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여름밤의 꿈 같았던 2006독일월드컵이 끝났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파문이 계속돼 월드컵이 끝나지 않은 듯한 느낌도 주지만 월드컵은 끝이 났다.
독일월드컵에서 1승1무1패로 선전했다곤 하지만 한계를 드러내며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축구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브라질 등 전통적인 축구 강국들과의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위해 K리그 활성화, 유소년 축구 발전 방안, 국내 지도자 육성 등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문제점 개선 방안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12일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FC와 중앙대와의 FA컵 축구대회 경기는 참담한 국내 축구의 현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6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월드컵경기장에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적막이 흘렀다. 불과 수백여 명의 관중들이 조용히 앉아 경기를 지켜봤고 대구FC가 득점할 때에도 관중들의 환호는 들리지 않았다. 극소수의 대구FC 서포터스들이 구호와 노래를 불렀지만 관중들의 소음이 없는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선수들의 말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외국 축구팬들에게는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로 프로팀에 대한 열의는 없는데 국가대표 팀 경기에 대한 열의는 높은 것이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K리그를 살리기 위해 경기장에 축구팬들이 많이 찾아주길 호소하기도 하지만 별 소용없는 일이다.
세계화의 열풍이 세계를 휘감고 있는 현실이 스포츠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스포츠의 경쟁력이 약해져 관중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무역 관세를 철폐하는 협정이 축구의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축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빅 리그는 일정한 기준 아래 외국인 선수들에게 문호를 대폭 개방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우수 선수들이 거액의 몸값을 받고 유럽에서 뛰고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기대주들 역시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쟁력이 강한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축구리그는 외국인 스타들을 받아들여 더욱 수준높은 플레이를 펼침으로써 세계의 축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화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투명 경영, 선진 마케팅, 강한 제품 경쟁력 등이 이들 선진 축구리그와 구단 속에 스며들어 있다. 지난해부터 축구 관객 수가 줄어들고 있는 이탈리아 리그는 최근 승부 조작 스캔들까지 발생, ‘투명 경영’ 기준을 훼손함으로써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세계화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진출한 잉글랜드 리그에 비록 TV를 통해서나마 열광하는 국내 축구팬들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국내 축구리그를 더욱 외면하고 있다. K리그도 외국인 용병을 수입하지만 그들은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며 특정 포지션의 국내 선수들을 밀어내 국내 축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박찬호와 김병현, 서재응 등이 꿈을 쫓아 나선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국내 야구팬들의 시선이 쏠림으로써 국내 프로야구의 관객 수 역시 줄어들고 있다. 인기 스포츠로 꼽히는 골프 역시 국내의 스타 선수들이 대거 미국 시장에 진출, 국내 골프 대회의 재미는 PGA 무대나 LPGA무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무한 경쟁과 시장 개방을 표방하는 세계화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의 무역 질서를 강조함으로써 선진국은 중산층까지, 개발도상국은 소수 상위 계층정도만 혜택을 보게 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스포츠 시장에서도 그같은 원리는 적용되고 있다. 관중들을 불러 모으는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스포츠시장은 유럽, 미국의 스포츠 경쟁력에 밀리며 갈수록 입지가 좁아들고 있다. 더구나 국내 경제계가 외국의 경쟁력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반면 스포츠계는 걱정은 하면서도 뒤처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안일함을 보이고 있다.
국내 스포츠의 경쟁력을 높이고 브랜드 효과가 막강한 스포츠를 통해 국가 인지도와 국가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서는 스포츠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뼈저린 자기 반성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김지석 스포츠팀장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