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나를 만들어낸 목소리로 알았으나
나를 걷게 하는 목소리였던 목소리를
왜 그렇게 밤이면 펴들고 읽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면 아마도’
- 김 도 詩『기억의 책』
- 시집〈핵꿈〉아침달 | 2023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야. 소풍의 계절이지. 손님 없는 서점에서 내내 푸념 중이다. 오늘도 매대에 놓인 알록달록한 책들은 참으로 한가롭다. 어서 읽어줄 사람을 찾아가라, 재촉해보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삐뚜름하게 놓인 책들을 바로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서점에서 ‘매대’라 불리는 곳은 일반 책장과는 다르다. 되도록 많은 책을 ‘꽂는 형식’으로 보관하는 곳이 책장이라면, 매대는 되도록 책이 잘 보이게끔 ‘눕힌 형식’으로 진열한다. 그런 까닭에 매대는 베스트셀러나 화제의 신간을 중심으로 꾸려지기 마련이다.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매대’를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이 책을 그저 그런 상품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의심하고 있는 까닭이다. 서점을 찾아온 사람들은 응당 그러하듯 매대로 향한다. 그곳에서 후딱 책을 집어 계산한 뒤 쫓기는 사람처럼 서점을 나선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들이 오래 골랐으면 좋겠다. 고심 끝에 자신만의 책을 찾았으면 좋겠다. 유행이나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직접 고른 책이 오래 기억되고 곁에 머물러 있지 않겠는가.
매대를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 현장에선 당장이 급하다. 다행인 것은, 책을 찾는 모두가 매대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글을 시작했을 때쯤 들어온 손님이 여태 머물며 책을 고르고 있다. 이 좋은 날씨에.