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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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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교한후 포스트모더니즘 옹호의 입장에 서서 철학과
문학사조의 관점에서 설명드립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비교는 아주 쉽습니다. 여기 사과가 있습니다. 모더니즘 적으
로 사과를 바라보면, 이 사과는 빨갛게 잘 익은 부분과 시퍼리 둥둥하게 덜 익은 부분이 있
다. 일부는 반들반들 윤이나고 일부는 벌레가 먹어 썩어있다. 이렇게 바라보고, 이중에 빨갛
게 잘익은 부분과 반들반들 윤이나는 것만 취하고 시퍼리 둥둥한 덜익은 부분과 벌레가 먹은
부분은 배격합니다. 즉 모더니즘은 어떤 사물의 좋은 부분만 취합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이
분법적 사고관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흑-백, 신-인간, 사람-동물, 남자-여자, 주인-하
인... 이런식의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중 좋은 것만 택합니다. 백, 신, 사람, 남
자(이견이 많겠군요^^),주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사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빨갛게 잘익은
부분과 시퍼리둥둥 덜익은 부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부분과 벌레 먹은 부분, 모든 것이 사과
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철학적인 사조로는 실증주의에 해당되며 대표인물로 꽁트가 유명합니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해당 되겠지요.(종교 욕하는 것 아닙니다. 저도 천주교 신자입니다.)기독교 역시
이분법적 사고관이 근간에 깔려 있으니까요. 신 - 피조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역시 이 모더니즘의 최악의 산물 입니다. 우등한 인자를 가진 사람(순
수 게르만) VS 그외 모더니즘의 최후는 바로 전쟁입니다. 모더니스트들은 아까 얘기한 어떤
사물의 나쁜 부분 즉 이분법에서 하위계열에 속한 것을 배격합니다. 따라서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전쟁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핵폭탄이 터지고 인류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과
연 이게 잘하는 짓인가.. 하고요. 물론 아직 못 깨달은 미국 수뇌부 같은 애들도 있지요. 그래
서 나온것이 post-mordernism입니다.
근대 문학사조에 보면 사실주의가 등장을 합니다. 사실주의의 무미건조함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자연주의 입니다. 자연주의의 대표적인 한국 작품.. 아시죠?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입니다. 그 후 자연주의의 사실에 대한 과대한 부풀림에 반발로 등장한 사조가 바
로 모더니즘 입니다.
철학에 관한 부분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야스퍼스,하이데거로 유명한 실존주의가 이에 해당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불교
나 노자 장자의 사상이 이에 해당합니다. 즉 모든 것의 존재함은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
함이다.. 이렇게 보는거죠.
예를 들어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있죠. 즉 Everything is Noting, Noting is
Everything 입니다. 모든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모든 것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구요? 이런 겁니다.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볼때 1+1 = 2 입니다. 그외의 경우는 다 배격
하죠.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적 관점에서 볼때 1+1= 반드시 2가 아닙니다. 모든 경우의 수
를 인정하죠. 예를 들면, 공기방울 하나 더하기 공기방울 하나는 공기방울 하나 입니다. 즉
1+1 = 1이지요. 남자 + 여자는 남자,여자,애기 입니다. 즉 1+1 = 3입니다. 이렇게 보면 1=2이
고 1=3입니다. 1=4 일수도 있고 1=100 일수도 있습니다. 즉 100을 everything으로 보고 0을
Nothing으로 보면 이제 Everything is Nothing, Nothing is Everything을 이해하시겠죠.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또다른 예를 들어보면, 나비의 날개짓이 전 지구를 흔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비가 날개짓 한것이 주변의 바람을 흔들리게 하고 그 흔들린 바람이 풀을
흔들리게 하고, 나무를, 빌딩을,땅을 흔들리게하고 전 지구를 흔들리게 하는거죠. 즉 모든 것
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지,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상은 적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 존재를 다 인정합 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문학에 관한 부분입니다.
