러디들까지 온전히 이해하며 웃기엔 비-로컬 관객인 우리들에게 불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호평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그 넓은 손가락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유머들이 뭉텅뭉텅 느껴지지만 남은 부분만으로도 계속해서 웃게 만들어 주는 영화의 개그덕입니다.
그건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리암 리슨의 자기 패러디 등을 다 빼더라도
비트루비우스와 모건 프리만의 이미지를 활용한 농담들처럼 딱 봐도 웃기는 농담들이 꽤 성공적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아 정말 웃기지만 정말 머리에 남는 게 없다.. 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혐의가 느껴지기엔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순수하다는 걸 느낄 수 있죠.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과연 완벽한 장점이냐? 라고 하면 좀 고민해보고 싶긴 해요.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핵심을 잘 활용한 결말이라는 것엔 수긍할 수 있죠.
아마 조금 센스가 있는 관객들이면 초반에 다 알아차릴 겁니다.
하지만 알고 본다고해도 딱히 그 장면에서의 감동이 줄어들진 않아요.
왜냐면 그 갖은 고생 끝에 마주하는 그 순간에는 관람객 자신의 인생이 포개지기 때문이죠.
그들 각자의 레고무비를 완성하며 영화가 마무리 되는 셈입니다. 어른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일 수 밖에 없죠.
그.. 예수가 말한 '죄 없는 자 돌로 쳐라' 란 말에 죄가 많은 노인들부터 자리를 떴듯 말입니다.
어쨌거나 영화로서의 재미도 잘 뽑아냈고
레고로서의 위엄도 단단히 쌓아올렸으니 서로 윈-윈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어요.
마스터빌더니 뭐니 하는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해서 이렇게 범대중적인 볼거리를 만들다니 대단하죠.
마케팅의 극단을 보는 것 같아 뒷통수를 긁적이게도 합니다만 뭐 어때요.
이렇게 멋진 형태의 마케팅이라면 두 손 들어 환영입니다.
속편이 나올까요? 글쎄요. 이미 핵심 아이디어가 공개된 상태에서 모른척하는 아이디어라면
프리퀄밖에 없을테고 그렇게 해서 몬스터 대학이 얼마나 밋밋해졌는지 우린 다 알고 있는데요.
이 멋진 순간을 극장에서 체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아직 안 내렸나요? 얼른 가서 보세요.
+ 3D효과는 좋았겠죠? 궁금하긴 하더군요.
++ 노래가 은근 중독성이 있습니다. 한국판에선 크레용팝이 불렀다죠.
+++ 뭔가 세계관 안에서 디게 이쁜 모양인데 일단 내가 보기에 안 이쁘니 감정이입이... MJ의 팬들이 스파이더맨을 볼 때 이랬겠죠?
첫댓글 다리를 뜯어 레고를 만든다.. 고 하니 그냥 보고싶어지네요
그..다리가 어떤 다리인지는 아시는거죠 +_+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ㅎㅎ 어렸을때 레고를 만지던 기억도 나고ㅎㅎ 모든 것이 멋져!!
정말 레고 씨엠송 같았어요 ㅎㅎ
"다크니스! 부모가 없어!"가 압권이었어요
저는 헬리콥터를 내보내! 에서 혼자 웃었네요 ㅎㅎ
3D는 그냥 그랬어요ㅋㅋ 스톱모션을 워낙 좋아해서 그래픽 자체로 보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전 무척 좋았는데 드라마를 중요시하는 취향의 친구는 별로래요ㅋㅋ
CG 애니메이션이라 기대했는데 정작 효과는 크지 않은 모양이군요 +_+
CGV와 워너의 부율 갈등 때문에 미국은 흥행폭발인데 한국은 흥행 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