사실주의 - 자연주의 - 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으로연결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의 시조는 보통 자크 데리다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견은 분분함) 포스트모더니즘
은 특이하게 중남미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옥타비오 빠스의 La Calle (거리에서)와 같은 시
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시 입니다. 노벨상도 탔지요. 포스트모더니즘 문
학의 특징은 어떤 특정한 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장정일씨가 쓴 라디오란 시가 있
습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라디오가 되었다.' 후략 이 시는 김
춘수의 꽃을 꽃만 라디오로 바꿔 쓴 것입니다. 모더니즘 적 관점에서 보면 이게 무슨 시냐고
할 수 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런 장르도 다 수용합니다. 꽃이나 라디오나 그 이름은 아
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꽃이라고 명명한 것이지 그것의 원래이름은 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요. 너무 어렵나요? 여하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어떤 호칭에 얽매
이지 않습니다. La calle라는 시도 이거리에 걷는 발자국 소리를 저 거리에서 듣는다... 머 이
런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 썼듯이 모더니즘적 사고로 보면 1+1은 2입니다. 바꿔예기하면
이 사물은 꽃 입니다. 꽃 이외의 단어는 다 틀린거지요. 하지만 장정일씨는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것을 라디오라고 불렀습니다. 왜?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 꽃이라는 이름은 의
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른 것일 뿐이지요.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모든것을 수용
하는 것) 1=2, 1=3, 꽃=라디오 입니다. 즉 모든것을 다 수용하고 accept하는 거죠. 포스트모
더니즘의 관점에서는 그것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의 이름이 꽃인지 라디오인지는 중
요하지 않은 겁니다. 꽃이란 사물의 이름은 우리가 지은 겁니다. 영어로는 Flower 스페인어
로는 Flores 한국말로는 꽃 등등...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지, 그것의 본질은 아
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의 이름이 꽃이건 라디오건 중요치 않다고 말씀드린거구요.
그 본질 자체, 그 존재의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형식이
나 틀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틀이나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야
말로 자유로운 것입니다. 참고로 탈구조주의, 다원주의, 반권위주의등은 모두 포스트모더니
즘의 기본적 입장입니다. 아래 두 싸이트 참고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1> 자세히 잘 적어 둔 싸이트네요
<참고2> 여기에는 후기구조주의가 나와있네요^^
덧붙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단절적 특징 말고 연계적 특징에 대해서는 잘 모르
겠습니다. 모더니즘의 반발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공통점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혹
시 공통점이 있는 걸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의견)
1. 모던의 반대가 포스트 모던이 아닙니다. 포스트모던은 모던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것이지 반대가 아닙니다.
2. 모더니즘=실증주의, 포스트모더니즘=실존주의 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3. 하지만 예술사조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모더니즘'을 조롱하기 위한 '패러
디'와 '코미디'라는 평판또한 모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물론 답변자님께서는 앞에
'포스트모더니즘 옹호자로써..'라고 밝히셔서 님의 입장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규정했지만요. 아무튼 제 입장, 에서 그리 고 예술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유희성과
장난성을 특징으로 할뿐 아직, 모더니즘의 합리주의적 사고관과 심미성을 따라잡을 수 없
다고 생각.
(이상의 출처는 : 네이버 지식검색입니다. )
포스트모더니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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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포스트 모던'이란 용어의 개념은 학자에 따라 여러 주장이 있으며 그 개념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상호 연관된 개념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이 용어는 과거의
정치, 종교, 윤리, 철학이 전례업는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해 혼란에 빠지자 모더니즘을 대신
하면서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하고, 또는 현대화에 대항, 즉 현대화
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 반 모던적 입장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시각을 가리키기도
하고, 서구 문화의 현대적 양상이 직면하게된 양식적 단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배경
모더니즘의 논리란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 그리고 미래의 잠재성과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호 관련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이들 국면중에 오직 하나의 측면 - 즉 일루젼의 극복이라는
평면화에의 의지 - 에 만 편중해 옴으로서 전체로부터 어떤 한 부분만을 물신화하는데 기여
해 왔다. 합리적 이성과 진보, 계몽의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은 모더니즘의 구심력을 이루
어온 중요한 요소이지만 서서히 과학 기술의 모태인 자연과학과 서구 인문 과학의 영역에서
합리적 이성에 결코 삶의 총체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
는 데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질서와 체계는 인간을 행
복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었지만 반면에 합리화가 증가, 발전할수록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간을 극도의 관료, 행정적 질서와 논리 속에 노예처럼 예속시켜 버리게 되었고, 과학, 공
업, 기술의 발전을 통한 자연의 정복은 인간을 자멸의 수렁으로 몰고 왔으며 자연 환경은 파
괴되고 인간은 이제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수단까지 발명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
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초를 이루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주된 동기이며, 그들이 합리
적 이성의 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지의 요소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모더니즘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하나는 합리적 실증주의와 도구적 이성의 극복이라는 사회 문화적 조류의 맥락에서, 다른
하나는 하이테크 뉴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중의 편에서 모더니즘의 계획을 참아내지 못하
는 경우다. 전자가 포스트 구조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학문과 예술의 새로운 라더들이 문화
예술의 향방에 대한 자신들의 신조 및 취향을 바꾸어 나가려는 시도라면, 후자는 뉴 미디어
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있는 대중들이 더 이상 모더니즘 철학 및 예술의 심오성과 자의성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3.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문명의 광기를 목격하고,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를 반성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그 배경은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회의와 나찌즘의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였으며 이것이 확장되어 서구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1950 - 60년대 미국 문화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예술에서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사회 이론에서는 모더니
티와 포스트 모더니티 논쟁이 첨예하게 대두된 것은 대체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이
다. 그러나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와서 상당수의 비평가들은 모더니즘이 고갈되었고 한때의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모더니즘은 하나의 역사로 다루어지기 시
작하며 '지속적 새로움' 이라는 자체의 논리에 의해 전복되어 버린 하나의 정설로 굳어졌다.
4. 건축으로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분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 분야에서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건축에서의 포스
트모더니즘은 20세기 전반에 걸친 국제 양식, 즉 바우하우스, 미스반데 로에, 르코르뷔지에,
그로피우스 등 기하학적 기능주의 건축 양식에 대항하는 형상과 표현의 부활 등으로 미술
각분야에서 나타나는 '서구 전통으로의 회귀적인 흐름'을 설명하고자 하는데서 포스트모더
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이 학자들마다 매우 다양하여
개념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을 모더니즘과의 단절이나 극복, 혹은 연속
이나 불연속의 어느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용어에서부터 모더니즘과
깊은 관계를 지닌다. 미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의 순수성을 비순수성으로 바꾸어 놓는 일에 중점을 두었으
며 그린버그가 고급 문화의 적으로 간주했던 대중문화 혹은 저급 문화를 대폭 수용하고 재평
가 한다.
5.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시각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끝났다는 인식에서부터 비롯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킴 레빈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미적 영역에 있어서의 단절로 정의하고 있고,
힐튼 크레이머와 위르겐 하버마스느 모더니즘을 앞으로도 계속 추구되어야 할 '미완성의
프로젝트'로 규정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역사성을 고찰하고 있으며,
핼포스트는 사회와 문화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저항의 실천을
대행하리라는 긍정적 평가를 잠정적으로 내리고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뀐 역사적인 변환의 이유를 '개인주
의의 종말'에서 연유한다고 풀이하며,
안드레아스 휴이젠은 '요즘 뉴욕 미술계와 도큐멘타展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웃
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전적으로 거부할 경우 그것의 잠재력을 간과하기
쉽다. 이때의 잠재력이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속성을 지니지만 나 역시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을 긍정한다.
6. 포스트머더니즘에 관한 두가지 입장
반동적 포스트모더니즘은 보수적 정체상태를 옹호하기 위해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포스트모
더니즘이고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고 또 널리 공감을 얻고 있기도 한데, 이들은
문화를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분리시킨 후 모더니즘 문화의 관행이 서구사회의 현대화 과정
의 병폐를 낳았던 주된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서로 혼동된 상태에서
'저항적' 문화는 거부되며, 경제적, 정치적 현 상태가 옹호되고, 그에 적합한 '긍정적' 문화가
새롭게 주장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더니즘을 문화적 오류로서의 (국제적인 양식으로서의)
형식주의라고 비판하면서 前 또는 後 모더니즘의 요소들을 반입하고, 19세기식의 전통적인
휴매니스트의 전통을 보존하고자 한다.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공식문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반동적인 포스트모더
니즘의 '그릇된 규범성'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고 일어선다.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이비
또는 대중적인 역사적 형식들을 도구적인 모방적 재탕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
에 또한 기원에로의 복귀가 아니라 기원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갖는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문화적 약호들을 소모하기보다는 그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에 내재한 사회적, 정치적,
제휴관계를 은폐하기보다는 폭로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실제로 논점과 이론적 토대가 분명
하고 그 철학적 근거가 확실한 쪽은 대체로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간주되고 있다.
7. 포스트모더니즘의 두가지 방향
합리적 이성과 진보, 계몽의 프로그램에 대한 확신은 모더니즘의 구심력을 이루어온 중요한
요소이지만 서서히 과학 기술의 모태인 자연과학과 서구 인문 과학의 영역에서 합리적 이성
이 결코 삶의 총체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는 데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질서와 체계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위한 조건이었지만 반면에
합리화가 증가, 발전할수록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간을 극도의 관료, 행정적 질서와 논리
속에 노예처럼 예속시켜 버리게 되었고, 과학, 공업, 기술의 발전을 통한 자연의 정복은 인간
을 자멸의 수렁으로 몰고 왔으며 자연 환경은 파괴되고 인간은 이제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수단까지 발명 제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초를 이루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주된 동기이며, 그들이
합리적 이성의 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지의 요소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것을 나타
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모더니즘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하나는 합리적 실증주의와 도구적 이성의 극복이라는 사회 문화적 조류의 맥락에서, 다른
하나는 하이테크 뉴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중의 편에서 모더니즘의 계획을 참아내지 못하는 경우다.
전자가 포스트 구조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학문과 예술의 새로운 라더들이 문화 예술의 향방
에 대한 자신들의 신조 및 취향을 바꾸어 나가려는 시도라면, 후자는 뉴 미디어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있는 대중들이 더 이상 모더니즘 철학 및 예술의 심오성과 자의성을 감당해내지 못
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8.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이 엘리트주의를 지향한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반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며 예술이
외부 세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예술과 대중의 연결점을 찾는다. 미국의 뉴이미지 페인팅, 독일의 신
표현주의, 이탈리아의 트랜스 아방가르드 등 이들은 모더니즘이 거부했던 손으로 그린 눈속
임 회화, 환영주의적 회화와 조각을 다시 시작함으로서 미니멀리즘의 배타성에 반기를 들었
다. 이들의 작품은 수동 제작 방식으로 다시 복귀하고 있으며 과거의 회화 전통을 인용한다.
모더니즘 미술이 새로운 제작 과정과 재료 영역의 확장을 통해 사회 변혁에 참여했다면 이들
의 작품은 문학적, 시각적 기억을 이용한다. 전통적인 화법이 여러 요소들을 오늘의 주제
속에 자유롭게 구사하는 새로운 구상화의 물결이 1980년대에 들어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미국과 독일의 미술 시장을 거점으로 한 신표현주의가 급격한 파급을 이루었다.
또 이 움직임은 세계 각지에서 신속하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 이후 형상성과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들이 많이 나타났고 포스트모더니즘
에 대한 논쟁도 활발해 졌으며 그것이 순수 대립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9. 모더니즘의 이념과 한계점
넓은 의미에서의 모더니즘 이념은 '18C 계몽주의에 의해서 표명되어 거의 100여년간 서구의
실제 예술적 활동 무대를 지배해 왔으며 객관적인 과학 보편적인 도덕과 법, 그리고 자율적
예술을 그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시키려는 노럭으로 이루어졌다.' 모더니즘은 확고한 합리적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인류의 사회 문화가 끊임없이 진보 할 수 있다는 신념체제를 이룬다.
특히, 문화 예술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획기적으로 발전한 과학 기술의 기계화 과정과 병행하
면서 전통과의 단절과 기술적 실험 정신을 그 기초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모더니즘은 회화,
조각, 음악, 춤, 소설, 연극, 건축, 시와 사상등 문화 예술의 전반을 변화시켰으며 20C의 전반
적인 문화 혁명이자 제 2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모더니즘은
합리적 이성의 위력을 맹신함으로써 강력한 가부장적 주체 개념을 추진해 온 것이다. 모더니
즘 평론가들은 연극성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이에 대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오브제의 대두와 퇴조는 형식에 의해 대치되는 의미에의 의
지 또는 내용에의 의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오브제 미술의 물
질적 전개에 흥미르 잃고 있는 것이다.
10.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정의되는 의식과 감수성은 대체로 모더니즘의 순수성, 회화만이 갖고
있는 교유한 본질 - 선, 색채, 물감의 물성 또는 평면성 등등 - 과 형식만의 추구에 반해
비순수성, 본질외적인 회화의 문맥에 관심을 가진다. '모방의 문제, 추상 표현주의, 제스츄의
적 양상 또는 꽤 오랫동안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신성 모독과 같이 욕설로 취급되었던 모든
말들 - 환영주의적 사실주의, 연극적, 장식적, 문학적과 같은 류의 - 은 다시금 예술로 부활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모더니즘은 '순수성' 으로 집약된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
은 순수를 추구하는 미술이며 '미술의 개념은 오직 개별적인 예술 장르내에서만 전적으로
의미있다'고 하는 것이다. 목적으로서의 순수성, 결과로서의 형식적 법칙, 전개로서의 역사
주의와 맥락으로서의 미술관, 독창적인 작가와 유일무이한 작품이 모더니즘이 가치를 부여
한 용어들이며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것과는 대립된다. 합리성을 매개로 하는
과학 기술과 사회 과학적 방법의 미래 대신 과거에 대한 향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고대 희
랍 시대 이후의 서구 인문학의 변증법적 말 뜻이 배어있는 의미의 해체작업, 논리와 수량화
대신 관계와 맥락의 유기적 구조와 시각적인 영역에 있어서 패턴 및 장식 문양의 복원등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이루게 된다. 또한 그 부수 현상으로서 서구 중심의 역사적 맥락에
대하여 이질 문화의 관심이나 기층 주변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이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배제해왔던 전통 및 문학, 도덕적 요소를 부활시켰고 거의 의도적으로 예술과
환경, 예술과 사회, 예술과 현실을 잇는 작업을 중요한 전략의 하나로 삼았다. '한 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순수성을 지양하고 그 대신 비순수를 지향한다.'
11. 예술적 자율성의 향유
합리성을 매개로 하는 과학 기술과 사회 과학적 방법의 미래 대신 과거에 대한 향수가 나타
나기 시작하며, 고대 희랍 시대 이후의 서구 인문학의 변증법적 말 뜻이 베어있는 의미의 해
체 작업, 논리와 수량화 대신 관계와 맥락의 유기적 구조의 시각적인 영역에 있어서 패턴 및
장식 문양의 복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이루게 된다. 또한 그 부수 현상으로서 서구
중심의 역사적 맥락에 대하여 이질문화의 관심이나 기층 주변 문화에 대한 관심 등이 나타난
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배제해왔던 전통 및 문학, 도덕적 요소를 부활시켰고 거의
의도적으로 예술과 환경, 예술과 사회, 예술과 현실을 잇는 작업을 중요한 전략의 하나로 삼
았다. '한 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순수성을 지양하고 그 대신 비순수를 지향한
다.' 모더니즘이 자율적 예술을 위해 정류하려고 노력했던 정서적이고 지적인 '가치'를 다시
하나의 문화적 요소로 추구하려는 것이다. 미술이라는 대상이 미술관에 의해 역사화 되고
화랑에 의해 상품화되어 버린 것에 대항하여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다른 '대안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의식의 다변화, 모더니즘의 폐쇄성에 대한 자각등을 저변으로
패턴 페인팅, 낙서화, 페미니스트 미술, 신표현주의 등 뉴 페인팅이 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하
여 활짝 전개되어 예술적 자율성을 향유하게 된 것이다.
※ 형태라는 주어진 조건에서 출발하여 형태의 통일에서 이탈(분해)한다. 해체주의 건축의
디자인 작업은 포스트모던의 한특성인 해체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디자인 개념 또는
방법에서 다른 건축운동과 뚜렷히 구분되며, 형태표현 방법이나 결과로서의 형태는 그러한
개념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것이다.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기존의 형태를 파괴 단편
화 하거나 단편들을 꼴라쥬하며 단순한 형태의 변형, 조합, 중첩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
이다.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건축에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함으로써 관습에 얽매인 건축
대신 보다 열려진 건축으로의 전이 가능성을 탐구한다.
☞ 건축물 뿐 아니라 미술, 문학 등등 여러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된다. 기존에 정해진
모든 틀을 깨고 다른생각과 다른 표현형태로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결말을 짓겠다.
<참고>
<출처 : 네이버 지식검색>
포스트모더니즘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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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개념을 완벽히 파악하거나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다양한, 그리고 때로는 서로 모순적인 요소
(contradictory elements)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 역사학자 클리브 딜노트(Clive Dilot)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불확실(uncertainty)하고, 불
안정(insecurity)하며, 의문(doubt)에 싸여 있다'고 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은 모든 창
작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그 동안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에 집착하던 모더니즘의 끈질긴 절대진리 혹은 유일선 추
구는 새로운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의 물결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모더니즘의 끝없는 개혁
추구는 예술에 큰 피로를 느끼게 했고, 새로운 예술 추구방식을 찾게 만든 것이다. 포스트모
더니즘의 특히 하이 모더니즘(High Modernism)의 지나친 심각함(seriousness)에 대해 반
발하면서, 예술에서 새로운 태평함(insouciance), 즐거움 (playfulness), 절충주의
(eclecticism)를 추구했다.
건축(architecture)부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새로운 포스트모던 예술의 전형적인 모습
으로은, 미국 라스베거스의 건축물, 해프닝 공연(happenings), 지하영화(underground
film). 팝아트(pop art), 그리고 우리나라 출신의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 예술가 백남준이 대표
적인 인물로 거명되고 있는 비디오 예술(vedio-installations)등이 포함된다.
타이트하고 치밀한 형식과 엄격한 미학기준을 지니는 모더니즘 예술과는 달리, 포스트모더
니즘 예술은 미완성적(fragmentary)이며, 절충적(eclectic)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문
화(popular culture)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소위 말하는 고급문화(high
culture)를 배격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요소들을 서로 혼합
시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 에,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모더니즘이 그토록
고집하던 예술의 미학적인 경계 (aesthetic boundaries)를 허물어 버린다.
광고의 영상이나 텔레비젼 화면의 만화경 같은 풍경도 예술로 흡수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
즘의 아이러니(irony), 패스티쉬 (pastiche), 냉소주의(cynicism), 허무주의(nihilism),그리
고 심지어는 상업주의 등의 특성들이, 하이 모더니즘의 도덕적 심각함을 제거해 버리기도 한
다. 모더니즘 예술이 뭔가 새롭고, 미래지향적(future-oriented)이면서, 소위 말하는 고급예
술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추구였다고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에 대한 향수
(nostalgia)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정을 함께 부담없이 혼합시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예술은 예술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예술 형식이나 장르를 절충시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포스트모던 예술은 그 동안 학계에서나 문화계에서 소외 시킨 예술에 대
한 관심을 높힌다. 사진, 비디오, 영화 등은 물론이요, 패션, 헤어스 타일까지도 예술의 분야
에 올린다. 예술에서의 권위와 장벽은 무너지고 문화의 폭 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시대성이 있다. 즉, 어떤 시대의 문화이든, 그 시대에 맞는 예술 작품이 있
다는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결코 고대 그리스인 들의 시대적 예술감
각을 가질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탄생했던 미술, 조각 등 의 작품들은 바로 그 고대 그
리스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 에서 현 시대의 예술인 포스트모던 예
술은 현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에 완벽히 연동되어 빠르게 발전하며 변화하고 있
다.
예를 들면 미술에서 유화, 파스텔 화, 목탄화 등은 컴퓨터 등의 과학기술 발전에 의해, 수
작업이나 붓을 사용하지 않고 도 새롭게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기술의 도전을 받고 있다.
가장 치밀한 인간 두뇌 의 계산과 잘 훈련된 인식 작업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겨지던
전통회화 기법이 신기술 개발의 한 과학과 예술의 접목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림이라는 것이 화가의 수작업의 기법이 아니라, 그림을 제작하는 도구 혹은 기계
를 얼마나 잘 조작하는가 하는 능력에 달린 것이 되었다. 음악에서도 기존 전통음악 의 가락
이나 화음을 벗어나, 원초적인 음을 찾는 작업이 시작되고, 특히 1980 연대 중반부터는 위성
파를 타는 MTV의 등장으로 포스트모던 음악의 새로운 모형이 나타난 다. MTV의 프로그램은
기존 고급예술을 비록 미완성 작품이기는 하지만 패러디 (parody)하고, 패스티쉬(pastiche)
하면서, 포스트모던 예술을 대량으로 보급하는 창 구역할을 한다. 그리고 랩, 힙합 등의 무용
움직임을 펼치면서, 급격한 절충주의를 무용에 도입시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형태가
MTV를 통해 우리가 알 게 모르게 벌써 공중파를 타고 우리의 가슴 속에까지 파고들어 있는
것이다.
니겔 헤일(Nigel Wheale)은 1995년에 발간한 그의 책 '포스트모던예술(The
Postmodern Arts)'에서 포스트모던 예술은 다음과 같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패러디 와 아이
러니를 통해 절충주의를 강화하고, 예술의 스타일은 쓸락(schlock)이나 키치 (kitche) 그리
고 캠프(camp) 등의 취향을 보이며, 풍유적(allegorical)인 모습을 띠 며 목록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서 포스트모던 예술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정확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 우선 패러디는
기존의 다른 작품을 모방 개작하는 것 을 말하며, 패스티쉬는 여러 작품을 긁어모은 혼성작
품을 말한다. 그리고 시뮬레이 크럼은 가짜 혹은 모조품의 예술을 말하며, 알레고리는 하나
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풍유적으로 낳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술 등에서 예술가들
이 작품의 도전 적인 성격을 강화시키기 위해 슬로건(slogans)이나 목록을 작품에 사용하기
도 한 다. 싸구려 혹은 싸게 파는 결함 제품을 말하는 쓸락은, 포스트모던 예술에서는 의미
없고, 무료한 그러나 뽐내지 않는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비록 쓸락이 의미없고, 지극
히 가난할 정도의 소박함을 나타내지만, 결코 나쁜 의미는 가지지 않는 반면에 키치는 한 걸
음 더 나아가서 의도를 가진 쓰레기 같은 나쁜 취향을 말한다. 그리고 캠프는 소외된 예술 그
룹에서, 패러디 등을 통해 그들의 소외됨을 축복하는 과장된 예술행동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외부적인 형식과 모습이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포스트모
던 예술가들의 예술작업은 내부적으로는 결코 느슨하지 않다. 그들의 내부적인 예술구성 작
업은 타이트하고 치밀하다. 즉 프랑스 포스트모던 사회학자인 리오타르 (Lyotard)가 말했듯
이. 포스트모던 예술가들은 각자가 철학자의 위치에 있다. 자유 분방한 포스트모던 예술환
경, 즉 일정한 틀과 룰이없는 작업환경예서, 그들의 작품 이 들어설 룰을 언제나 새롭게 만들
어 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예술가들 은 언제나 새로운 예술의 룰을 스스로 창조
해 나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예술은 결코 하나의 유일 독선적인 룰로 정의될 수
가 없다.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 해 나가는 포스트모던 예술은 획일적인 잣대로 보겠다는 것
은 문화현상 자체를 왜곡 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관객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포스트모던 예술
은 새로운 절충주의와 예술의 장르 연합, 과학 기술의 발전 등으로 더욱 발전해나갈 것이다.
20세기말의 문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은 예술의 외부적인 형태변화
뿐만 아니라, 예술의 내부적 인 관점과 인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성를 촉구하고 있다.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차이점에 대한 가치기준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재고를 하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 역사가 현대역사와 현대정치학에 끼치는 영향까지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여기서 예술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학문적
혹은 사상적으로는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포스트모던 사회학 이론가인 미국의 사회학자 더글러스 켈너(Douglas Kellner)는 1988년
사회학 저널(이론, 문화 & 사회(Theory, Culture & Society))에 게재된 그의 논문 '사회학
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몇 가지 도전과 문제점들'에서 '예술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에 대한 토 론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새로운 사회학 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던 사회학
이론은 1970연대 후반부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들리 아르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과격한 정보유통으로 모방과 허상
이 만연되고 이들이 다 시 새로운 사회질서와 문화경험을 만들어내는 사회라고 했다.
또 다른 프랑스 사회학 자 장 프랑소와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는 1984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 '포 스트 모던의 조건(Postmodern Condition)'에서 포스트모던 사회의
탄생은 모더니티의 큰 희망의 종말을 고한 것이며, 과거에 생각되오던 하나의 완벽한 사회
이론이나 혁명적인 사고방식의 불가능함을 알 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반면에 또 한 명의 다른 유명한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회학자인 프레데릭 제임슨은 1984년
에 발표된 그의 논문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자 문화'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소비자
사회의 새로운 문화형태라고 규정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문화 적 빈혈에 빠진 혼성모
방예술, 즉 패스티쉬라고 했다. 그는 현시대의 포스트모더니스트 예술은 새로운 의미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제임슨 이 말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은 하이모더
니즘에서 추구하던, 예술의 본질을 파고드는 미니멀리즘의 의미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 더 이상 창조능력을 가지지 못할 것 이라는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던 예술은 필연적으로 예술적인, 그리고 미학적인 실패를 할 것이며,
더 이상 새로움의 창조정신은 사라지고, 과 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날 예술까들은 더 이상 새로 운 스타일이나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해낼 수 없다
고 했다. 모든 것은 벌써 창조되 어 있기 때문에 단지 기성예술을 새롭게 조합하는 정도의
일만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포스트모던 사회이론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는 사회학
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더글러스 캘너 같은 경우는 우리 사회가 완벽히 포스트모던의 형태
로 굳혀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포스트모던 상황을 단순히 하나의 변환 기적인 사회
(society in transition)형태라고 보았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과거의 사회학 이론을
오늘날의 조건에 맞게 발전시키고, 현대화시키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본대로 포스트모던에 대한 사회학 이론은 다양 하며, 결코 하나로 통일 될 수 없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이론 적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 통일된
의견이 있다. 그것은 다원화주의가 포스트모더니티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는 것이
다. 즉, 영국의 포스트모던 사회 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주장했듯이,
포스트모더니티의 가장 중요 한 특질의 하나는 문화, 사상, 삶의 양식 등의 전반에 나타나는
항구적이며 축소될 수 없는 다원화주의의 팽배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을 말하면, 포스트모
더니즘은 유 일 독선적인 세계관의 종말이요, 단 하나의 사상의 추구에 대한 반발이며, 무엇
이든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차이점에 대한 경의라고 볼 수 있겠다.
포스트모던 문화와 예술의 확장 앞에서 본 이런 여러 가지 드라마틱한 사회적 변화는, 지금
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문화 혹은 에술에 대한 개념 자체를 흔들리게 한다. 심지어는 예
술에 대한 미학 적인 기준이나 판단까지 변화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일반 대
중의 시 각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만의 전유물
이 아닌, 대중 전체를 위한 예술의 추구가 일어난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오늘 날 전통예술이 실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늘어나지
는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요즈음 대부분의 대중 문화 경험은 상업적인 형태로 전달
되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문화미디어와 문화상품들이 대중문화 선도의 주역이 되고 있으
며, 그 형태도 갈수록 국제화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다국적 미디어와 다국적 상품을 통한 국
제적인 문화교류는 개별 국가 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에 따라, 문화의 국경
개념도 현저히 무너 지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국가문화와 국가정체성 확보라는 쉽지
않은 새로운 이슈를 떠안고 있다. 사실 국가 개념에서 보면 각국의 정부는 확장되고 있는 세
계문 화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요구받고 있다. 영국의 문화이론가 폴 월리스(Paul Willis)가
말했듯이. 각국의 정부는 한편으로는 그들 국가 외부에서 국제적으로 일어 나는 문화교류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단결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의 문화유
산을 철저히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이중적인 어려움에 빠 져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그의 유명한 저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에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세가지
로 나눴다. 기술경제구조, 국체, 그리고 문화를 바로 그 세 개의 중 요한 사회구축 요소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국가에서 이 세 개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될 요소
는 바로 문화라고 했다.
<참고>
<출처 : 네이버 지식검색>
첫댓글 이글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옹호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서 그런지..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점과 모더니즘의 딱딱한 측면을 깨고 도입된 , 포스트모더니즘의 측면이 과장 부각되어버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인 듯이 쓰여졌네요.^^;;
대.. 대단 하십니다.. -_-;; 이렇게나 긴 글을.. 음..
^^;; 그러네요..
음..이글을 다 읽어보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글이고 이글 올리신 님은 다 읽어보셨을까요?..글구 ..음..제가 않물어봤다면 속상했을꺼 같은..;농담이구요..읽긴 읽었는데 그다지 혹실히 정의는 잘 내리기 힘드네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곱씹어야할것 같습니다. 너무 급하게 먹으려고 하면 체하던가 안넘어 가든가 할테니 꼭꼭 씹어서 삼키시길 부탁드립니다. 글올린 저도 세심하게 읽은것도 아니고 오랜동안 생각해 본것도 아니기에 딱 꼬집어 이거다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거든요. 단시간에 그럴 능력도 안되고.. ^^;;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떤 고정적으로 정립된 이론이 아닌, 혁신적으로 변해가는 운동이라고 보는게 이해하기 쉬울것 같습니다.
확실한 정의를 굳이 내리려 하지마세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단점. 시대적상황에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 평가도 제각각 다를 수 있는 상대적인 인식문화의 형태입니다. 지금 보이는 그대로 연상하고 받아들이세요~ 섣부른 정의는 편파적인 기준을 만들어 낼 수있으니깐요^^
이런걸 읽는 사람도 있구나....^^
제가 궁금해서 올려주신 분의 성의를 봐서라도 다 읽어야죠^-^/
한마디로 정의하기보단 "다원화주의"라는 특성을 생각하는게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